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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오토뉴스 채영석 국장은 30년 동안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동해 왔으며 인터내셔널 엔진 오브 더 이어, 월드 카 오브 더 이어의 심사위원이다. 골드만 삭스 등 투자은행들과 다른 시각으로 산업 분석을 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3,000종 이상의 차를 타고 시승기를 쓰고 있으며 세계적인 모터쇼와 기술세미나 등에 참석해 글로벌 차원의 트렌드 분석에 힘을 쏟고 있다. 2013년 골드만 삭스가 유가 200달러 시대를 이야기했을 때 역으로 유가 폭락 가능성이 있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19. 합병의 시대- 4. 미국이 버린 브랜드, 인도와 중국이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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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charleychae@global-autonews.com)
승인 2017-01-23 15: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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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부터 1926년까지 미국에는 181개의 자동차회사가 있었다. 그 중 137개사가 1927년까지 문을 닫았다. 이는 다운사이징과 규모의 경제라는 논리가 등장하면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한 것이다. 그것이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그룹으로 통합되었고 그것을 디트로이트 빅3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그 힘으로 미국은 50년이 넘는 영광의 시대를 보냈지만 20세기 말, 21세기 초에는 그들의 자리는 위태롭기까지 했다. 때문에 경쟁력이 없는 브랜드까지 안고 갈 수 없다는 논리로 합병 대신 해체의 길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GM은 파산했고 연방정부의 자금으로 이름은 같지만 다른 회사 GM으로 새로 태어났다.

 

20세기 말까지 존재했던 디트로이트 자동차회사들의 브랜드들 중 GM 에서는 올즈모빌과 폰티악, GEO, 새턴, 포드에서는 머큐리, 크라이슬러에서는 이글과 플리머스 등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매수했던 사브와 볼보, 재규어랜드로버는 중국과 인도회사에게 넘어갔다. GM과 포드의 합병을 통한 세계화 전략의 차이와 그 해체의 과정을 살펴 보고 그 가운데 사라진 브랜드와 오히려 날개를 단 브랜드들에 관한 내용을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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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설립된 포드는 1922년에 링컨을 인수했으며 1927년에는 헨리 포드의 ‘철강에서 자동차까지’라고 하는 발상에 근거해 철강생산설비를 구축한 미국 내 최대의 일관생산공장 Rouge공장을 건설했다. 해외 전략은 GM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1910년경부터 T형 포드를 수출했으며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서 조립을 하고 1920년대에 들어 100%자회사의 신설을 기본전략으로 1924년에 영국, 남 아프리카, 1925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등에 생산, 조립거점을 구축했다.

 

1955년에는 디어본 모터를 매수해 농업용 트랙터부문을 확충했으며 1956년에는 현재의 포드 Aerospace Corp.(FAC)의 전신인 Aeroneutronic Systems Inc.을 설립해 우주항공, 방위 부문에도 진출했다.

 

1965년에 자동차사업을 북미 부문에 분할 1967년 지역사업 통괄회사로서 유럽포드를 설립했다. 1976년에는 영국, 구 서독, 스페인(1973년 자회사 설립)의 역내 분담 생산에 의한 소형차 피에스타를 투입했다. 1970년대에는 각 지역의 자동차 부문이 차례대로 설립되어 지역별 통괄체재 하에서 해외 사업을 확대해 일본 마쓰다와 1971년말에 업무제휴를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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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의 사업 전개의 중핵으로 된 것이 1994년에 내놓은 ‘포드 2000’이다. 1995년부터 북미자동차사업, 유럽자동차사업, 자동차부품사업을 FAO에 통합했다. 1996년에는 남미사업, 아시아태평양사업의 통합도 완료해 전 세계의 자동차사업을 일체로서 추진하는 체재를 정비했다. 이때까지는 GM과는 다른 전략을 추구했다. 하지만 1989년에는 재규어를, 1994년에는 아스톤 마틴을, 1999년에는 스웨덴의 볼보를, 2000년에는 1994년 BMW에게 넘어갔던 랜드로버를 인수해 과거와는 다른 브랜드 통합 전략을 구사했다. 이들 브랜드를 매수하는데 들어간 돈과 그들을 살려내기 위해 쏟아 부은 돈이 결국은 포드의 발목을 잡았다.

 

포드는 21세기 초 그들이 인수한 브랜드를 통합 해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고자 했다. PAG라고 명명된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PAG 디비전은 아스톤 마틴과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등이 있었다. 그런데 2006년,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내면서 소유하고 있는 고급 브랜드를 팔아 치워야 한다는 압박에 계속 시달렸다. 그 때 인구가 가능한 업체로 거론된 예는 BMW와 르노, 피아트, AB볼보 등이 있다.

 

아스톤 마틴은 2007년 3월 영국의 사업가 데이비드 리처드(David Richards)가 이끄는 조인트 벤처 회사가 쿠웨이트 석유재벌 DAR와 협력하여 4억 7900만 파운드에 사들였다. 그 후 2014년에는 이탈리아 사모펀드에게 넘어갔다. 지금까지 걸어온 역사만 보면 정말로 풍파가 많았던 회사다. 포드의 미국 내 브랜드 머큐리도 2011년을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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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1908년 W.C.듀란이 뷰익을 기반으로 설립했다. 1910년경에 미국 승용차 시장은 약 20만대였다. GM은 올즈모빌을 비롯해 캐딜락, 오클랜드(폰티악의 전신) 등을 산하에 넣어 1916년에 주식법인 GM(General Motors)을 설립했다. 1918년에는 시보레와 피셔바디를 매수하고 각종 부품회사들도 매수했다. 1919년에는 판매금융회사인 GMAC를 설립했다.

 

1920년 경영위기를 화학회사인 듀퐁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1923년에 취임한 사장 알프레드 슬론(A.P.Sloan Jr.)이 자동차산업의 틀을 완성하며 1931년에 미국 승용차판매 선두를 차지했다. 이런 국내 기반이 확고히 정비되자 1925년에는 영국의 복스홀을, 1929년에는 독일의 아담 오펠을 매수했고 프랑스에서는 부품생산을 개시했다. 1930년 이래 호주,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 등으로도 진출했다. 1931년에는 호주 홀덴을 인수했다. 포드와는 다른 형태의 세계화 전략이었다.

 

미국자동차 시장은 1920년대에는 200-300만대까지 확대되었고 1929년에는 2차 대전 전의 최고인 459만대를 기록했다. 이 즈음에는 대체수요가 중심이 되어 상급차 수요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GM은 상급 이행 마케팅을 펼쳐 대량생산과의 조합에 의해 판매를 확대하고 31년 이래 승용차 판매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GM은 무소불위의 권력의 자리에 올랐고 그런 힘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세계를 호령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듯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자만에 빠진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급격하게 흔들렸고 급기야는 1980년 자동차 생산 대국 1위 자리를 일본에게 내 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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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GM은 다양한 제휴를 통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이스즈의 디젤 엔진을 바탕으로 듀라맥스라는 엔진을 만들었고 스즈키와의 플랫폼 공유를 위한 시도도 있었다. 한 때 피아트의 지분을 20%까지 늘리면서 피아트 우노와 오펠 아스트라의 일부 플랫폼 공유을 통해 디젤차 제조기술을 접하기도 했다. 스바루 임프레짜를 바탕으로 사브 9-2라는 모델을 만들기도 했으나 오히려 나쁜 이미지만 만들었다.

 

토요타와의 합작공장 누미(NUMMI : New United Motor Manufacturing. Inc.)를 설립해 일본의 자동차 생산 기술을 배우려는 노력도 했다. 그래서 만든 차가 토요타 코롤라와 쉐보레 프리즘이었다. 같은 차를 다른 이름으로 팔았다. 코롤라는 잘 팔렸지만 프리즘은 실패했다. 브랜드의 이미지의 차이로 인한 것이었다. 폰티악 바이브와 토요타 매트릭스도 같은 관계였고 같은 결과를 보여 주었다.

 

그 와중에 GM은 1990년 스웨덴의 사브를 인수했다. 이렇게 해서 20세기 말 GM이 보유한 브랜드는 앞서 언급한 것들 외에 미국 자체 브랜드인 쉐보레를 필두로 뷰익, 캐딜락, 올즈모빌, 폰티악, GEO, 새턴 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자체 브랜드들 중에서는 쉐보레와 뷰익, 캐딜락만이 남았다.

 

이런 비슷한 일은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 사이에도 있었다. 다이아몬드 스타라는 합작사를 통해 플리머스 레이저, 이글 탈론, 미쓰비시 이클립스를 생산했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노동자들이 만들었음에도 미쓰비시 이클립스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높았다. 크라이슬러에는 20세기 말 크라이슬러와 닷지, 플리머스, 이글, 지프 등이 있었으나 플리머스와 이글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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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의 시대에 로버와 사브는 아예 존재가치도 없어져 버렸다. 1994년 BMW가 인수했던 로버에 대해 영국 언론들은 BMW가 8억 파운드를 들여 영국의 경쟁자를 없애버렸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MG로버가 무너지면서 한 때 유럽에서 자동차 대량 생산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에서 영국자본이 소유한 양산차회사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재규어와 랜드로버와 미니만이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복스홀과 포드의 영국 공장들은 모두 유럽 대륙에서 디자인하고 제조한 자동차의 부품을 조립만 하는 CKD공장으로 축소됐다.

 

1990년 GM이 인수한 사브는 2010년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져갔다. 사브는 군용기를 만들기 위해 1937년 설립됐다. 제 2차대전의 종료와 함께 자동차의 생산을 시작했다. 사브 엔지니어는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발상을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운전자가 알코올을 섭취했을 경우에는 그것을 자동차가 인식해 엔진의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하는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었다.
 
사브는 1962년의 시트 벨트의 표준장비화를 시작으로 1970년 헤드램프 워셔와 와이퍼, 1971년의 시트 히터, 1972년의 사이드 임팩트 도어 빔, 1978년 꽃가루 필터, 1985년 직접 분사 시스템, 같은 해의 시트벨트 텐셔너 등을 세계 최초로 채용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사브의 팬들 중에는 진보적인 고학력자, 전문직 종사자가가 많았다. 주류의 가치를 거부한다는 것이 사브 고객들의 사고방식이었다. 한국시장에서도 수입차 초기에 저가 공세를 통해 나름대로 입지를 구축해 나갔었다. 사브는 2007년까지만 해도 연간 12만대 정도를 생산했으나 2010년에는 3만대를 가까스로 넘길 정도로 하락세가 계속됐다

 

2001년부터 GM의 제품개발 책임을 맡게 된 밥 러츠는 처음부터 사브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사브만의 독자적인 차만들기와 엔지니어링으로 인해 이익보다 손해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펠과 플랫폼 공유를 통해 GM 에 통합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사브측은 그것을 거부했고 결과적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충족시킬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부품의 품질도 보장되지 못했다. 특히 사브는 터보 엔진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는데 실제 운행과정에서는 고열이 자주 발생해 트러블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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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입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GM이 사브를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보여 준 2006년 출시된 캐릴락 BLS다. 이 차는 사브 9-3와 스타일링만 다른 완전 동체였다. 플랫폼을 공유하더라도 인테리어에는 브랜드의 독창성을 반영하는 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당시 캐딜락 BLS는 외부 디자인을 제외하면 사브 9-3와 완전히 똑 같았다. 플랫폼 및 부품 공유라고 하는 자동차회사의 숙명을 감안 해도 너무 심한 차만들기였다.

 

결국 2008년 GM 이 급전직하하면서 네델란드의 스파이커라는 소규모회사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2011년에는 9-4X라는 컨셉트카를 모터쇼에 선보였는데 GM의 플랫폼에 디젤 엔진을 탑재할 수 없어 유럽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양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 시장을 통해 재건을 도모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으나 그것을 실현한 자금은 전무했다.

 

2011년 사브는 단돈 1만 5천 유로에 중국 SUV 제조사 후타이에 매각하려 했으나 이마저 무산됐고 같은 해 12월 19일 사브는 스웨덴 정부에 파산신청을 내며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GM 이라고 하는 거대 기업 속에서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사고의 차이이다. 독창성을 중시하는 유럽 브랜드의 특징과 달리 GM은 거대 조직의 통합을 통해 비용저감을 실현하고 그것을 통해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GM은 유럽식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전략이 없었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영광의 시대를 걸어 온 그들의 문화로 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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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메이커를 떠나 오히려 날개를 단 브랜드도 있다. 포드의 PAG에 속해 있던 볼보와 재규어랜드로버가 그것이다. 포드는 1989년 25억 달러에 인수했던 재규어와, 2000년 27억 달러에 사들였던 랜드로버를 합해 23억 달러를 받고 인도의 타타자동차에 넘겼다. 인수 후에서 두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5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부은 것까지 합하면 엄청난 비용을 들인 것이다. 때문에 헐값이라는 것도 주목을 끌었지만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가 영국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보였다.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한 이후 타타자동차의 라틴 타타회장의 발언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는 ‘”재규어랜드로버는 영국 브랜드”라며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고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인수한 것"이라며 "더 나은 차를 개발해 BMW나 아우디 같은 고급 브랜드들과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그는 공식적으로 두 브랜드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전문 경영 체제의 전형을 올바로 시행하기 위함이다.

 

타타는 인도 최대 그룹으로 설립된 지 150년이 넘었다. 타타는 ‘사회로부터 받은 것은 사회로 환원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직원과 협력업체, 고객, 국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시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틴 타타 회장이 개인용 차로 랜드로버 모델 중 가장 작은 프리랜더를 타는 것만 보아도 그의 사고방식이 어떤 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 재벌들과 달리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아니다. 타타는 사회적 책임 수행을 넘어 ‘깨어 있는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타타자동차는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하기 전인 2008년 240만원짜리 초소형차 나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런 타타의 손에 넘어간 재규어랜드로버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자동차회사 중에서 국적을 달라졌지만 그래도 강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나쁘지 않았던 두 브랜드는 포드 산하에서 독창성을 상실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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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를 인수했을 때 유럽에서 성공한 몬데오의 플랫폼을 베이스로 X-타입을 개발해 냈다. 이 차는 판매대수면에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포드 색깔이 너무 강했다. 재규어만의 헤리티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링컨 LS와 플랫폼을 공유한 S-타입도 같은 길을 걸었다.

 

2012년에 타타는 재규어 랜드로버에 연간 24억 달러 투자를 발표했는데 이는 이미 투자한 액수의 두 배였다. 더불어 중국 진출에 대한 방안도 발표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인도 내에서 판매 네트워크를 공유했던 피타트와의 관계를 끝냈다.
 
2014년에도 제품 개발과 생산에 61억 달러 투자를 발표했고 중국 체리자동차와의 합작사도 가동을 시작했다. 2016년에는 브라질에서도 생산을 시작했다. 랜드로버는 브라질의 프리미엄 SUV 시장에서 3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1억 6,000만 달러를 투자해 2016년에는 영국에 새 연구개발 센터를 오픈했다. 전기차를 비롯한 차세대 친환경 기술이 중점적으로 개발된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차세대 친환경 기술과 커넥티비티 개발을 위해 워윅 대학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타타의 유럽 테크니컬 센터와도 5,000만 파운드를 투자해 기술을 개발 중이다.

 

두바이에도 엔지니어링 센터를 오픈했다. 혹서 테스트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두바이 사막은 최대 50도까지 기온이 치솟는다. 이곳에서는 연구개발은 물론 테스트까지 진행된다. 두바이에는 이미 작은 규모의 센터가 있었지만 설비 확대와 함께 새 엔지니어링 센터를 오픈했다. 규모가 네 배로 커졌다. 파워트레인과 섀시, 오프로드 테스트가 모두 진행된다. 재규어랜드로버는 독일 뉘르부르크링과 스웨덴, 피닉스를 포함해 5개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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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측면에서 재규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이안 칼럼이라는 걸출한 디자이너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9년 재규어에 들어 온 그는 2007년 XK를 시작으로 재규어의 DNA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타타로 인수된 후에 출시된 첫 작품 XF부터 시장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신형 XJ에 알루미늄 차체를 적용해 프리미엄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했고 XE와 SUV인 F-Pace 등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재규어랜드로버의2016년 글로벌 신차 판매대수가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한58만 3,313대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재규어가 77% 증가한 14만8,740대, 랜드로버는 8% 증가한 43만 4,583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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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는 포드의 보잉사 출신 CEO 앨런 멀랠리의 과감한 결정에 의해 2010년 중국의 질리로 넘어갔다. 라틴 타타의 예와 달리 중국 기업의 프리미엄 브랜드 인수는 반신반의였다. 한국에서는 SAIC과 쌍용의 합병이 실패로 끝났다는 점도 있어 그 시각은 훨씬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 달리 볼보는 질리의 산하로 들어간 후 날개를 달았다. 자동차를 산업화한 미국의 포드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프리미엄 마인드를 중국의 질리가 인정한 결과다. 질리는 인수협상과정에서 40만대였던 볼보의 생산대수를 2013년까지 100만대 수준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했다. 실제로는 2015년에 회사 창립 89년만에 50만대를 돌파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재규어랜드로버와 마찬가지로 물량 부족으로 새로운 공장 건설을 비롯한 미래 전략의 재구성에 돌입해 있다. 볼보의 2016년 글로벌 판매실적은 전년 대비 6.2% 증가한 53만 4,332대였다.

 

볼보를 인수할 당시 질리의 창업자 리슈푸는 스웨덴 브랜드의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도록 볼보의 독립성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 질리의 볼보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내 비친 것은 2016년 리슈푸가 발표한 글로벌 전략이다. 핵심은 볼보와 질리의 통합과 볼보와 질리의 중간급에 해당하는 링크(Lynk)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개발이다. 볼보의 새로운 플랫폼 CMA(Compact Modular Architecture)을 유용해 개발되는 링크의 첫 번째 모델은 2017년 하반기 중국 시장에서부터 출시된다.

 

다음으로 차량의 공동 생산이다. 1만 4,800달러-2만 2,200달러 정도의 모델을 중국에서 생산해 유럽이나 미국 등지로 수출한다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 때문에 유럽 및 미국에 있는 볼보 공장들에서 생산한다는 것이다. 벨기에 헨트에 있는 볼보 공장이 볼보 40 시리즈를 생산하게 되는에 링크의 첫 번째 모델도 이 공장에서 처음으로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 내 공장에서 볼보의 생산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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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판매 네트워크의 공유이다. 링크만의 대리점을 구축하되 수리 등 사후 관리 부문에서는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 할 때 소요되는 비용의 부담을 줄이 귀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통합 전략은 볼보 브랜드에 위험일 수도 있다. 링크와 생산 및 서비스를 공유함으로 인해 볼보의 브랜드 가치가 손상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리슈푸는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애초에 볼보를 매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슈푸는 볼보를 인수한 근본적인 이유를 실천에 옮기고자 하고 있다. 글로벌 업체를 통해 세계의 자동차업체들과 경쟁에 나선다는 얘기이다.

이제 세상은 ‘미국 중심의 천동설’에서 ‘가운데의 나라’ 중국(中國)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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