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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오토뉴스 채영석 국장은 30년 동안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동해 왔으며 인터내셔널 엔진 오브 더 이어, 월드 카 오브 더 이어의 심사위원이다. 골드만 삭스 등 투자은행들과 다른 시각으로 산업 분석을 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3,000종 이상의 차를 타고 시승기를 쓰고 있으며 세계적인 모터쇼와 기술세미나 등에 참석해 글로벌 차원의 트렌드 분석에 힘을 쏟고 있다. 2013년 골드만 삭스가 유가 200달러 시대를 이야기했을 때 역으로 유가 폭락 가능성이 있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20. 할부금융과 포르쉐가 깨운 중국(中國) 자동차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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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charleychae@global-autonews.com)
승인 2017-01-31 01:22:15

본문

중국 자동차시장이 시야에 들어 온 것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다. 2001년 12월 중국은  WTO에 가입하며 세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정작 서구 국가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미국이 중국을 WTO(세계 무역기구 )에 끌어 들인 것은 과거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을 견제하고자 했던 것과 같은 의도였다. WTO 이전 미국은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을 통해 소련에 시장화와 자유화의 바람을 불어넣었고 걸프 전 이후 유가를 40달러에서 10달러 낮추어 전쟁을 하지 않고 소련을 붕괴시켰다. 일본이 급부상하자 1985년에는 플라자 합의를 통해 금융의 칼로 일본을 침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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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1년에는 중국의 WTO 가입을 통해 시장화와 개방화로 중국 침몰을 노렸다. 이는 한 나라의 GDP가 미국 GDP의 40~50% 부근에서 공략해 성장을 막는다는 투키디데스 함정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런 미국의 기대와 달리 2015년 기준 미국 GDP의 63%를 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금의 트럼프 정부가 내놓은 외형적인 정책 이전부터 보호무역주의, 미국 우선주의는 시대를 불문하고 추구되어 왔다. GATT나 플라자협의 때와 다른 점이라면 예상과 달리 세계의 돈은 중국으로 몰렸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는 것과 통하는 내용이다. 그것은 다분히 정치를 악용한 자본가들의 주장을 받아쓰기 한 언론들의 책임도 크다. 많은 서구의 전문가들은 중국의 연간 자동차 판매대수가 2,000만대를 돌파하자 비로소 중국의 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1992년 처음으로 100만대 생산을 돌파했고 8년만인 2000년에 200만대, 다시 2년만인 2002년에 300만대, 2003년에는 444만대 등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2005년에는 570만대로 늘었는데 이때까지는 승용차가 276만대, 상용차는 트럭과 버스를 포함해 293만대로 상용차가 더 많았다. 2007년 879만대로 증가하며 점차 그 폭발력이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 때 이미 중국 정부는 연간 판매대수 2,000만대를 전제로 도로를 비롯한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었다. 연간 판매대수 2,000만대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해 본 수치였다.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들의 중국 시장 전망에 관한 보고서도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투자하는 자본가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그 중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전망치는 중국은 공급과잉과 시장포화로 1,600~1,800만대를 정점으로 성장을 멈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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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8년 베이징모터쇼 현장 취재에서 필자는 그런 전망이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했다. 연 10%의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자본주의 경제의 확대, 그리고 국민소득의 증가, 더불어 자연환경이 항공기부터, 철도, 개인 교통수단에 이르기까지 가공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필자는 머지 않아 2,000만대 시대가 도래한다고 전망했다.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었다.

 

우선은 2007년 기준 중국인 자동차 소유 비율이 1000명당 44명에 불과했다. 미국의 750명, 세계 평균의 120명에 비하면 아직 많은 갭이 있었다. 2015년 기준으로도 미국은 인구 3억에 3억대의 자동차가 등록되어 있는데 중국은 15억 인구에 1억7,000만대에 불과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그랬듯이 수요의 증가에 기폭제가 됐다. 2006년 8월부터 실시한 자동차 할부금융제도의 이용 확대도 수요 촉발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었다. 미국 자동차산업 초창기에도 할부금융제도가 수요를 크게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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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그런 시대적인 상황에 맞춰 자동차산업에 대한 정책을 나름대로 강제적으로 수립 추진했다. 당시 중국의 자동차산업 정책은 집약화, 자체 브랜드 개발, 수출 등 세 가지 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집약화는 규모화를 의미한다. 2007년 기준 중국 내에는 120개가 넘는 자동차회사가 있었다. 그 중 상위 10개 메이커가 전체 시장의 70%를 점했다. 대부분은 수익성을 낼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자동차회사의 수를 통제하고자 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물론 강제로는 불가능했다. 안전규제와 환경규제 등을 통해 수준이 미달하는 메이커는 퇴출하는 방식을 동원했다. 그렇게 해서 적어도 연간 100만대 이상의 규모를 갖춘 회사들로 규모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두 번째로 자체 브랜드의 증대도 자동차산업 발전과정에서 필수적인 조건이다. 중국의 국영기업들은 모두가 외자 기업과 자본제휴를 통해 합작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기술과 자본을 끌어 들이고 인력을 제공해 산업 발전을 꾀하는 초보적인 과정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언제까지 그런 상태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에게 디자인과 연구개발 센터 설립을 의무화해 기술습득을 추구했다. 이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사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동시에 그런 힘을 바탕으로 수출을 확대하고자 하는 노력도 가속화하고 있다. 2006년 기준으로 중국의 수출 비중은 3%에 불과했다. 그것을 일단은 10%에 해당하는 100만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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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폭발세를 감지한 글로벌 메이커들이 브랜드 뉴 모델의 발표의 장으로 베이징모터쇼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포르쉐 파나메라가 대표적이다. 포르쉐는 2009상하이오토쇼 개최 전날 101층 규모의 SWFC(Sanghai World Financial Center) 94층에서 전 세계 기자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첫 번째 4도어 4인승 스포츠 쿠페 파나메라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포르쉐는 당초 중국도 싱가포르에 있는 아태지역본부 소속이었으나 2008년부터 중국에 별도의 중국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중국시장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포르쉐의 중국 진출은 2001년 2월 북경에 첫 번째 전시장을 오픈하면서였다. 당시의 판매대수는 30여대로 이렇다 할 수준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2년 상하이에도 전시장을 오픈하는 등 세 확장을 거듭해 2008년 30개의 딜러를 통해 판매대수는 2007년의 두 배인 7,576대에 달했다. 연간 10만대가 채 안 되는 판매대수의 포르쉐의 1/10 가량이 중국시장에서 소화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만 해도 최대 시장이 미국이고 그 다음이 독일, 영국, 일본 등의 순이지만 이 순위는 금명간에 바뀐다는 것이 포르쉐측의 생각이었고 그런 그들의 전망은 정확히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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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갑부인 워렌 버핏이 2008년 9월 지분 10%를 사들인 것도 중국시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워렌 버핏이 BYD 지분 10%를 매입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BYD 전자의 주가는 72%나 상승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워렌 버핏의 투자는 다른 투자자들에게 좋은 선례로 작용했다. 워렌 버핏은 투자한지 1년만에 8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 BYD의 사장도 세계 갑부 400명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BYD그룹은 1995년 설립됐고 산하의 BYD Auto사는 2003년 자동차사업에 진출했다. 2008년에는 세계 최초의 양산형 PHEV 를 개발했고 2010~2011년에는 전기버스와 전기 택시 시장으로 확대했다. 2015년에 중국에서의 자동차 생산 50만대를 돌파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BYD는 2004년에 친추안이라는 소형차 메이커를 인수해 자동차산업에 뛰어든 역사가 짧은 메이커다. 그리고 그 전신 역시 1996년 당시 29세의 젊은 나이의 사장 왕추안푸가 20여명의 직원을 이끌고 창업한 충전용 배터리회사다. 당시 리튬 이온 배터리 세계 시장 점유율이 2위, 휴대용 배터리는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2002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배터리회사로 급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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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D그룹은 1995년 설립된 신생 메이커로 홍콩 주식에는 2002년 상장됐다.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인도, 대만에 직간접적으로 진출해 있다. BYD는 자동차, 스마트 폰 부품, 조립, 보조 충전 전지와 태양광 발전 등의 다양한 사업영역을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분야의 수입은 전체의 50%~60%를 차지하고 있으며, 스마트 폰 부품과 조립은 30%~40%, 이차 전지 및 태양광 발전은 10%를 차지하고 있다.

 

2009년 BYD는 미국 디트로이트오토쇼에 참가했다. 그때는 미국 디트로이트 메이커들이 전기차로 미국 자동차산업을 살리겠다고 선언한 해였다. BYD는 그에 걸 맞는 모델 3 대를 전시했고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BYD는 위렌 버핏의 기대와 달리 한계를 드러냈다. 자동차를 만들어 본 역사가 일천했고 배터리 전기차 시장에 생각만큼 빠른 속도로 확대되지 않았다.

 

BYD Auto는 2013년 ‘그린 하이브리드 계획’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NEV(New Energy Vehicle : 중국에서는 배터리전기차(B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PHEV), 연료전지 전기차(FCEV)를 NEV로 분류해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중심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린 하이브리드에는 차세대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48V 플랫폼과 다수의 친환경 기술들이 포함돼 있다. BYD는 48V 플랫폼이 자동차의 전체적인 효율을 높여준다고 보고 있다.
 
2015년 BYD 그룹 전체의 매출액은 776억 위안(전년 대비 40% 증가), 순이익 28억 위안(551% 증가)로 급성장했다. 매출액의 50%를 자동차사업이 차지하고 있다. 물론 전체 판매의 90%는 중국에서 이루어진다. 친환경 자동차 분야에 대한 고성장이 실적 전망을 상향 조정한 주된 요인으로 4분기에 전기 자동차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해 시장의 왕성한 수요를 따라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중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인 ‘친' '탕’의 4분기 판매 대수는 최고를 자랑하며, K9, E6 등 배터리 전기차의 수주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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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독 스모그로 대변되는 중국의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일상적이지 않은 대책의 출현에 대한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 BYD에게는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올림픽과 함께 2008년 베이징오토쇼는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제는 꿈, 조화, 새로운 비전(Dream, Harmony, New Vision.)이었다. 모두 55개국에서 890여개의 모델들을 전시했다. 300여개의 외국업체를 포함해 1,800여개 업체가 참가했다. 55개의 컨셉트카, 7개의 세계 최초 공개 모델, 24개의 아시아 최초 공개 모델들이 데뷔했다. 100개 가까운 브랜드의 뉴 모델이 등장했다. 전시 차종은 트럭과 버스, 개조차, 세미 트레일러, 밴 등을 망라했다.

 

인해전술이라는 단어를 떠 올리게 하는 수많은 중국 현지 메이커들의 알 수 없는 자동차들이 뒤죽박죽된 쇼장의 분위기와 함께 전 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의 발길을 잡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2007년 기준 연간 판매 879만대 중 수입차의 판매대수는 31만대에 불과했지만 모터쇼장의 수입차 부스들은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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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네 가지 종류의 자동차가 있다. 수입 브랜드와 외자기업과의 합작 생산 제품, 중국 기업들의 독자 모델, 그리고 짝퉁 모델이 그것이다. 모든 글로벌 메이커들은 현지 생산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수입 모델도 들여오고 있다. 중국시장이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다.

 

중국에는 외자기업과 합작 생산제품이 있다. 중국은 2001년 WTO가입을 계기로 외자기업들의 현지 투자를 허용했다. 투자 비율이 50%를 넘지 못하게 해 자국기업의 보호 및 기술력 습득을 위한 정책이다.

 

여기서 잠깐 중국 자동차산업사를 짚고 넘어가자. 중국 최초의 자동차회사가 설립된 것은 1953년으로 중국제일자동차집단공사(FAW : First Auto Works)이 그것이다. 3년 후인 1956년에는 FAW 산하에 중국 최초의 트럭 메이커 해방이 설립됐다. 중국 최초의 승용차가 생산된 것은 1958년 둥펑자동차에 의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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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연간 생산대수 100만대를 돌파했으며 1984년에 처음으로 외자기업과 합작회사 상해폭스바겐이 출범했다. 1986년에는 푸조와 합작회사 광조우푸조가 그 뒤를 이었다. 중국 2위 기업인 상해자동차는 1990년에 태동했다. 연간 생산 200만대를 돌파한 것은 2000년에 이르러서였다. 2002년에는 북경현대가 설립되었으며 이 때부터 외자기업들의 중국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어서 2003년에는 300만대, 2004년에는 400만대, 2005년에는 500만대 생산을 돌파하며 자동차산업이 갑작스럽게 탄력을 받았다.

 

그러면서 선발 업체들이 지위가 흔들렸다. 폭스바겐은 1998년 중국시장 점유율이 59% 달했었으나 2004년에는 26%까지 떨어졌다. 중국시장의 성숙과 함께 개인 오너가 정부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구입하는 경향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제품 계획과 마케팅, 유통 등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을 요구했다. 폭스바겐은 이런 중국의 변화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로 FAW-VW, 상해VW등 중국 내 두 파트너의 방해에 의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두 회사는 상호 협력적인 관계 구축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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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폭스바겐은 생산용량을 대대적으로 늘리고 있으며 중국 내 그룹의 조직을 좀 더 민첩한 형태로의 변화를 꾀했다. 폭스바겐은 그렇게 해서 중국시장 점유율 30%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 폭스바겐이 중국 조직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GM은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로 빠른 속도로 부상했있다. GM은 폭스바겐 외에 중국시장에서 두 자리수 점유율을 가진 유일한 브랜드였다. GM차이나 그룹은 중국시장 1위를 목표로 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폭스바겐이 점유율은 하락할지라도 선두 자리는 고수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었다. 중국시장에서는 판매와 수익성이 시장 점유율 유지만큼이나 중요했다. 가격 전쟁이 비일비재하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판매 신장을 위해 가격 인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폭스바겐은 6월에 11% 가량의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이들 합작기업들의 생산대수 순위는 중국기업 분류로 보면 2007년 기준 상해자동차가 155만 4,000대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제일자동차(FAW)가 143만 6,000대, 둥펑자동차 114만 2,000대, 장안자동차 85만 8,000대, 북경자동차 69만 4,000대, 광주자동차 51만 3,000대, 기서자동차 38만 1,000대 등의 순이었다.

 

이를 외자기업 분류로 보면 GM이 104만 8,000대로 1위를 차지했고 다음이 폭스바겐 93만 7,000대, 토요타 48만대, 혼다 42만 2,000대, 현대자동차 36만 7,000대, 포드와 닛산이 각각 27만 2,000대, PSA 20만 7,000대, 스즈키 16만 1,000대 순이 된다. 물론 그 모두가 합작기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중국에는 공식적으로 2015년 기준 135여개가 넘는 자동차회사가 존재한다. 거기에 비공식적인 것까지 합하면 200개가 넘는 자동차회사가 있다. 그 중 국영기업이 아닌 기서(Chery)자동차와 질리(Geely) 자동차 등은 2000년에 들어서 시장의 확대에 힘입어 갑작스럽게 성장한 케이스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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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본의 자동차회사들은 대부분 짝퉁 모델부터 시작했다. 짝퉁도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아예 똑 같이 만들어 내는 것과 부분적으로 변화를 주어 커버하는 것 등 헤아릴 수가 없다. 해외 메이커들이 고발하는 등 다양한 대응을 했지만 중국의 법원에서 대부분 이유없다고 기각해 버렸다. 그래서 그 소송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에 이르렀다. 2007년 혼다와 토요타가 제소를 했었고 GM 대우도 마티즈의 짝퉁 체리 QQ에 대해 제소를 했었다. 그 결과 체리 QQ의 경우 중국 내에서만 판매할 수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08 베이징 모터쇼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짝퉁은 현대자동차의 싼타페 및 테라칸 짝퉁과 스마트 포 투 짝퉁, GMC 허머 짝퉁 시리즈였다. 중국에서의 복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짝퉁 자동차에도 종류가 있다. GM 대우의 마티즈 디자인을 약간 변경해 만든 체리자동차의 QQ와 같은 예가 가장 많다. 중국에는 Amycall이라는 휴대폰이 있다. N을 M으로 바꾼 것이다. 또 하나는 디자인과 차명, 로고, 설명까지 오리지널을 그대로 유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세가 더 심각하다. 스마트의 디자인을 복제하고 있는 상환자동차의 홍보 책임자 장 루이(Zhang Rui)는 그들이 만든 모델은 결코 스마트와 같지 않다고 강조했다. 스마트는 2인승이지만 4인승 모델이기에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워낙에 방대한 규모의 시장 때문에 중국이 곧 법이라는 이곳에서 통용되는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는 최근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글로벌 기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중국에 짝퉁이 난무하는 이유는 문화적인 차원의 해석에 따르면 중국 조전 수호전의 배경인 량산포에 있는 산적 소굴 산채(山寨)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발음은 ‘산자이’라고 읽으며 돈 있는 기업가들의 폭리 제품을 의리 넘치는 호걸들이 산채에서 나와 값싸게 만들어 서민들에게 공급한다는 뜻으로 통하고 있다. 여기에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소유의 개념이 없어졌기 때문에 모두가 같이 쓰는 공유의 개념이 익숙해진 것도 짝퉁의 창궐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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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자동차시장의 급성장은 서구의 산업공동화, 오프쇼어링, 아웃소싱이 대세로 여겨지던 시대적인 배경이 있다. 오프쇼어링이란 1995년에서 2005년 사이 제조업이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엄청나게 이동한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낮은 투자 비용과 최대로 저렴한 가격에 끌린 서구 소비자들의 강령에 굴복한 결과라고 폭력적인 경제(A Vilolant World : Modern Thrteats to Economic Sability, 2017년 미래의창 刊)의 저자 장에르베 로렌치는 말한다.

 

대규모의 사업 이전으로 OECD 국가에서는 수백만의 비숙련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을 떠나고 그들의 봉급 수준이 큰 타격을 입었다. 1980년대 이래 선진국에서 유출된 외국인 직접 투자는 실질적으로 엄청나게 커져 2008년에는 1조 6,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로 인해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오프쇼어링 실행 국가들의 경우 산업계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0년만 해도 28%였으나 현재는 14%로 절반으로 하락했다.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것이 중국이고 중국은 그런 서구 선진국가들의 산업공동화 현상을 틈 타 저가의 노동력으로 세계의 공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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