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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오토뉴스 채영석 국장은 30년 동안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동해 왔으며 인터내셔널 엔진 오브 더 이어, 월드 카 오브 더 이어의 심사위원이다. 골드만 삭스 등 투자은행들과 다른 시각으로 산업 분석을 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3,000종 이상의 차를 타고 시승기를 쓰고 있으며 세계적인 모터쇼와 기술세미나 등에 참석해 글로벌 차원의 트렌드 분석에 힘을 쏟고 있다. 2013년 골드만 삭스가 유가 200달러 시대를 이야기했을 때 역으로 유가 폭락 가능성이 있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209. 자동차산업의 흐름을 바꾼 사건들 (2)-21세기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charleychae@global-autonews.com)
승인 2022-07-29 09:19:57

본문

내연기관 엔진을 사용한 자동차가 등장한 지 136년이 지났다. 인류의 역사로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자동차로 인한 시간과 공간의 단축, 그로 인한 인류 문명의 발전은 실로 엄청나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등장 자체가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후 세계 경제의 발전은 자동차와 밀접한 관련이 맺으며 진전하고 있다. 경제의 핵인 금융과 결탁하며 그 도는 더 해 갔다. 금융은 자동차산업 발전에 특효약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극약이 되어 자동차산업 자체의 판도를 바꾸어 버렸다. 자동차산업의 흐름을 바꾼 사건들을 연대별로 정리해 본다. 그 두 번째로 21세기 들어 발생한 사건들을 정리한다.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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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 중국의 WTO 가입
중국의 WTO 가입은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미국이 시작한 세계화의 중심에 중국이 있었다. 그리고 중국은 그때까지 정체상태에 있었던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의 돌파구 역할을 했다. 중국에 자동차회사가 처음 설립된 것은 1953년으로 제일자동차가 그 시작이었다. 중국의 자동차생산은 1992년 100만대로 인구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8년이 지난 2000년에야 200만 대를 돌파했다.
 
2001년 WTO 가입을 계기로 중국은 시장을 개방했다. 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얻는다는 명분으로 50 : 50 합작회사 설립을 허가했고 이후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2년에 300만 대를 돌파했고 2003년에는 444만대로 늘어나는 등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2005년에는 570만대로 늘었는데 이때까지는 승용차가 276만 대, 상용차는 트럭과 버스를 포함해 293만대로 상용차가 더 많았다.
 
2007년에 879만 대에 달했을 때 골드만삭스는 중국 자동차산업이 공급과잉과 시장포화로 1,600~1,800만 대에서 성장을 멈추리라 전망했었다. 2008년 베이징 오토쇼를 취재한 기자는 2,000만 대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전망하는 칼럼을 썼다. 중국의 경제 성장 속도와 1,000명당 자동차 보유 대수, 그리고 자본주의 색깔이 강해진 사회적인 변화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2007년부터 시작된 할부금융도 중국 시장의 폭발에 크게 기여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도 한몫했다. 중국인들의 시각을 바꾸는데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는 큰 역할을 했고 그 해 중국에서는 할부금융이 도입되며 자동차 판매의 도화선이 됐다. 20세기 초 미국자동차시장의 급성장도 1920년 도입된 할부금융의 역할이 컸다.

2008년은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해이기도 했지만,nt id='ul_1' color='green' class='ul' onclick='fShowHelp(1)'>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흔들릴 때였다. 그 여파로 미국시장의 자동차 판매는 2007년 1,754만 대를 정점으로 2009년 980만대로 폭락했다. 전 세계 자동차 판매는 같은 기간 7,000만 대에서 5,900만대로 곤두박질을 쳤다. 그나마도 중국이 2009년 1,364만대로 성장하면서 그 정도(?)에 그쳤다.
 
미국은 1980년 생산 대국의 자리를 일본에 내준데 이어 2009년에는 시장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주었다. 그 사이 중국에는 자동차회사가 난립했다. 2017년 기준 공식적으로 135개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전체 생산의 70%가 합작회사들에 의한 것이고 10대 업체의 점유율로 보면 80%에 달한다. 그러니까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자동차산업에 소규모 업체들이 난립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단계적으로 5~6개로 통합한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정책이다.
 
어쨌든 중국은 2011년과 2012년 약간 주춤하다가 2013년 2,187만 대가 팔리며 2,000만 대 벽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2017년에는 2,880만 대를 돌파하며 세계 자동차 판매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지금 미국은 세계화의 피해를 거론하며 리쇼어링을 넘어 프랜드쇼어링 등을 외치고 있지만 그것은 약해진 미국의 힘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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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911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미국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의 석유회사에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려 주었지만 반대로 디트로이트 빅3는 침몰하게 하는 실마리가 되고 말았다.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가솔린 가격의 폭등과 소비자 무력증의 소위 “CNN 효과” 등 두 가지 단기적 현상이 예상되지만 심각한 손상은 야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보다는 중동에서의 장기간 혼란으로 인한 불경기가 훨씬 심각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쟁의 위협이 있을 때 이미 가솔린 가격은 배럴당 23달러에서 30달러를 넘었다. 물량 부족보다는 공급체계 붕괴에 의한 것이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지지부진함으로 인해 당초 예상대로 미국의 경기는 하락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이라크 전쟁 발발 당시 J.D.파워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41%가 가솔린 가격이 그렇게 높이 인상되면 같은 자동차보다 약간 작고 연료 효율이 높은 자동차를 살 것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었다. 34%는 더 작은 차를, 23%는 하이브리드 파워 트레인을 적용한 자동차를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일부에서는 설사 가솔린 가격이 폭등해도 이 조사에 의하면 운전자들은 그들의 운전 습관을 바꾸기를 꺼리는 것으로 결론짓기도 했었다. 소비자들은 어떤 가격일지라도 대중교통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 풀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반면 중대한 오일쇼크가 진행되면 소비자들은 SUV를 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에 대해 당시 오일 업계 전문가들은 그 정도로 중대한 충격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들 모두는 틀렸다. 흔히 하는 ‘전문가’들은 항상 그들이 필요한 전망만 한다.

부시의 이라크침공은 미국의 석유 재벌들에게는 포상받을 수 있겠지만 미국 자동차산업을 무너트린 결정적인 계기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 그로 인해 현대기아차의 급부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09년- 미국 GM과 크라이슬러의 파산
1908년 헨리 포드에 의한 대량생산 시스템의 도입, 1920년대 GM의 자동차산업 마케팅 전략의 도입, 2차 세계 대전을 통한 엄청난 수입, 1960년대까지 세계 자동차산업을 주도했던 디트로이트 빅3가 결국은 철퇴를 맞았다. ‘자유경쟁’을 표방하는 미국에서도 ‘국익’을 내세우며 ‘구제금융’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회생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자유경제 체제하의 자본주의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걸핏하면 수퍼 301조 등을 내 세우며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을 막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GM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경제 탓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1979년부터 2009년 파산보호신청을 할 때까지 단 한 번도 흑자를 내 본 적이 없는 기업이 GM이다. GM은 자동차쪽에서보다는 GMAC라고 하는 금융회사를 통해 돈을 벌었다. GMAC는 자동차 구매에 따른 금융업무라는 고유 업무 범위를 넘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 거래를 통해 수익을 올렸다. 2004년에는 GM 수익의 80%가 GMAC에서 나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GM은 제조업으로서의 본질을 망각하고 자동차산업을 금융산업화해 버린 것이다. 기술을 개발하기 보다는 다른 브랜드의 인수를 통해 제품 개발을 하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자동차산업은 뉴 모델로 먹고산다.’는 진리를 망각한 것이다. GM은 기술 개발을 통해 매력적인 신차를 내놓기보다는 ‘돈 놓고 돈 먹기’에 치중했다. 그뿐만 아니라 파산 보호 신청을 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CEO 겸 회장의 퇴직금으로 2,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하는 모럴 헤저드라는 미국 대기업병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다임러와의 결별 이후 많은 인적 자원이 회사를 떠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해결을 위해 피아트로부터 자금 수혈을 받기로 했다. 나아가 피아트 내에 알파로메오와 란치아 브랜드등의 모델에 크라이슬러 로고를 부착해 판매하려는 고육지책을 구사하고 있다. 짚과 닷지 등 강한 이미지를 가진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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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토요타 대규모 리콜
2009년은 GM과 크라이슬러 파산보호신청과 토요타의 리콜로 인한 격동의 해였다. 토요타의 리콜이 언론 지면을 장식하면서 GM과 크라이슬러의 파산은 상대적으로 묻힌 느낌이었다. 토요타의 리콜 사태가 수면 위로 부상하자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미디어는 앞다투어 토요타의 문제점 지적에 나섰다. 받아쓰기의 전형을 보여 준 결과였다.

토요타 자동차는 2006년과 2007년에 걸쳐서도 960만 건의 리콜했었다. 당시에 대부분의 미디어는 그런 리콜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행위 정도로 다루었다. 그것이 2009년에는 달랐다. 마치 처음 있는 일처럼 떠들어댔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토요타는 뭇매를 맞았다. 이는 자동차산업이 정치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내용이었다. 경제의 국경이 없다는 말이 수사였음을 보여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2009년 리콜 사태의 부상으로 1,000만 대 시대를 향해 질주하던 토요타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고 그로 인해 자동차산업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규모의 경제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것이 옳았느냐 하는 것부터 부품 아웃 소싱으로 인한 문제점 등이 거론되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일반 미디어들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GM 등 디트로이트 빅3의 침몰과 토요타자동차의 타격은 글로벌자동차산업의 세력 판도를 새롭게 짜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부터 ‘살아남을’ 자동차회사의 리스트에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던 현대기아자동차가 이제는 폭스바겐, 토요타와 함께 양산 브랜드의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 석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한 현대기아차의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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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폭스바겐 디젤 스캔들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의 핵심은 질소산화물 저감장치의 품질 보증기관에 관한 것이다. 배기가스 저감장치는 백금을 비롯한 희귀금속이 많이 사용된다. EU에서는 8년, 일본은 16년, 미국은 24년의 품질 보증 기간을 담보할 수 있는 저감장치가 채용되어야 한다. 그만큼 고가이고 그것을 양산차인 폭스바겐 모델에 채용하면 시판가격이 높아진다. 그래서 무효화 장비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폭스바겐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도덕성에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무효화 장비를 채용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했다.

폭스바겐그룹의 미국 시장과의 악연은 처음이 아니다. 1985년 전후해서 역시 미국에서 아우디를 중심으로 한 급발진 사태가 떠 올랐다. 그 사건으로 아우디는 미국 시장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급발진으로 신고된 98% 이상이 조작 부주의로 밝혀져 유야무야로 끝났다. 의문을 제기했던 교수는 언론에 해명 기사를 싣는 등 공식적으로 사과까지 했지만 이후 미국 시장에서 아우디는 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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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C.A.S.E.의 등장과 100년만의 대전환
100년 만의 대전환이라는 표현은 곧 100년 만의 대혼돈이라고 할 수 있다. 카 셰어링이나 라이드 헤일링 등으로 자동차의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지만 우버나 리프트가 먼저 도입된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은 자동차의 증가가 인구 증가를 앞서고 있고 교통 체증은 25%에 67%로 더 악화했다는 데이터들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회사들이 먼저 시작한 카셰어링 비즈니스도 수익성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축소하고 형태를 바꾸고 있다.
 
그렇다고 결론이 났다고는 할 수 없다.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를 더 많은 시간을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떻게 달라지든지 제조업을 통한 제품의 생산이 없이 인류의 삶이 영위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근육노동자의 수가 자동화에 밀려나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제조업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아디다스 공장에서는 연간 50만 켤레의 신발을 생산하는데 현장 근로자는 10명뿐이라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 노동 4.0이라는 구호와 함께 상생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수록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95%의 대학이 국립이고 학비도 없으며 졸업 후 취업하면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대학 진학률도 우리나라처럼 높지 않다. 그 때문에 일류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지옥에 내몰리는 우리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릴 때부터 성적 순위로 교육하지 않는데도 과학기술 부문에서는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20세기 말 토요타의 생산 기법 혁명에 의해 대대적인 자동화에 성공한 자동차산업은 지금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업태가 바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테슬라가 기가 프레스를 도입해 일관 생산기법을 동원하며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20세기와 다른 점이라면 C.A.S.E.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전기차 관련 기술부터 시작해 반도체, 각종 센서와 그것을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많은 종류의 관련 업종들이 자동차라는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 마련을 위해 달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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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 테슬라의 등장
폭스바겐 디젤 스캔들과 테슬라의 부상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테슬라는 2003년 출범했고 2008년 개조 전기차 로드스터로 시작했다. 2012년 첫 번째 자체 개발 전기차 모델S가 등장했고 뒤이어 모델 X와 모델3, 모델 Y가 차례로 출시됐고 지금은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디젤 스캔들을 계기로 급부상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핵심은 전기차보다는 오토 파일럿이라는 자율주행을 전면에 내 세우고 있다. 테슬라는 전통적인 자동차회사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마케팅을 통해 애플과 함께 지금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주가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면 테슬라는 모든 전통적인 자동차회사를 능가한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테슬라는 제품보다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테슬라는 제품 차원에서 슈퍼컴퓨터 도조를 비롯해 자동차를 플랫폼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수익 구조도 완성해 가고 있다. 생산 측면에서도 토요타 생산방식을 넘는 기가 프레스로 표현되는 테슬라 생산방식을 도입해 시선을 끌고 있다. 생산비용 30%를 저감한다는 내용은 자동차산업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다.

유럽연합이 2035년 전기차만 판매하도록 한 이후 테슬라의 주가는 국제경제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고공 행진하고 있다. 테슬라의 실적발표 수치의 미세한 부분까지 거론하며 애널리스트들과 유튜버 들은 어떤 경우에도 테슬라는 애플 이상의 시가총액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테슬라의 주가는 1,253달러까지 찍었다가 지금은 700달러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에 대해 일부에서는 4,000달러를 예측하기도 하고 혹자는 60달러선을 전망치로 내놓을 정도로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주가만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테슬라가 자동차회사가 아니라 기술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느냐에 대한 시각 차이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회사들의 통상적인 영업이익률은 10%대인데 비해 테크기업인 애플은 40%라는 것이 그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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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충돌이 코로나19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 새로운 복병으로 등장해 지구촌을 흔들고 있다. 자동차산업에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공급망 붕괴로 2021년 약 1,000만 대가량의 생산 감소에 이어 자동차업체들은 올해에도 그런 상황이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미국이 트럼프 시대에 국제 관계에서 신용을 잃은 결과 세계적인 공조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떤 형태로 종식이 되든 미·중 양극체제가 붕괴하고 다극 체제의 본격화가 점쳐지고 있다. 무역 차원에서 다극화가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미·중 패권전쟁에 이어 러시아의 등장까지 가세해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세기 말의 세계화가 21세기 초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을 부여했다면 이제 시작될 21세기 세계화는 어쩌면 제품 생산 가격이 인상되고 그만큼 산업이 침체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 전쟁은 역설적으로 전 세계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것을 방증해 보인다. 미국이 프랜드 쇼어링과 칩4 등을 동원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현되면 중국에서 생산되는 아이폰의 가격이 800달러 전후에서 2,0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와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칩4가 실현될지와는 별도로 미국은 지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을 볼모로 잡고 있다. 중국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시작한 무역 전쟁을 포기하고 지금은 기술전쟁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이 별무소득이 없이 끝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지금 힘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과만 싸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러시아와도 싸워야 하고 미국 무기를 가장 많이 구입했던 사우디아라비아도 예전과는 다르다. 유럽도 에너지와 식량문제로 그저 미국 입장만 따르지는 않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출로 붕괴하고 있는 나라들의 미국에 대한 원망은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은 과거에는 경제위기 때마다 달러를 찍어내 유동성으로 해결했으나 지금은 그것이 먹히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나 러시아가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차원의 리더십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의 패권전쟁으로 석탄 수요가 다시 늘고 있고 탄소중립 이슈는 멀어지고 있다. 애꿎은 지구촌의 시민들만 폭격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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