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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동차 기술 - SLC(스쿠프) 개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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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4-01-28 14: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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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 양산된 현대자동차 SLC(Sporty Looking Car) 프로젝트의 스쿠프는 국내 최초의 2도어 쿠페 차종이다. 또한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한 엔진과 변속기가 탑재된 차량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글 / 이충구 (한국자동차공학회 전회장, 전 현대자동차 사장)
출처 / 한국자동차공학회 오토저널 2013년 11월호

하지만, 무늬만 쿠페이지 프로젝트 이름에서도 알 수있듯이 스포티하게만 보이는 2도어 차량으로 쿠페의 파워풀한 스포츠 성능에는 약간 거리가 있는 차종이었다. 스쿠프는 당시 우리의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 등을 볼때 시기적으로 조금 이른 시점에 개발되어 비록 많은 양의 판매에는 실패했지만,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도래한 모터라이제이션과 국제화의 물결 속에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타보고 싶은 꿈을 심어준 차종이었다. 또한, 그 이후 차급을 달리하여 티뷰론, 투스카니,m제네시스 쿠페까지 이어오는 쿠페의 효시가 된 중요한 차종이다. 후속 차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1세대로 단
명한 불운의 차종이기도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중대한 임무를 완수한 차종이었다.

스쿠프가 갖고 있는 중요한 개발 의미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우리나라 최초 독자모델인 포니를 개발할 때부터 쿠페에 대한 열망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1974년 10월,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된 포니는 5도어 해치백과 2도어 쿠페였다. 포니 쿠페는 자동차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고(故) 정주영 회장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쿠페는 포니해치백의 개발과 함께 시작차 단계까지 많은 비용을 들여 추진되었었다.

1974년도에 81억 원이라는 엄청난 투자까지 한 뒤에 포니 쿠페의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말았다. 당시 우리 독자모델을 처음 만들어 보는 현대자동차의 브랜드를 고려한다면 판매량조차 예상할 수가 없어 결국 차체 패널 금형을 다 만들어서 조립까지 해보고 난 뒤에야 중단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포니의 수출이 중동을 거쳐 유럽과 호주로까지 판매가 확대되면서 수출부문의 책임자들과 현지 딜러들은 스포츠 쿠페 차종의 필요성을 자주 언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해외 영업본부에서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쿠페 차종이 꼭 있어야겠다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해왔다. 특히 네덜란드 딜러가 찾아와 유럽에서 쿠페 판매의 자신감을 얘기했던 일이 아직까지도 필자의 기억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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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지아로가 스타일링한 이스즈의 피아자, 로터리 엔진을 장착한 마쯔다의 RX-7 뿐만 아니라 유럽의 각종쿠페들의 목록을 제시하면서 해외영업에서의 쿠페 개발요구는 점점 커져만 갔다. 기술자로서 필자의 개인적인 쿠페 개발에 대한 욕망도 컸었던 건 사실이다. 예상 판매량을 받아보고 투자비 대비 수익성을 어림짐작해 보면 결코 진행할 수 없는 영업부문의 억지였다. 또한 고성능을 전제로 하는 쿠페를 개발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새로운 플랫폼과 정교한 파워트레인이 필요했다.

반면에 당시 우리의 맨파워와 기술력은 선진국과 경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우리가 독자 개발한 포니-2와 스텔라가 유럽, 캐나다 등지로 수출이 되면서 현지에서 발생된 문제점을 해결하랴, 후속모델을 새롭게 개발하랴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바빴던 시절이었다. 도저히 영업부분의 정통 쿠페 개발 요구를 수용할 수가 없었다.

1986년 9월, 포니엑셀 3도어 해치백 차종이 국내에 처음으로출시되었는데,‘ 엑셀스포티’라는이름으로판매를 시작했다. 그 때까지는 포니엑셀의 4도어 노치백차종과 5도어 해치백 차종만 팔고 있었는데, 3도어 해치백 차종을 추가로 출시하면서 스포티라고 붙였던 것이다. 다음 해인 1987년에는 북미까지 3도어 해치백 차종을 추가 투입시켰다. 당초 북미용 3도어 해치백은 터보차저 엔진을 탑재하여 성능을 대폭 키우는 것으로 검토했으나 실제로는 적용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처럼 쿠페차종은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엑셀 3도어 차종을 스포티라는 이름으로 판매까지 추진했던 것을 보면 경영층의 스포티 쿠페에 대한 열망은 실로 대단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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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영업부문에서 고(故) 정주영 회장의 승인을 받아낼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고성능 정통쿠페 개발 대신에‘스포티 룩킹카(Sporty Looking Car)’로 개발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고성능 플랫폼과 파워트레인 확보가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고 겉모양만 스포티한 쿠페 형상을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스텔라를 가지고 1세대 쏘나타를 만들어 성공했던 고(故) 정주영 회장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따라 한 꼴이었다. 이러한 제안은 개발 측면에서 보면 그나마 조금은 나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고성능의 쿠페가 아니라면 가지고 있던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모양만 새롭게 바꿔 스포티한 모양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1985년 봄, 경영전략회의에서 스포티 룩킹카 개발을 진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급속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회사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차종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연구개발부문이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던 최고경영층은 설계까지 해외용역을 줘서라도 진행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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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C 스타일링 작업이 긴급히 추진되었고, 1986년 3월과 4월에 이탈디자인으로부터 익스테리어, 인테리어 목업(Mock-up) 모델이 도착했다. 이태리로부터 온 주지아로의 목업 모델은 앞 유리 경사각이 많이 누워 있었고, 후드 앞단은 엔진이 들어갈 틈도 없이 낮았다. 항상 그랬듯이 많은 부분 수정이 필요했다. A-필라를 외측으로 30mm 이동시키고, 후드 높이도 배터리와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많이 올려야 했다. 루프도 헤드룸 부족에 따라 좀 더 높이고, 프론트 오버행도 100mm 이상 키워야 1.5ℓ뉴오리온 엔진의 탑재가 가능했다. 인테리어 목업 역시 많은 부분 수정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로써 SLC 디자인은 이탈디자인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우리 손에 의해 대폭적으로 수정을 한 뒤에 진행된 차종이다.

당초 SLC 프로젝트는 1989년 4월을 양산 목표로 하여 X-2(뉴엑셀) 플랫폼을 베이스로 진행되었다. 휠베이스와 전후 휠트레드는 X-2와 동일하게 2,385mm, 1,390mm, 1,340mm로 진행되었다. 서스펜션 역시 전륜은 맥퍼슨 스트럿트 타입, 후륜은 트레일링 암 타입으로 X-2와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젊은 층의 스포티 차량욕구에 대응하기 위한 타겟으로 고속 주행안전성 향상에 중점을 두어 진행했다. 낮은 루프, 풀도어 및 광폭 타이
어가 적용되었다. 특히,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전체적인 에어로 다이나믹 실루엣과 슬림형 헤드램프, 프론트에어댐, 윙 타입 리어 스포일러가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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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호주 딜러가 찾아와 영업부문의 경영층에 SLC의 컨버터블까지 요구해 왔다. 수출 영업부는 항상 딜러를 등에 없고 상품의 다양화를 요청한다. 컨버터블 개발 방법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정신이 없는데 판매대수도 적은 차종을 컨버터블까지 요구하는 영업부문이 야속하기만 했다. 컨버터블 개발 검토를 위해 핀란드에 있는 컨버터블 업체까지 방문했는데, 그 곳은 폭스바겐 시로코의 하드탑 컨버터블을 설계해주고 생산까지 위탁을 받아 진행하고 있었다. 유럽의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컨버터블 생산을 이와 같이 컨버터블 전문업체에 위탁하여 생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뒤이어 생산부문에서도 컨버터블 업체를 방문하여 아웃소싱 생산 추진하는 방향으로 검토되었었다. 하지만, 필자가 예상한 대로 적은 판매대수와 많은 투자비로 결국 컨버터블 개발 진행은 중단되었다.

SLC의 시작차 개발이 거의 끝나고 파일롯트 차량이 제작되기 시작한 1989년 중반에 종합적인 채산성 검토가 이루어졌다. 미국시장 판매는 5,644달러의 가격으로 검토가 되었으나 채산성을 맞출 수가 없었다. 채산성을 다시 검토해도 여전히 팔면 팔수록 손해만 커지는 결론이었다. 일단 미국은 투입할 수가 없는 것으로 중간결론을 내렸다. 고(故) 정세영 회장은 채산성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계변경(ECO)도 많고 하니, 프로젝트를 중단하라는 지시까지 했다. 회사 브랜드 파워가 높고 고성능 파워트레인과 플랫폼을 갖고 있었다면 몰라도 구색갖추기에 급급해 개발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에서는 미국시장에 포니엑셀을 선 보인지 3년차로 들어서면서 미국시장의 앞날에 먹구름이 감지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동안 투자된 300~500억원을 손해 보더라도 포기
하고 자신이 있는 차종만 진행하라는 취지였다. 영업 부문에서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와는 달리 자신감이 부족했다.

포니 쿠페를 도중에 중단시켰던 경험을 되뇌이며 고(故) 정세영 회장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까? 아니면 수출 영업부문과 당시 상품기획의 수장이었던 두 본부장의 설득력이 주효했던 것일까? 수 차례 상품기획전략회의를 거친 우여곡절 끝에 SLC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었다.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신규 J-카 쿠페(엘란트라 베이스)와 Y3 쿠페(쏘나타 베이스)가 계획되었다. 이렇게, 그 해 10월에 일본 도쿄와 영국 런던 모터쇼에 SLC를 출품하고, 미국에도 프레스 릴리즈용으로 차량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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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초기의 스쿠프는 일본 M사로부터 기술 도입한 뉴오리온 1.5ℓ엔진(MPI, 90마력)을 탑재하고 출시되었다. 1년이 지나 1991년 5월에 우리의 고유 독자엔진인 알파엔진(자연 흡기방식, 102마력)이 탑재되었고, 그 해 10월에는 알파 터보차저 엔진(129마력)까지 탑재되어 성능을 대폭 높인 스쿠프가 판매되었다. 이는 우리 독자 파워트레인의 개발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만든 엔진 및 변속기가 처음으로 양산차량에 탑재되어 검증을 받게 된 것이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혜안과 결단에 의해 시작된 우리의 엔진개발은 알파엔진부터 시작되어 가솔린 및 디젤엔진까지 풀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경승용차용의 아주 작은 가솔린 엔진부터 대형버스용의 큰 디젤엔진까지 현대자동차에서 필요한 엔진은 자체에서 모두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꿈이 이루어져서 세계 어떤 메이커보다도 경쟁력이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신다면 얼마나 흐뭇해 하실까……

당초 계획은 우리가 개발한 알파 엔진이 대량으로 판매가 되는 X2(뉴엑셀) 차종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X2에 탑재하는 것으로 결정할 당시만해도 캐나다에서 포니가 잘 팔리고 있었던 터였다. 당연히 대량으로 판매가 되는 차종에 우리가 처음 개발한 엔진을 탑재하려고 계획했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포니엑셀의 품질문제로 예상과 다르게 엄청난 고전을 하고 있던 때였다. 많은 양을 판매한 후에 새로 개발한 엔진과 변속기에 문제가 발생된다면 북미에서 대량 판매된 포니엑셀이 품질문제로 고전한 것과 같이 회사에 막대한 어려움과 혼란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알파엔진을 탑재한 차량이야말로 소량 판매하여 시장에서 충분히 양산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다.

최고경영층과 영업부문의 설득작업과 함께 방향 수정이 불가피했다. 독자개발 엔진을 판매량이 적은 SLC에 먼저 적용하여 검증하기로 했다. 판매도 사후관리가 가능한 선에서 몇 백대로 한정하여 가까운 지역의 고객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3축과 2축 엔진을 동일한 차량 플랫폼에 탑재하는 개발 부담은 엄청 컸지만, 새롭게 개발한 엔진에 대한 소비자의 실사용 조건에서의 양산 검증 이 중요했다. M사 설계의 3축 엔진과 마북리연구소에서 독자 개발한 우리 고유의 알파 엔진을 바로 SLC 차량에서 비교하고 검증하기로 한 것이다.

최고경영층에서도 신중한 접근 필요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독자 개발한 엔진의 신뢰성에 금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SLC 차종에 소량 적용해 보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미 개발과정에서 여러 차례 수 백대의 내구성 시험으로 확인 과정을 거쳤지만, 만일 판매된 차량에 문제가 발생되는 경우에는 차량 자체를 바꿔주는 방법까지도 면밀하게 준비를 했다. 물론 영업부문이나 판매 담당자들까지도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M사의 엔진과 변속기를 탑재해서 판매되고 있던 SLC 차량이 잘 팔리고 있던 말기에 알파 엔진을 탑재한 차량과 동시에 판매했다. 고객들의 검증 결과 분석은 우리의 몫이었다.

알파엔진은 그 동안 적용했던 일본 M사의 엔진과 레이아웃이 정반대이다. M사의 W-E(West-East) 엔진에 비해 알파엔진은 E-W(Ease-West) 배치로 엔진과 변속기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탑재가 되는 구조이다. 이에 따라 엔진룸 레이아웃뿐만 아니라 프론트 사이드 멤버의 좌우 구조까지 바뀌게 되는 등 플랫폼의 대폭 변경이 필요했다. 이렇듯 알파엔진의 탑재 검증을 위한 스쿠프의 플랫폼 변경 작업이 필요했고, 사후 관리를 10년 이상은 해야 하는 리스크도 컸지만 우리가 개발한 엔진을 양산검증하는 과정은 거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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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초기 알파엔진이 탑재된 스쿠프는 정규 영업망을 통해 정상적으로 판매된 것이 아니다. 회사 직원들이나 잘 아는 고객을 상대로 판매한 것이다. 우리가 개발한 엔진이 실제 사용하는데 문제점이 없는지를 검증한 것이다. 알파엔진에 대한 다양한 범위의 고객들에게서 조심스레 모니터링 하고, 제한된 범위 개발자들이 특별하게 모니터링을 하면서 검증 작업을 한 것이다. 조심스러운 적용 결과는 물론 성공적이었고, 그 이후에 개발하는 모든 독자 엔진 개발에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스쿠프라는 차종을 통해서…!

스쿠프는 많은 양이 팔리지는 않았고, 후속 차종으로 개발이 이어지지도 못했지만 이를 통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서스펜션에 대해 많은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독일에서는 별도의 서스펜션 시스템까지 요구해 왔다. 이러한 강한 어필에 의해 그 이후 개발된 준중형급 쿠페인 티뷰론의 서스펜션 구조에는 독일의 포르쉐와 공동으로 서스펜션을 개발하고 쇽업소버도 독일부품을 사용하여 현지 입맛에 맞추었다.

1992년 6월, 스쿠프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일부분 상품력을 크게 높였지만 1995년 5월 단산하기로 결정했다. 스쿠프는 후속차종 개발 없이 1세대로 끝을 냈지만, 한 차급이 큰 아반떼 플랫폼을 베이스로 개발한 티뷰론에 바통을 넘겨주게 되었다. 또한, 스쿠프에 처음 적용된 국내 최초 독자엔진인 알파엔진은 1994년 엑센트에 적용되어 수많은 소형차에 탑재되고 세계 방방곡곡을 자신있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구색 갖추기로 태어난 스쿠프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차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발전에 있어서는 너무나 소중한 임무와 역할을 수행한 차종이었다. 이렇게 필자의 가슴 속에는 스쿠프가 갖는 의미를 매우 특별하게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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