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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동차 기술 - J-카(엘란트라) 개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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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4-02-07 14: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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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중형 승용차는 현재 내수 및 수출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차급이다. 준중형 승용차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아반떼의 1세대 모델은 1990년 가을에 양산되어 판매가 시작된 엘란트라였다. 작년 2012년 아반떼의 생산∙판매 자료를 살펴보면 내수 11만대, 수출 25만대로 국내에서 생산 최다 규모임을 알 수 있다. 현대자동차 해외공장에서 생산된 대수까지를 포함하면 작년한해 총 86만대의 판매기록으로 조만간 글로벌 연간 100만대 규모의 차종으로 될 전망이다.

글 / 이충구 (한국자동차공학회 전회장, 전 현대자동차 사장)
출처 / 한국자동차공학회 오토저널 2013년 11월호

처음 시장에 소개된 지 23년이 지난 현재 5세대까지 모델변경 과정을 거치면서 엘란트라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보급과 대중화에 아주 큰 역할을 한 차종이다. 소형차와는 차별화된 성능과 장비들을 갖추면서도 적절한 가격을 유지하는 전략이 소비층에 주효했다. 초대 엘란트라는 고속주행에 적합하도록 Flush Surface를 적용하는 에어로 다이나믹 스타일링을 목표로 제안해서 시작했다. 주행안정성, 제동성능, NVH 개선에도 많은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양산판매 당시 독일 아우토반에서 P사의 스포츠카와 속도경쟁을 벌이던 TV 광고가 아직까지도 필자의 기억에 생생하다.

J-1 개발 당시에는 1987년 6∙29선언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계와 노동계에 많은 변화가 있던 시절이었다. 매년 반복되었던 노사분규가 막 시작되었던 시기였다. 또한, 미국 자동차 시장에 처음 진출한 엑셀 차종의 참패로 인해 현대자동차는 더욱 어려움이 겹쳤던 시기였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내에 도래한 모터라이제이션으로 내수시장에서의 자동차 판매가 활기를 띠어 J-1은 가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판매가 되기 시작했다. 양산 후 2~3년째 되는 해부터는 국내 최다 판매차종으로 새롭게 등극하면서 소형, 중형 사이의 틈새 시장을 확실하게 자리 잡으면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엘란트라는 그 이후 아반떼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대를 이어 오면서 판매의 선두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있다. J-1 개발 당시 필자의 노트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하여 우리의 준중형 승용차의 개발 스토리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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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1월, 현대자동차의 경영전략회의에서 준중형 승용차 개발 검토에 대한 지시와 개발 필요성 논의가 처음 거론되었다. 당시 고 정주영 회장의 아이디어로 출발하여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스텔라를 베이스로 개발 완료된 1세대 쏘나타(후륜구동)가 막 양산되기 시작했던 때이다. 미국과 유럽 수출을 위해서는 중형차인 쏘나타와 소형차인 포니엑셀의 중간급인 준중형 차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때였지만 늦은 감마저 있었다.

J-1이라는 코드명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선행기획부터 양산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발 단계를 거쳐 1990년 가을에 판매가 시작된‘엘란트라’이다. 당시 3년 후 서울에서 개최 예정인 88올림픽을 계기로 조만간 국내 모토라이제이션 도래를 예감한 최고경영층은 국내외 시장에서 히트칠 수 있는 모델로서 좀 더 세분화된 준중형급(C-세그먼트) 승용차의 개발 필요성에 대해서 여러 차례 논의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1980년대말까지 우리나라 승용차 시장은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로 크게 구분되어 포니엑셀, 쏘나타(스텔라), 그랜저(그라나다)가 판매되고 있었다. 스텔라는 포드의 코티나 플랫폼을 베이스로 개발되어 2.4ℓ급 엔진까지 탑재가 가능한 중형차급 이었으나, 양산 초기에는 국내의 세금 브라켓트의 이점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1.4~1.6ℓ의 엔진이 탑재되었다. 스텔라 판매 2년 후에 2.0ℓ급 엔진을 추가 탑재하고 내외장을 고급스럽게 만든 모델로 1세대의 쏘나타가 출시되었고, 이 쏘나타는 스텔라를 대신하여 중형차 시장을 확장하고 또한 중형차의 상품 포지셔닝을 확실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포니엑셀과 쏘나타 사이의 틈새를 메워줄 상품이 추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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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초부터 J-1 스타일링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이미 스포티 룩킹카(스쿠프)와 Y-2(2세대 쏘나타)의 스타일링이 이탈디자인을 통해 검토되고 있었는데, J-1에 대한 기본 컨셉트와 제원을 보내 스타일링 검토를 추가로 요청했다. J-1은 노치백 세단뿐만 아니라 당시 북미와 유럽에서 인기가 있었던 왜건과 쿠페까지도 개발하기로 했다.

국내에서 세단은 1990년 3월 양산을 목표로 진행되었고, 유럽과 미국이 각각 4개월씩 후행하여 순차적으로 양산하는 목표로 진행되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 처음 진출한 포니엑셀 차종의 참패로 인해 현대자동차는 더욱 어려움이 겹쳤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참패를 말끔히 씻어내야 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J-1 플랫폼을 베이스로 한 쿠페는 1991년 1월, 왜건은 같은 해 3월에 양산하는 계획으로 진행했다. 초기 검토에서 엔진은 1.8ℓMPI 시리우스 엔진을 표준사양으로 하고 1.6ℓMPI 및 터보차저를 갖고 있는 세턴 엔진을 옵션사양으로 정해 이탈디자인에 보낼 스타일링 요구도(Styling Requirement Drawing)를 작성했다.

엑셀 플랫폼으로 진행한 스쿠프는 코드명인 SLC(Sporty Looking Car의 약자)가 설명해 주듯이 쿠페 모양과 형식은 갖추고 있으나 탑재된 엔진도 작고 하니, 동양식으로 겸손하게 쿠페는 아니라고 고개를 숙이면서 데뷰한 것이었다. 하지만, J-1 쿠페는 정통의 쿠페코드명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거기다가, 당시 우리 고유엔진으로 개발하고 있던 알파엔진까지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과욕이 엿보이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이탈디자인에서 보내온 스타일링 견적은 총 142만달러로 당시로는 엄청난 액수였고, 세단, 쿠페, 왜건에 대한 익스테리어 디자인과 세단, 왜건에 대한 인터리어 디자인 용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당초 스타일링 진행에 대한 계획은 이탈디자인을 통해 세단 차종을 진행하고, 이것을 베이스로 하여 왜건은 우리의 손으로 스타일링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이탈디자인에 용역을 주어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많았고, 우리 독자적으로 스타일링을 추진해 보자는 과감한 의지와 함께 J-1은 우리만의 손에 의해 기본 스타일링부터 완성된 차종이기도 하다.

J-1에 대한 상세한 추진계획서를 작성하고, 디자인 컨셉트를 완결시켜 나갔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당시 개발 중이었던 X-2(뉴엑셀)의 3, 4, 5도어 컨셉트 및 Y-2(2세대 쏘나타)의 4도어 및 왜건 컨셉트뿐만 아니라 개발이 완료된 포니-2 컨셉트, X-1(포니엑셀) 3, 4, 5도어 컨셉트까지도 새롭게 정리하게 되었다.

스타일링은 수출 지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최신의 유럽피언 디자인으로 진행하고, 공기역학을 대폭 고려한 매끈한 외관 디자인으로 추진되었다. 리어 콤비램프 등 에서도 자유곡면 렌즈를 적용하여 매끄러운 외관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도어도 이러한 외관에 잘 어울리도록 풀도어 타입으로 진행되었다. 이렇듯 공기저항을 최소로 하는 실루엣과 매끄럽고 미려한 외관을 만들기 위한 Flush Surface의 외관 적용은 당시 국내에서 최초로 적용된 디자인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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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트레인 및 섀시는 일본 M사로부터 기술 도입하여 적용했다. 총 10억엔에 달하는 기술료를 지급하고 들여온 일본 기술은 판매되는 차량의 한 대당 1만엔이 넘는 로열티(엔진 5,500엔, 섀시 3,400엔, 에미션 2,500엔, 자동변속기 5,800엔, 수동변속기 2,300엔)로 거의 단산될 때까지 6년동안 지불해야 했다.

M사의 뉴오리온 엔진(1.5 MPI, 1.5 DOHC, 1.6 DOHC)과 뉴시리우스 엔진(1.8 DOHC)은 많은 부분 새롭게 개발된 엔진이어서 많은 금액을 지불한 것이다. 전륜 서스펜션은 맥퍼슨 스트럿트 방식, 후륜 서스펜션은 3-링크 토션빔 타입으로 진행되었는데, 전륜에 오프셋코일 스프링을 처음 적용하여 서스펜션의 동특성을 한층 개선시켰다.

J-1은 소형과 중형 사이의 새로운 틈새에서‘High Tech, High Power, High Performance’를 개발 목표로 하고, 포니엑셀 소형차와의 차별화와 고급화하는 컨셉트로 했다. 도어 세이프티 빔, 클러치 록 시스템, 안티다이브 시스템, 이중구조 대쉬패널 등 안전성과 소음진동 개선 등을 위해 초기 기획단계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진행했다. 조작성, 시인성, 거주성 향상을 위한 패키지 검토 및 인간공학을 중시한 스타일링이 진행되어 포니엑셀 개발 당시 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레이아웃 설계가 이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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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의 도면을 제작하는 방법도 완전히 새롭게 진행되었다. 10m나 되는 현도판 위에 올라가서 손으로 일일이 도면 작업을 하던 설계를 전산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항공기 설계에 사용되었던 카티아라는 CAD 장비를 도입하여 도면전산화 설계를 시작하게 된 것이 J-1 프로젝트부터였다.

필자는 당시 카티아 개발자였던 불란서 다쏘 엔지니어링 회사에 전산실 책임자와 함께 출장 방문해서 당시 아주 걸음마 단계에 있던 카티아라는 CAD용 Software 를 전격 도입하기로 결정했던 기억이 새롭다. 워낙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전산화가 절실했지만, 당시만 해도 카티아라는 CAD용 Software를 자동차 설계에 적용하려는 것을 일본이나 미국회사에서도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개발 담당자를 만나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이 시스템을 애용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일본의 H사와 우리가 최초로 자동차 설계에 적용하게 되었다.

그 이후 4~5년 동안 다쏘와는 밀착해서 문제점을 개선하고 해결하면서 사용자와 개발자가 자동차 설계에 맞추어서 공동 개선, 개발한 것으로 기억된다. 필자의 노트 기록에 의하면 1989년말 기준으로 현대 자동차는 140대 가량의 카티아 그래픽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모두 3~4대의 호스트 컴퓨터에 연결되어 사용되었다. 요즈음의 개인용 컴퓨터나 워크스테이션 개념이 아닌 대형 중앙 컴퓨터에 터미널로 연결하여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램 용량도 32MB, 64MB급으로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종을 사용했지만, 요즈음 PC의 GB급 용량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CAD뿐만 아니라 차량 충돌해석, 승객 거동예측, 차량 동력학 해석, 제동특성 분석, 차량거동 예측 등과 같은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툴들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여 설계에 참조되기 시작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우리나라 산업체에 민주화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처음 겪은 노사분규는 많은 혼란과 상처를 주었다. 노사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그 이후에도 많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노사분규는 매년 매우 격렬해졌고, 생산과 신차개발에 많은 어려움과 지연이 뒤따랐다.

J-1 신차개발 역시 당시 연례행사처럼 치러졌던 노사분규에 의한 휴업과 직장폐쇄 등으로 프로젝트의 진행에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J-1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을 당시 노조 위원장이 R&D 출신이 었고, 위원장 핵심참모들도 연구소에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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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공장에 대한 검토도 병행하여 진행되었다. 울산에 30만대 규모의 J-1 조립공장 신설이 검토되었는데,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매년 100만대 이상의 생산규모를 갖는 회사로 부상하려는 야심에 찬 계획이었다. 이 당시 미국에 포니엑셀 수출을 시작하면서 생산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하여 신규차종 생산공장 검토의 기본 단위가 보통 30만대가 되었다.

생산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제조원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KD부품 국산화가 절실해졌다. 또한, 당시일본의 엔화가치가 높아져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KD부품 중에서 국산화가 늦어지는 부품은 미국과 유럽 업체들과 기술개발을 하는 작업도 병행하여 진행되었다.

1990년 10월, 울산에서 J-1 엘란트라 양산 1호차가 생산되었다. 국내에서의 판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판매가 시작했다. 엘란트라 차명은 해외 일부 지역에서 상표권 등록에 저촉되는 문제가 발생되어‘란트라’라는 차명으로 수출되었다.

미국 수출은 다음해 4월을 목표로 하여 진행되었다. 미국시장에서 엑셀의 판매 부진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궁지에 몰려도 미국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재기의 다짐을 하면서 J-1 미국 수출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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