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오토뉴스

상단배너

  • 검색
  • 시승기검색
ä ۷ιλƮ  ͼ  ī 󱳼 ڵδ ʱ ڵ 躴 ͽ ǽ ȣٱ Ÿ̾ Auto Journal  Productive Product

혼다 수퍼커브 스토리 – (2) 손 안에 들어오는 모터사이클을 만들어라

페이지 정보

글 : 유일한(chepa@global-autonews.com)
승인 2017-09-28 00:05:25

본문

혼다의 경영진들과 직원들은 하나가 되어 수퍼커브 제작에 몰두했고 엔진, 변속기, 차체 설계를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4월부터 이 모두를 감싸는 카울, 즉 외장에 대한 디자인이 시작되었다.

 

쇼이치로는 항상 ‘한 손에 잡힐만한 물품을 만들어라’라고 말했다. 갓 입사했던 키무라는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기에 처음에는 “시즈오카(혼다 쇼이치로가 성장한 마을이다) 특유의 방언인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당시 엔진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던 카와시마 키요시(河島喜好, 후에 혼다의 2대 사장이 된다)에게 정확한 뜻을 물어보기로 했다. 같은 지방에서 자란 카와시마라면 그 뜻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와시마는 “그 말은 ‘누구나 손 또는 신체를 사용해 다룰 수 있는 작은 것을 만들라’는 의미”라고 하면서 친절하게 뜻을 알려주었다. 즉,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컴팩트 모터사이클을 제작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f646c43556b0aeed88b5abddcf5c1855_1506523 

수퍼 커브의 전체적인 디자인을 결정하면서 쇼이치로가 특히 신경썼던 것은 휠 타이어의 크기였다. 새로 제작한 엔진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저회전에서 안정적인 힘을 발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휠 타이어 크기를 찾아야 헸다. 발을 크게 들지 않고도 탑승이 가능함과 동시에 클러치 페달이 적절한 위치에 있어야 했고, 견고하게 제작된 프레임에 최적의 기동성도 부여해야 했다.

 

그 말인 즉슨, 차체 디자인이 휠 타이어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쇼이치로가 주장하는 ‘한 손에 잡힐만한 물품’이라는 점에서 당시 일본인들의 평균 신장도 고려해야만 했다. 당시 유럽 모터사이클들은 대부분 타이어 지름이 24-26인치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유럽인들의 큰 신장을 고려한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타이어 지름이 더 작아야 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과 휠 지름 17인치, 타이어 지름 21인치가 최적인 것으로 결정되었다.

 

엔진의 목업이 도착하고 이를 차체, 휠 타이어와 조합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변속기가 통합된 엔진은 길이 450mm, 너비 124mm로 상당히 컸다. 여기에 두 개의 휠타이어를 조합하고 휠베이스를 1,200mm로 맞췄으며, 엔진을 낮게 수평으로 배치했다. 이후 핸들바, 시트가 위치하는 곳을 디자인하니 현재의 수퍼커브와 유사한 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했다. 즉, 타이어의 크기가 현재 수퍼커브의 디자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당시 일본에서는 수퍼커브 크기에 맞는 타이어를 생산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물 모형을 제작해야 하는데 타이어가 없으니 제작이 어려웠고 완성되었을 때의 이미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결국 디자인팀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생산되고 있던 18인치 타이어를 구매한 후 자르고 다듬어서 바느질한 끝에 17인치 타이어를 간신히 제작했다. 타이어는 이 때뿐만 아니라 양산 직전에도 끊임없이 개발진들을 괴롭혔다.

 

개발을 방해하는 출산의 고통
f646c43556b0aeed88b5abddcf5c1855_1506523 

차체 디자인을 담당했던 하라다 요시로(原田義郎)는 타이어를 공급하는 회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해도 모터사이클 단 한 모델만을 위한 표준 부품을 제작하지는 않습니다. 이 특별한 크기의 타이어를 제작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회사도 없었고, 몇 번이나 거절을 당하고 나니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절망만 남았습니다. 그 때 즈음에 어느 작은 타이어 제조사가 나타나서 ‘제작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시대라면 한 대의 모터사이클 또는 자동차를 개발하기 전에 몇 십 개의 디자인 스터디가 쏟아지게 마련이지만, 수퍼커브를 개발할 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대신 디자인에 대해 번뜩이는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책상에 가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멋지군”, “이건 아니야” 또는 “이것을 여기로 가져가면 어떨까?”, “이 두 개중에 어떤 것이 더 좋아?”와 같은 토론들이 이어졌다. 이와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소이치로와 직원들이 한 마음이 되어서 기계를 제작하고 그 뿌리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즈음에 쇼이치로의 제안에 따라 수퍼커브의 1:1 클레이 모델이 제작됐다. 클레이 모델을 사용하면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거나 시험 제작을 할 필요가 없이 모든 조사를 3차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 또한 개발과 관련된 사람들이 클레이 모델을 보고 나서 개념에 대해 즉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키무라는 입사한 지 얼마 안되어 모터사이클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론트 카울을 잘 다듬지 못했는데, 이 때 소이치로가 직접 클레이 모델을 만지기 시작했다.

 

쇼이치로는 프론트 카울의 폭을 조금씩 좁히면서 “바람이 이렇게 흘러와서 카울을 타고 이렇게 흘러간단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때, 너무 폭을 좁혀서인지 클레이 모델에서 금속 부품이 노출되면서 소이치로가 손가락을 다쳤다. 쇼이치로는 그러면서도 계속 모델을 다듬어 나갔기 때문에 키무라가 병원에 달려가서 반창고를 받아오기도 했다.

 

f646c43556b0aeed88b5abddcf5c1855_1506524 

수퍼커브를 개발하면서 쇼이치로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에 도전하고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쳐라. 그 일은 매우 힘들지도 모르지만, 성공의 가능성에 비하면 고통은 상당히 짧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꿈에 생명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직원들의 사기를 드높이고자 했다. 쇼이치로의 지도를 따랐던 직원들 역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새로운 차원의 설계를 열어나갔고, 그것은 수퍼커브 개발에 큰 도움이 되었다.

 

키무라는 수퍼커브의 프론트 포크와 윙 형태의 강철 핸들바를 제작했다. 프론트 포크의 디자인은 그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밤비’를 보고 떠올린 것으로, 아기 사슴 ‘밤비’가 전속력으로 뛰어가다가 앞다리를 쭉 뻗어서 급정지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단시간의 장면에 감명받은 그는 그 이미지를 수퍼커브의 프론트 포크 디자인에 이용했다.

 

윙 형태의 강철 핸들바 역시 혼다만의 오리지널 디자인이었다. 키무라는 당시 수퍼커브와 함께 벤리 디자인도 맡고 있었는데, 여기에 강철 핸들바를 적용함으로써 호응을 이끌어냈다. 당시 수퍼커브는 스틸 튜브 핸들바를 적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그는 윙 형태의 강철 핸들바가 벤리에서 이미 효과를 보았음을 주장하면서 수퍼커브 역시 이 핸들바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결국 모두의 동의를 얻어냈고, 현재의 수퍼커브 핸들바 디자인이 나올 수 있었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하단배너
우측배너(위)
우측배너(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