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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컬렉션 홀 방문기 - (3) 모터사이클을 넘어서 자동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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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일한(chepa@global-autonews.com) ㅣ 사진 : 유일한(chepa@global-autonews.com)  
승인 2017-11-23 00: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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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컬렉션 홀 정문 옆에는 혼다가 제작한 최초의 자동차인 스포츠 360이 전시되어 있다. 이 차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상당히 적을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차가 양산용이 아니라 혼다의 자동차 제작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실험용 모델이기 때문이다. 혼다 최초의 양산차는 실용적인 트럭인 T360이지만 스포츠카를 먼저 제작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혼다는 자동차에 담겨있는 역동성과 내구성을 중시하고 있고 이는 다른 모델에도 이어져오고 있다.

 

수퍼커브 등 다양한 모터사이클을 제작하면서 사람들의 이동을 좀 더 쉽게 만들었던 소이치로는 모터사이클을 넘어 자동차도 제작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를 출시할 때는 정말 철저하게 제작하여 출시하고 싶어했다. 1950년대 말부터 자동차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면서도 1963년에 최초의 양산차가 등장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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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60에는 당시에 일본에서 흔하지 않은 방식이었던 DOHC 엔진이 탑재되었고, 이 엔진은 당시 최고출력 30마력을 발휘해 당시 동급의 다른 트럭들보다 20마력이 더 높았다. 엔진이 차체 중앙에 탑재되어 핸들링 능력이 향상된 것은 덤으로, 트럭에도 역동성을 강조할 정도인 혼다의 고집을 알 수 있다. 보닛에 위치한 커다란 H 엠블럼은 프레스 방식으로 다듬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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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를 이어 제작된 S500은 혼다의 스포츠카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다. 이 차에는 당시 혼다가 축적했던 최신 모터사이클 기술들이 적용되었고, 531cc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44마력을 발휘했다. 당시 소이치로가 항상 외쳤던 말은 ‘우리가 경험이 부족할지는 모르지만, 기술만은 갖고 있다’였고, 이를 증명하게 위해 갓 자동차 양산을 시작하는 동시에 모터스포츠의 최고봉인 F1에 진출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모터스포츠에서 얻은 기술은 얼마 안 가 바로 양산차에 적용되었는데 당시 엔진 내에 8개의 오일 격벽을 설계한 것도 그런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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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가 처음 개발한 AS 시리즈 엔진은 잇달아 개량을 거듭하면서 S800에까지 탑재되었고, 최종적으로 개량된 AS800E 엔진은 최고출력 70마력을 발휘했다. 이와 같은 높은 출력으로 인해 당시 경쟁하던 다른 컴펙트 스포츠카들을 젖히고 최고속도 160km/h를 달성했으며, 이를 통해 ‘100마일 카’라는 별칭을 얻었다. 흔히 컨버터블 모델만 기억하지만, 혼다는 쿠페 모델도 생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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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는 그렇게 스포츠카를 적극적으로 제작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인 ‘일반인들을 위한 이동성’을 잊지 않았다. 1967년에 등장한 경차 N360에 그런 정체성이 담겨있는데, 당시 4명의 성인이 탑승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의 확보를 위해 혼다 최초로 전륜구동을 적용했고, 2기통 354cc 엔진은 최고출력 31마력을 발휘해 경쟁 모델들이 발휘했던 평균 20마력보다 더 높았다. 가격 또한 313,000엔 이라는 저가로 시작해서 인기를 끌었다. ‘자동차는 작게, 사람은 크게’라는 광고 문구를 통해 혼다의 정체성을 정확히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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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혼다의 도전이 언제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1969년에 등장했던 혼다 1300 시리즈는 수랭식 엔진 대신 DDAC(Duo Dyna Air Cooling) 공랭식 엔진을 탑재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기에 하는 것이다’라는 모토를 걸고 개발한데다가 소이치로의 의지도 있었지만, 이 엔진과 1300 시리즈는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가 전시되어 있는 이유는 그러한 실패를 겪기도 했기에 지금의 혼다가 있다는 헤리티지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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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73년, 새로 제작한 CVCC 엔진을 탑재한 혼다 시빅이 등장했다. 이 엔진은 전자장비나 후처리 장치를 적용하지 않고 보조 연소 챔버와 혼합기 장치만을 사용해 깔끔한 연소가 가능하도록 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강력한 머스키 법을 통과했고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미국에서 판매되던 자동차들에 비하면 시빅의 크기는 한 없이 작았지만, 오일 쇼크가 발발하면서 연비 면에서 우수했던 시빅은 더 인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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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의 인기에 힘입어 자동차로도 적극적으로 미국에 진출한 혼다는 1976년, 시빅의 차체를 기반으로 전체적으로 크기를 늘린 어코드를 출시했다. 현재 세단 형태만 존재하는 어코드를 기억한다면 1세대 모델의 모습이 어색하겠지만, 당시의 어코드는 3도어 해치백 모델이었다. 미국 시장을 고려하여 세단 모델이 추가된 것은 1년 후의 일로, 이를 통해 어코드는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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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코드 3세대 모델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모델도 있다. 왜건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열 도어만을 갖추고 있는 어코드 에어로덱 모델인데, 대중적인 모델인 어코드에 정통 ‘슈팅브레이크’의 디자인을 적용했을 정도이니 혼다가 얼마나 파격적인 회사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즉, 앞으로 혼다에서 ‘어코드 슈팅브레이크’가 등장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 속의 자동차들이 현재의 혼다를 만든 것이다.

 

(4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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