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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 미쓰비시 추락의 전말과 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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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ㅣ 사진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4-07-13 06: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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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추락의 전말과 교훈

기업의 폐쇄적인 경영 스타일이 일본 4대 자동차회사인 미쓰비시를 존폐여부마저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미쓰비시는 이미 4년 전 일본 내 소비자들에게 차량의 결함을 속였던 것을 숨기려 했던 첫 번째 사건으로 명예를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었다. 당시의 사건은 이제 2003년 스핀오프 되어 다임러크라이슬러 산하로 들어간 미쓰비시 Fuso 트럭 및 버스 상사에까지 번지고 있다.
이 새로운 리콜 관련 사건은 미쓰비시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수준을 넘어 회사 자체의 존폐까지 미궁에 빠트리고 말았다. 미쓰비시 추락 사건의 전말을 정리해 본다.

미쓰비시의 부도덕한 행위는 단지 제품 리콜 은폐로 인한 것만은 아니다. 미쓰비시는 1996년 미국 내 자회사에서 미국인 여직원 약 300명으로부터 직장 내에서 상습적 성희롱을 당해왔다며 집단으로 고소를 당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쓰비시는 3,400만달러(약 380억원)라는 성희롱 소송 사상 최대의 화해금을 물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물론 그로 인해 미쓰비시의 이미지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1998년에는 경영진이 총회꾼에 불법이익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또다시 물의를 일으켰다. 내부적으로 종업원을 무시하는 성희롱 사건에 주주를 경시하는 총회꾼 사건으로 안이 곪아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그런데 이에 그치지 않고 2000년에는 리콜 은폐사건이 불거지면서 미쓰비시의 추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자동차회사가 소비자를 속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미쓰비시의 리콜 정보 은폐에 관한 사건이다. 지난 2000년 6월 일본 운수성에 익명의 제보자가 전화를 해 미쓰비시의 리콜 정보 은폐에 관해 제보함으로써 사건은 시작되었다. 제보를 받은 운수성은 미쓰비시자동차회사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해 직원 라커룸에 있던 엄청난 비밀장부를 찾아냈다.
일본의 법률에 의하면 제품결함으로 인한 리콜정보는 운수성에 보고해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미쓰비시는 이런 절차를 밟지 않고 자체적으로 비밀 리콜을 30년 동안이나 계속 해 온 것이다. 전체 리콜 정보 중 운수성에 보고한 것은 20%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비밀 장부로 분류해 취급한 사건이 드러난 것이다. 이처럼 은폐되어온 제품은 일본 내수는 물론이고 수출시장까지 포함해 100만대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4위의 업체이자 현대자동차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차만들기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한 회사로서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당시 미쓰비시 관계자들은 기업 이미지의 실추를 우려해 은폐했다고 밝혔다. 또한 문제가 있는 차량의 결함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회수·시정해온 만큼 소비자 안전엔 지장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잘못된 판단은 그리 오래지 않아 실수였음이 드러났다. 차량 결함으로 인한 인명사고가 밝혀지면서 사건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것이다.
2000년 여름 한꺼번에 80만대를 리콜해야 했고 2001년 초에 또 다시 130만대를 추가로 리콜해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 결과 2000회계연도에만 당초 예상의 두 배 가까이 되는 22억 달러(2,700억엔)의 적자를 기록하며 나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미쓰비시는 생산량 20% 감축 및 원자재 구매비용 15% 저감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2003년까지 직원 14%인 9,500명을 감원을 추진한다는 내용도 포함디어 있었다.
밖으로는 독일의 다임러크라이슬러에 주식의 37%를 넘기면서 자금 조달을 위한 노력을 했다. 그로 인해 2000년 2,70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던 미쓰비시는 다임러와의 제휴 이듬해인 2001년 120억엔, 2002년 373억엔 흑자로 살아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후광 덕분이었다. 그러나 2003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북미시장에서 1,000억엔대의 손실을 기록한 데다 신차판매도 급락하면서 위기감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올 들어 다시 미쓰비시는 미쓰비시 트럭의 리콜 은폐사건에 휘말리게 됐다. 1996년에 대형 트럭의 클러치 부분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으나 이에 대한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고 은폐한 사실이 다시 불거졌다. 당시 미쓰비시는 대책회의를 통해 클러치 부분의 결함과 관련된 37건의 사고가 보고 됐으나 리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그대로 두면 2004년이나 2005년 경 파손사고가 70건-80건에 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공개하지 않은 채 문제가 발견되면 수리해 주기로 하고 덮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2002년 문제 부위의 파손으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후방 차량의 유리창이 깨지는 등 잇달아 사고가 발생했다. 요코하마에서 주행 중이던 트럭의 바퀴가 빠져 사고지점을 지나던 29세의 여성이 즉사하고 두 아들이 크게 다친 사고가 대표적인 것이다. 소비자들은 소송을 하기에 이르렀고 차체 결함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다시 한번 리콜 은폐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그 결과는 클러치 결함으로 인해 16만대의 리콜로만 끝나지 않았다.
일본 가나가와현 경찰에 의해 우사미 다카시(63) 전 미쓰비시 푸조 회장과 하나와 아키오(63) 전 상무 등 임직원 7명의 간부가 체포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미쓰비시 관계자들은 사고 직후 사내에서 국토교통성 및 수사당국의 조사에 어떻게 대응할지 여부를 놓고 회의를 열어, 바퀴축의 강도와 관련해 허위보고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쓰비시자동차는 트럭뿐 아니라 승용차의 판매까지 급격히 줄었다. 특히 한번도 아니고 잇달아 사고를 은폐해 기업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면서 미쓰비시에 대한 소비자들의 태도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버렸다.
그 결과 지난 5월 미쓰비시의 자동차 판매대수도 작년 같은 기간 대비 56.3%나 감소했다.
또한 3월 31일로 끝난 2003 회계연도 실적 발표에서 2154억엔(19억달러)의 순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월 내놓은 예상치의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여기에 2004 회계연도 역시 2300억엔 손실을 기록, 적자폭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업친데 덥친 격으로 최대 주주인 독일의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더 이상 미쓰비시에 대해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회사의 운명은 풍전등화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미쓰비시측은 또 다시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다. 4월 21일 그룹으로부터 4500억엔의 자금 조달과 전체 인력의 22%삭감을 골자로 한 경영회생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그 안에 따르면 2007년까지 1,540억엔 규모의 비용을 줄이고 부채규모를 40% 감축한다는 것과 향후 3년 동안 44개 신 모델을 출시해 영업력을 강화한다는 안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대대적인 구조조정 안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그로 인해 채 한달이 못돼 새로운 안을 내놓았다. 사원 임금 5% 삭감과 임원보수 최대 50% 삭감 및 퇴직 위로금 보류 등을 통해 앞으로 2년간 726억엔의 경비절감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경영정상화 계획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지금 미쓰비시의 앞날은 오리무중이다. 미쓰비시 그룹으로부터의 지원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며 해외 대규모 자동차업체들도 미쓰비시 인수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쓰비시는 1917년 이탈리아 피아트 모델을 베이스로 모델 A라는 일본 메이커로서는 가장 먼저 양산 승용차를 만든 메이커다. 1950년대 후반에 자동차 투자를 강화해 1959년에는 첫 번째 자체 디자인 승용차 미쓰비시500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자동차산업에의 길을 걸었다. 70년에는 미쓰비시중공업에서 미쓰비시자동차를 분리했고, 곧바로 미니카에서 대형차까지 풀라인업을 갖췄다. 직접분사방식의 디젤엔진을 개발하는 등 한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한 미쓰비시는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에게 기술을 전수한 메이커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현대차에 외국의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이전을 꺼리는 엔진 기술 등을 넘겨줬다.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는 초창기 많은 모델들을 미쓰비시로부터 들여와 조립생산했었다. 싼타모와 갤로퍼, 그랜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미쓰비시는 판매 하락과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2003년 세계시장에서 판매 대수가 153만대로 2002년(174만대)보다 12% 이상 줄어든 데 이어 올해 들어 더 악화되는 등 전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미쓰비시가 이렇게까지 추락하게 된 배경에 대해 관료적인 기업문화를 꼽고 있다. 미쓰비시자동차는 방위산업체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30년 전 분리된 회사다. 그런데 새로운 개념으로 경영을 하지 않고 일부 특정 고객만을 상대로 하는 군수업체의 폐쇄적인 관행이 미쓰비시자동차에 그대로 적용되어 온 것이다. 이런 관료적이면서도 폐쇄적인 기업문화로 인해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불상사가 끊임없이 계속됐다.
더욱이 그런 문제가 불거졌을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당장에 책임을 회피하거나 은폐하는 식으로 대처를 결국은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80년대 중반까지 미쓰비시는 토요타, 닛산과 함께 일본 승용차 시장 빅3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조5000억엔이라는 거액의 부채를 해결하지 못해 미쓰비시 그룹까지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매경 이코노미 2004/ 7/21자 기고)




채영석(charleychae@ico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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