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오토뉴스

상단배너

  • 검색
  • 시승기검색

GM의 흥망성쇄와 자동차산업의 본질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9-06-15 06:46:42

본문

GM의 흥망성쇄가 주는 교훈

101년간 미 자동차 회사의 전설이었던 GM이 공식 파산신고 절차에 들어갔다. 특별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미 20세기 말 많은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GM을 비롯한 디트로이트 빅3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언제 어떤 형태로 종말을 맞을 것인가에 더 관심이 집중되어왔다. GM은 어떤 길을 걸어왔고 무엇 때문에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되었을까.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GM의 역사는 1908년 W.C. Durant 가 1904년에 매수한 뷰익을 기반으로 지주회사 General Motors Co. 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올즈모빌, 캐딜락, 오클랜드(폰티악의 전신) 등을 차례로 매수해 1916년에는 주식회사 General Motors Corp.로 발전했다. 이어서 1918년 시보레와 피셔바디를 비롯해 부품회사 등을 매수하면서 규모를 늘려 갔다.

자동차산업이 규모의 경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바로 이 GM을 비롯한 미국 메이커들의 전략 때문이었다. 자동차를 발명한 것은 독일이었고 그것을 상품화한 것은 프랑스였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오늘날과 같이 국가의 기간산업으로까지 끌어 올린 기업화는 미국 메이커들이 주도했다. 그 촉발은 헨리 포드가 창업한 미국의 포드자동차가 1908년에 출시한 T형 포드였다. 대량생산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모델로 꼽고 있는 T형 포드는 모델 체인지를 하지 않고 단일 모델로 1,574만대 생산이라는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기록을 세웠다.

그것을 본 당시의 사업가들은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창출해 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GM 의 브랜드 계열화와 모델체인지라는 마케팅 기법이었다. 하나의 모델로 시장에서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얻기에 어렵다는데 착안해 매년 새 모델을 만들어 소비자들을 끌어 들이는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저가에서 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만들어 소비자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전략도 수립하게 된다. GM의 경우 대중 브랜드인 시보레부터 시작해 올즈모빌, 폰티악, 그리고 럭셔리 브랜드인 캐딜락까지 다양한 브랜드와 모델을 구비해 규모의 경제의 조건을 만족시키기에 이른다. 단순히 생산해서 판매한다는 개념에서 진 일보 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한 마케팅을 통해 자동차산업을 거대화 한 것이다.

그런 GM의 전략은 시대적인 흐름과 맞아 떨어져 미국의 자동차업계는 1930년대 이후 적어도 규모의 측면에서는 세계를 주름잡기에 이른다. GM은 1931년에는 미국 최대 메이커로 부상해 오랜 영화의 바탕을 마련했다. 이후 끝없는 성장을 거듭해 1954년에는 미국 내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며 군림하기 시작했고 그 해 자동차 누계 대수 5,000만대를 돌파했다.

포드와 크라이슬러를 합해 소위 말하는 빅3로 완전히 통합된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세계를 호령했고 더불어 미국 경제를 부흥시켰다. 물론 미국 내에서는 1920년대 후반 철도산업과 자동차산업 중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 끝에 자동차쪽으로 결정하면서 그 힘은 훨씬 커진 역사도 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미국에 좋은 것은 GM 에 좋다.”는 격언(?)이 생길 정도로 자동차산업은 미국을 상징하는 위치에 오르게 됐다. 자동차산업의 발전은 미국의 발전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였다.

1960년대의 상황도 GM을 비롯한 미국 메이커들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해 주었다. 미국의 경기 호황과 세컨드카 개념이 등장하면서 판매는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유럽 메이커들도 그런 미국시장을 노리고 컴팩트카를 판매하면서 시장은 시너지효과를 내며 확대 일로의 길을 걸었다. 1975년에는 미국 내 생산 465만대를 비롯해 전 세계 시장에 GM 이 판매한 자동차 대수는 663만대에 달했다. 고용인원도 85만명에 달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과유불급이다. 거대한 덩치로 성장한 미국의 자동차업체들은 배가 불렀다. 이후 기술 개발보다는 정부쪽에 로비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금융산업과 연계해 자동차 판매대수를 끌어 올리는데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사실 규모의 경제가 우선이라는 자동차산업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특별한 변수만 없었다면 여전히 디트로이트 빅3는 자신들의 입지를 유지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시장의 힘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창조하고 그들이 기업화를 위해 사용했던 수법들이 그들의 목을 죄는 결과를 낳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미국의 자동차산업이 오늘날과 같이 성장하게 된 또 하나의 요소는 금융산업과 연계한 할부판매다. 거액의 돈이 필요한 자동차를 분할 납부를 통해 구입할 수 있게 해 자동차의 수요를 상상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금융위기가 닥치자 모든 시스템이 정지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까지 몰리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 자동차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일거에 드러났고 더 이상 자력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2008년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은 22%, 고용 인력은 25만 명으로 줄어버렸다. 반세기의 세월이 지나면서 GM의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해져 버렸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 디트로이트 빅3가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 내부에는 방만한 경영, 제품 투자 소홀이라고 하는 필요한(?) 모든 악재가 있었다. GM 릭 왜고너 회장의 연봉은 스톡옵션을 포함해 1,700만 달러가 넘었다. 그는 경영 파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도 2,000만 달러가 넘는 퇴직금을 챙겨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근로자의 임금이 높다는 것만을 지적했다.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2008년 11월에 디트로이트 빅3의 수뇌부는 연봉 1달러 이야기를 들고 나왔었다. 그러자 미국의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은 2천만 달러를 가져가도 좋으니 자동차회사를 살려내라는 비아냥 어린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미국 자동차업계에서 1달러 효과는 1980년 크라이슬러를 살려낸 리 아이아코카가 처음이었고 당시는 대단한 효과를 낸 적이 있다. 하지만 2001년 헨리 포드의 손자 빌 포드가 1달러 이야기를 꺼냈으나 별무 소용이었다. 케케묵은 수법이라는 얘기이다.

미국의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은 디트로이트 빅3가 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노력 대신 로비스트들에게나 돈을 써 왔으며, 카르텔에 안주하다가 위기가 닥치니 오히려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잘 나가던 시대에 취해 제대로 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지 못한 것도 몰락의 원인이다. 고유가 시대 대응할 수 있는 중 저 배기량 모델의 라인업 구축이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회사는 뉴 모델을 먹고 산다.’는 격언이 나오도록 한 당사자인 그들이 시장의 니즈에 부합한 신차를 내놓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구조조정 등 소위 말하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생존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92년에 실시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비롯해 1998년에는 디트로이트 빅3가 뭉쳐 14개 공장의 문을 닫고 15만명을 감원하는 등 군살 빼기를 했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다시 한 번 고삐를 죄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비용 문제에 대한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GM을 비롯한 디트로이트 빅3의 수뇌들은 그런 가운데도 근본적인 체질 변화보다는 발등의 불을 끄는데만 급급했다. 방만한 경영이라든가 미국 내 7천개에 달하는 딜러수로 인한 비용과다, 또 다른 고비용의 대표적인 존재인 노조와의 흐지부지한 관계 등을 앞장 서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친환경차를 화두로 네 세우며 세간의 이목을 분산하려는 편법을 동원했다. GM을 비롯한 디트로이트 빅3 는 해마다 친환경차의 기술 개발을 호언했었다. 어떤 때는 연료전지차를 빠른 시일 내에 상용화한다고 큰 소리를 쳤다가 하이브리드카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전략을 수정하기도 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2008년에는 에탄올을 연료로 사용해 석유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하며 수렁에서 빠져 나갈 방법을 찾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더니 올 들어서는 전기차가 그들의 미래를 책임져 줄 것이라며 대대적인 기술 개발을 선언했다.

하지만 빅3는 기술개발보다는 그것을 네 세워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보려는 도구로 활용했다.

그런 노력마저도 2003년 부시 정권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서서히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8년에는 곪았던 상처가 한꺼번에 터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고유가 시대의 도래로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촉발된 원유가 상승은 금융자본이 석유산업을 흔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초 고유가 시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참고로 2003년 원유가는 배럴당 18달러선이었던 것이 2008년에는 150달러까지 급등하며 자동차뿐 아니라 모든 시장을 뒤흔들어 버렸다. 부시는 석유 생산업체에게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남겨 주었지만 자동차업체들을 나락으로 몰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되었다.

결국은 석유산업과 마찬가지로 금융산업으로 변질된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예정된 파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여전히 규모의 경제에 집착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지금 GM에게 필요한 것은 제조업으로서의 자세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매경 이코노미 2009년 6월 17일자 기고)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하단배너
우측배너(위)
우측배너(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