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로엥, 해학적인 매력이 넘치는 천의 얼굴을 가진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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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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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18 05:2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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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로엥, 해학적인 매력이 넘치는 천의 얼굴을 가진 브랜드
시트로엥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창시자 앙드레 시트로엥은 ‘프랑스의 포드’가 되려고 했었다. 대량 생산기법을 도입해 더 많은 사람에게 시트로엥을 타게 하려 했다. 보편성을 추구한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시트로엥의 최고 역작 2CV의 최대의 특징은 어디까지나 프랑스인이 만든 프랑스만의 자동차로서 기획, 설계되었었다. 그 완성도의 훌륭함에 세계의 자동차시장에서 독특한 인기를 얻었었다. 양산을 하되 강한 독창성을 강조한 것이다.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상 천외한 선전광고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925년부터 10년 동안 파리 에펠탑에 'Citroen'이라는 문구를 새기는 광고를 한 것은 시트로엥의 기발함을 보여 주는 내용이다.
시트로엥 2CV는 프랑스 농민을 대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은 ‘달걀 테스트’에 반영되고 있다. 그리고 ‘모자 테스트’는 도시적인 쾌적함을 추구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이 2CV가 보다 넓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이다.
이들 프로토타입은 같은 해 가을 파리살롱에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돼 2CV계획은 보류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의 종료와 함께 2CV계획은 더 한층 열의를 가지고 부활됐다. 이런 종류의 경제형 차가 전후의 모터리제이션에 가장 적합한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전후의 2CV 보디라인은 1939년의 프로토 타입과 거의 동일했는데 헤드램프가 하나 더 추가되고 윈도우도 종래보다 커졌다. 서스펜션도 한층 개량되고 엔진의 배기량은 동일하면서 공냉식으로 변경되었다. 꾸밈없이 기능적이며 '미운 오리새끼'라고 불리우면서 어딘가 해학적인 매력이 풍부한 보디-그것은 프랑스인의 고도의 기지와 재치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스타일링이라고 해도 좋다. 시트도 얼핏 보면 섬세하지 않은 것이었으나 바짝 당겨진 강성 밴드 위에 쿠션을 얹은 것으로 아주 느낌이 좋고 앞뒤 모두 쉽게 빼낼 수도 있었다.
대시보드에 있는 계기는 스피드미터 뿐이지만 이것으로 또한 와이퍼까지 작동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스피드가 빨라지면 와이퍼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정지하면 와이퍼도 정지한다. 섀시의 구조는 아주 독특했다. 플랫폼 프레임의 좌우 양끝에 제로로 코일스프링을 넣은 홈이 있고, 그 전후 양끝에서 뻗은 로드가 앞뒤의 바퀴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사상 최초의 전후 연결 독립현가 시스템은 소위 '콜롬부스의 달걀'적인 발상인데 간단하면서도 효율이 높아 실로 '달걀테스트'에 훌륭하게 합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트로엥 2CV는 1948년 파리살롱에 발표되었고 과거 트락숑 아방과 같이 즉시 히트작이 되었다.
시트로엥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창시자 앙드레 시트로엥은 ‘프랑스의 포드’가 되려고 했었다. 대량 생산기법을 도입해 더 많은 사람에게 시트로엥을 타게 하려 했다. 보편성을 추구한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시트로엥의 최고 역작 2CV의 최대의 특징은 어디까지나 프랑스인이 만든 프랑스만의 자동차로서 기획, 설계되었었다. 그 완성도의 훌륭함에 세계의 자동차시장에서 독특한 인기를 얻었었다. 양산을 하되 강한 독창성을 강조한 것이다.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상 천외한 선전광고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925년부터 10년 동안 파리 에펠탑에 'Citroen'이라는 문구를 새기는 광고를 한 것은 시트로엥의 기발함을 보여 주는 내용이다.
시트로엥 2CV는 프랑스 농민을 대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은 ‘달걀 테스트’에 반영되고 있다. 그리고 ‘모자 테스트’는 도시적인 쾌적함을 추구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이 2CV가 보다 넓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이다.
이들 프로토타입은 같은 해 가을 파리살롱에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돼 2CV계획은 보류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의 종료와 함께 2CV계획은 더 한층 열의를 가지고 부활됐다. 이런 종류의 경제형 차가 전후의 모터리제이션에 가장 적합한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전후의 2CV 보디라인은 1939년의 프로토 타입과 거의 동일했는데 헤드램프가 하나 더 추가되고 윈도우도 종래보다 커졌다. 서스펜션도 한층 개량되고 엔진의 배기량은 동일하면서 공냉식으로 변경되었다. 꾸밈없이 기능적이며 '미운 오리새끼'라고 불리우면서 어딘가 해학적인 매력이 풍부한 보디-그것은 프랑스인의 고도의 기지와 재치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스타일링이라고 해도 좋다. 시트도 얼핏 보면 섬세하지 않은 것이었으나 바짝 당겨진 강성 밴드 위에 쿠션을 얹은 것으로 아주 느낌이 좋고 앞뒤 모두 쉽게 빼낼 수도 있었다.
대시보드에 있는 계기는 스피드미터 뿐이지만 이것으로 또한 와이퍼까지 작동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스피드가 빨라지면 와이퍼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정지하면 와이퍼도 정지한다. 섀시의 구조는 아주 독특했다. 플랫폼 프레임의 좌우 양끝에 제로로 코일스프링을 넣은 홈이 있고, 그 전후 양끝에서 뻗은 로드가 앞뒤의 바퀴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사상 최초의 전후 연결 독립현가 시스템은 소위 '콜롬부스의 달걀'적인 발상인데 간단하면서도 효율이 높아 실로 '달걀테스트'에 훌륭하게 합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트로엥 2CV는 1948년 파리살롱에 발표되었고 과거 트락숑 아방과 같이 즉시 히트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