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콜벳 탄생 60주년, 브랜드 이미지 리더 역할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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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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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02 02:4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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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콜벳이 탄생 60주년을 맞았다. GM은 초대 콜벳이 출고된 이래 2013년 6월 30일부로 탄생 60주년을 맞았다고 발표했다. 전형적인 미국형 스포츠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쉐보레 콜벳은 1953년 6월 30일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 공장에서 첫 모델이 출고됐다. 1977년 콜벳의 누계 생산 대수는 50만대, 1992년 100만대, 2009년에는 150만대였다.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국장)
1950년대는 미국 자동차메이커들이 세계를 호령할 때다. GM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54%에 달할 정도로 최전성기를 맞고 있을 때다. 전쟁의 영향도 있었지만 당시 전 세계 자동차의 82.5%가 미국산이었다. GM의 자신감은 그들의 대표 브랜드인 쉐보레에 콜벳이라는 대 배기량 스포츠카를 라인업하게 했다. 머슬카 포니카 카마로보다는 덜하지만 다른 유럽 수퍼카들에 비하면 상당한 판매대수를 기록하며 여전히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1953년 출시된 초대 콜벳은 FRP제 오픈 보디로 배기량 3,854cc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었다. 성능은 최고출력 150ps를 발휘했으며 트랜스미션은 2단 자동변속기였다. 콜벳(후에 베트라는 애칭으로도 불리었다.)은 당시 근육질적인 미국차에 비해 스타일링면에서는 뛰어난 것이었는데 성능적으로는 문제가 없지 않았다. 0-97km/h 가속성능도 11초로 준족으로 당시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유럽의 스포츠카에는 미치지 못하고 접지력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데뷔 2년 째인 1955년에는 최고출력 190ps의 V형 8기통 엔진과 수동변속기를 추가했다. 이어 1957년에는 최고출력 283ps의 V8 인젝션 사양이 설정되면서 스포츠카로서의 성능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빌 미첼이라고 하는 남자는 물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답게 물고기에서 많은 힌트를 얻은 콜벳 샤크를 62년에 발표했다. 이것은 더욱 개량되어 65년 4월의 뉴욕 쇼에 마초 샤크 Ⅱ(Macho Shark Ⅱ)로 데뷔했다. 마초란 남성적이라는 의미이다. 이 모델은 아무래도 쇼카로서의 성격이 짙었지만 그 스타일링은 68년에 풀 체인지한 3대째의 콜벳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68년형에는 스팅 레이의 표시는 없었다. 하지만 69년형부터 이번에는 스팅 레이가 부활하게 되는데 미첼이 76년에 GM을 떠남과 동시에 그 엠블렘은 콜벳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스팅 레이는 미첼의 사랑이 담긴 작품이었다.
5세대까지의 콜벳은 프로 레슬러를 연상케 하는 모델이었다. 지금은 케이블 TV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미국의 프로 레슬러들은 그야말로 근육질적인 몸매를 무기로 하고 있다. 흥행을 위해서는 그들의 경기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외적인 카리스마가 중요하다. 근육이 많으면 순발력은 떨어진다. 랩 타임과 최고속도 등에서는 유럽산 라이벌들에 비해 열세일지라도 스포츠카가 갖추어야 할 감동과 호화스러움으로 관객을 끌어 들이는 것이 미국산 스포츠카였다.
지금 국내에 시판되고 있는 모델은 2005년 등장한 6세대 모델이다. 6세대 모델 중 6.2리터 V형 8기통 OHV 수퍼차저 엔진을 탑재한 647ps ZR1은 수퍼카 개발의 성지로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 로망인 독일 뉘르부르크링 북 코스에서 2008년 당시 시판차 세계 최고인 7분 26초 4를 기록하기도 했다. 프리미엄 수퍼스츠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절대 속도의 기록을 양산 브랜드 쉐보레가 갱신한 것이다.
콜벳의 개발 책임자인 Tadge Juechter는 "콜벳의 스티어링 휠을 잡으면 뛰어난 가속성능과 제동성, 코너링 성능에 놀라게 된다. 마치 올림픽 육상선수를 연상케 한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문화는 자동차의 절대성능에 대한 사고방식이 유럽과는 다르다. 그것이 콜벳이나 카마로에 그대로 표현이 되어 있다.
쉐보레측은 지난 60년 동안 콜벳은 영화 스타와 음악가, 우주비행사 등이 이용하면서 미국 문화의 일부로 성장해 왔다고 밝혔다.
글로벌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쉐보레 브랜드의 이미지 리더로서 콜벳은 최근 들어 그 존재감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국장)
1950년대는 미국 자동차메이커들이 세계를 호령할 때다. GM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54%에 달할 정도로 최전성기를 맞고 있을 때다. 전쟁의 영향도 있었지만 당시 전 세계 자동차의 82.5%가 미국산이었다. GM의 자신감은 그들의 대표 브랜드인 쉐보레에 콜벳이라는 대 배기량 스포츠카를 라인업하게 했다. 머슬카 포니카 카마로보다는 덜하지만 다른 유럽 수퍼카들에 비하면 상당한 판매대수를 기록하며 여전히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1953년 출시된 초대 콜벳은 FRP제 오픈 보디로 배기량 3,854cc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었다. 성능은 최고출력 150ps를 발휘했으며 트랜스미션은 2단 자동변속기였다. 콜벳(후에 베트라는 애칭으로도 불리었다.)은 당시 근육질적인 미국차에 비해 스타일링면에서는 뛰어난 것이었는데 성능적으로는 문제가 없지 않았다. 0-97km/h 가속성능도 11초로 준족으로 당시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유럽의 스포츠카에는 미치지 못하고 접지력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데뷔 2년 째인 1955년에는 최고출력 190ps의 V형 8기통 엔진과 수동변속기를 추가했다. 이어 1957년에는 최고출력 283ps의 V8 인젝션 사양이 설정되면서 스포츠카로서의 성능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빌 미첼이라고 하는 남자는 물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답게 물고기에서 많은 힌트를 얻은 콜벳 샤크를 62년에 발표했다. 이것은 더욱 개량되어 65년 4월의 뉴욕 쇼에 마초 샤크 Ⅱ(Macho Shark Ⅱ)로 데뷔했다. 마초란 남성적이라는 의미이다. 이 모델은 아무래도 쇼카로서의 성격이 짙었지만 그 스타일링은 68년에 풀 체인지한 3대째의 콜벳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68년형에는 스팅 레이의 표시는 없었다. 하지만 69년형부터 이번에는 스팅 레이가 부활하게 되는데 미첼이 76년에 GM을 떠남과 동시에 그 엠블렘은 콜벳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스팅 레이는 미첼의 사랑이 담긴 작품이었다.
5세대까지의 콜벳은 프로 레슬러를 연상케 하는 모델이었다. 지금은 케이블 TV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미국의 프로 레슬러들은 그야말로 근육질적인 몸매를 무기로 하고 있다. 흥행을 위해서는 그들의 경기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외적인 카리스마가 중요하다. 근육이 많으면 순발력은 떨어진다. 랩 타임과 최고속도 등에서는 유럽산 라이벌들에 비해 열세일지라도 스포츠카가 갖추어야 할 감동과 호화스러움으로 관객을 끌어 들이는 것이 미국산 스포츠카였다.
지금 국내에 시판되고 있는 모델은 2005년 등장한 6세대 모델이다. 6세대 모델 중 6.2리터 V형 8기통 OHV 수퍼차저 엔진을 탑재한 647ps ZR1은 수퍼카 개발의 성지로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 로망인 독일 뉘르부르크링 북 코스에서 2008년 당시 시판차 세계 최고인 7분 26초 4를 기록하기도 했다. 프리미엄 수퍼스츠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절대 속도의 기록을 양산 브랜드 쉐보레가 갱신한 것이다.
콜벳의 개발 책임자인 Tadge Juechter는 "콜벳의 스티어링 휠을 잡으면 뛰어난 가속성능과 제동성, 코너링 성능에 놀라게 된다. 마치 올림픽 육상선수를 연상케 한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문화는 자동차의 절대성능에 대한 사고방식이 유럽과는 다르다. 그것이 콜벳이나 카마로에 그대로 표현이 되어 있다.
쉐보레측은 지난 60년 동안 콜벳은 영화 스타와 음악가, 우주비행사 등이 이용하면서 미국 문화의 일부로 성장해 왔다고 밝혔다.
글로벌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쉐보레 브랜드의 이미지 리더로서 콜벳은 최근 들어 그 존재감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