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모든 지갑과 목적에 맞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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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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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2-16 06:5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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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모든 지갑과 목적에 맞는 차’
2011년 가장 큰 ‘사건’은 뭐라해도 쉐보레 브랜드의 한국 상륙이다. 일본식 발음 ‘시보레’에 더 익숙했던 쉐보레 브랜드는 분명 GM의 대표 브랜드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인 GM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국경이 없는 경제사회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런 쉐보레 브랜드의 한국시장 진출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산’ 미국 브랜드 아이폰과 ‘중국산’ 일본 브랜드 소니에 대해서는 별 부담없이 구입해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산’ 미국 브랜드 쉐보레에 대해서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매출만 GM이라는 회사로 잡힐 뿐이다. 미국 정부가 GM을 살리고자 한 것은 고용문제가 가장 큰 것이었지 GM의 매출 향상이 아니었다. 참고로 삼성전자는 2011년 11월 기준 외국인 지분이 50.5%이고 현대자동차는 42.2%, 기아자동차는 28.6%, 한국지엠은 83% (산업은행 17%)이다.
자동차산업사상 루이 쉐보레와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 알브레드 슬론(Alfred Slon)은 헨리 포드와 함께 가장 혁명적인 업적을 올린 존재로 기록되고 있다. 우선 헨리 포드는 1908년 대량 생산 시스템을 도입해 T형 포드를 생산해 한 대당 시판가격이 2000달러 선이었던 것을 825달러까지 일거에 끌어 내렸다. T형 포드가 단종될 즈음에는 260달러까지 낮추었다. 그때까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를 대중들도 사용하게 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쉐보레와 듀란트는 자동차산업에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 자동차를 산업으로 발전시킨 장본인들이다. T형 포드는 단 한 번의 모델체인지 없이 1,574만대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것을 본 듀란트는 좀 더 많은 수요자 창출 위해 주기적인 모델체인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늘날 모든 자동차회사들은 빠르게는 4년, 길게는 12년마다 모델체인지를 하는데 그 시조가 바로 쉐보레의 창시자 루이 쉐보레와 GM의 설립자 빌 듀란트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다.
세 번째는 브랜드의 다양화다. 쉐보레를 필두로 폰티악(Pontiac), 올즈모빌(Oldsmobile), 뷰익(Buick), 캐딜락(Cadillac) 등 차별화된 등급과 장르를 표현하는 브랜드를 구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를 일컬어 ‘모든 지갑과 목적에 맞는 차’라고 표현한다.
이런 전략은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과 맞물려 보통 사람들도 자동차를 구입해서 운행할 수 있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21년부터는 할부금융이라는 판매기법까지 동원해 그야말로 자동차라는 탈 것을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0년 10월 누적 GM 글로벌 판매 총 6,772,243대 중 쉐보레 브랜드 판매가 3,384,064대를 차지해 50%이상을 차지했다. GM 대우가 2010년 10월까지 완성차 수출 51만 6,640대 CKD 수출 89만 3,159대를 수출해 도합 140만 9,790대를 해외시장에 판매해 쉐보레 판매량의 40% 이상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 10년간(2000~2009년) 쉐보레는 전 세계 10대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북미 이외의 시장에서 연평균 31%의 높은 성장률로 현대(10%), 기아(7.8%) 등을 크게 앞서고 있다.
새한자동차의 제미니는 쉐보레의 라이선스 모델
쉐보레는 1900년대 초 뷰익(Buick) 차량을 타고 레이스 경주에서 우승하며 유명세를 탔던 루이스 쉐보레가 GM의 설립자인 윌리엄 듀란트(William Durant)를 만나면서 탄생했다. 1911년 11월, 두 설립자는 쉐보레 자동차 회사(Chevrolet Motor Car Co.)를 세우며, 1912년 말 ‘클래식 식스(Classic Six)’라는 첫 차를 개발, 생산하게 된다.
1970년대에 이르러 쉐보레는 노바(Nova), 베가(Vega) 등 소형차를 발표했고, 소형차 쉬베트(Chevette)를 통해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특히, 쉬베트는 일본의 이스즈社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새한 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에서 제미니(Gemini)라는 이름으로 생산, 우리에게도 매우 친근한 모델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쉐보레는 카발리에(Cavalier), 말리부(Malibu), 에퀴녹스(Equinox) 등 소형차에서 중대형, SUV, 픽업 트럭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왔고, 최근에는 시보레 볼트 전기 자동차, 시보레 에퀴녹스 수소연료전지차 등 탁월한 최첨단 기술력을 선보이며 뛰어난 성능, 독특한 스타일, 좋은 품질로 세계의 대표적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쉐보레 엠블렘
쉐보레의 첫 번째 모델인 클래식 식스에는 쉐보레라고 쓰인 서명 형태의 엠블렘이 장착됐다. 이것이 바로 쉐보레 엠블렘의 효시. 그 이후 1913년 현재의 나비 넥타이(Bow-tie) 형태의 쉐보레 엠블렘이 탄생하게 됐다.
그 후 1960년대까지는 다양한 형태로 엠블렘 모양을 발전시키면서 1960년대 말부터 푸른색에 은색과 금색 등 여러 색상을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1980년도에는 가운데가 빈 빨간색 테두리의 쉐보레 엠블렘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카마로(Camaro)와 같은 고성능 차량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2001년까지 쉐보레 엠블럼의 이러한 추세는 유지된다. 그러다 현재의 쉐보레 엠블렘(두 가지 색상으로 빛을 발산하는 보석 형상의 금색 나비 넥타이 형상의 엠블렘)이 본격 사용된 것은 2003년 SSR 모델에 처음 적용하면서부터.
이후 쉐보레 엠블렘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대중차 브랜드 상징으로 야구 모자, 티 셔츠 등 다양한 패션 아이템으로도 활용되는 대표적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해 왔다.
2011년 가장 큰 ‘사건’은 뭐라해도 쉐보레 브랜드의 한국 상륙이다. 일본식 발음 ‘시보레’에 더 익숙했던 쉐보레 브랜드는 분명 GM의 대표 브랜드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인 GM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국경이 없는 경제사회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런 쉐보레 브랜드의 한국시장 진출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산’ 미국 브랜드 아이폰과 ‘중국산’ 일본 브랜드 소니에 대해서는 별 부담없이 구입해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산’ 미국 브랜드 쉐보레에 대해서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매출만 GM이라는 회사로 잡힐 뿐이다. 미국 정부가 GM을 살리고자 한 것은 고용문제가 가장 큰 것이었지 GM의 매출 향상이 아니었다. 참고로 삼성전자는 2011년 11월 기준 외국인 지분이 50.5%이고 현대자동차는 42.2%, 기아자동차는 28.6%, 한국지엠은 83% (산업은행 17%)이다.
자동차산업사상 루이 쉐보레와 윌리엄 듀런트(William Durant), 알브레드 슬론(Alfred Slon)은 헨리 포드와 함께 가장 혁명적인 업적을 올린 존재로 기록되고 있다. 우선 헨리 포드는 1908년 대량 생산 시스템을 도입해 T형 포드를 생산해 한 대당 시판가격이 2000달러 선이었던 것을 825달러까지 일거에 끌어 내렸다. T형 포드가 단종될 즈음에는 260달러까지 낮추었다. 그때까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를 대중들도 사용하게 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쉐보레와 듀란트는 자동차산업에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 자동차를 산업으로 발전시킨 장본인들이다. T형 포드는 단 한 번의 모델체인지 없이 1,574만대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것을 본 듀란트는 좀 더 많은 수요자 창출 위해 주기적인 모델체인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늘날 모든 자동차회사들은 빠르게는 4년, 길게는 12년마다 모델체인지를 하는데 그 시조가 바로 쉐보레의 창시자 루이 쉐보레와 GM의 설립자 빌 듀란트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다.
세 번째는 브랜드의 다양화다. 쉐보레를 필두로 폰티악(Pontiac), 올즈모빌(Oldsmobile), 뷰익(Buick), 캐딜락(Cadillac) 등 차별화된 등급과 장르를 표현하는 브랜드를 구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를 일컬어 ‘모든 지갑과 목적에 맞는 차’라고 표현한다.
이런 전략은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과 맞물려 보통 사람들도 자동차를 구입해서 운행할 수 있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21년부터는 할부금융이라는 판매기법까지 동원해 그야말로 자동차라는 탈 것을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0년 10월 누적 GM 글로벌 판매 총 6,772,243대 중 쉐보레 브랜드 판매가 3,384,064대를 차지해 50%이상을 차지했다. GM 대우가 2010년 10월까지 완성차 수출 51만 6,640대 CKD 수출 89만 3,159대를 수출해 도합 140만 9,790대를 해외시장에 판매해 쉐보레 판매량의 40% 이상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 10년간(2000~2009년) 쉐보레는 전 세계 10대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북미 이외의 시장에서 연평균 31%의 높은 성장률로 현대(10%), 기아(7.8%) 등을 크게 앞서고 있다.
새한자동차의 제미니는 쉐보레의 라이선스 모델
쉐보레는 1900년대 초 뷰익(Buick) 차량을 타고 레이스 경주에서 우승하며 유명세를 탔던 루이스 쉐보레가 GM의 설립자인 윌리엄 듀란트(William Durant)를 만나면서 탄생했다. 1911년 11월, 두 설립자는 쉐보레 자동차 회사(Chevrolet Motor Car Co.)를 세우며, 1912년 말 ‘클래식 식스(Classic Six)’라는 첫 차를 개발, 생산하게 된다.
1970년대에 이르러 쉐보레는 노바(Nova), 베가(Vega) 등 소형차를 발표했고, 소형차 쉬베트(Chevette)를 통해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특히, 쉬베트는 일본의 이스즈社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새한 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에서 제미니(Gemini)라는 이름으로 생산, 우리에게도 매우 친근한 모델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쉐보레는 카발리에(Cavalier), 말리부(Malibu), 에퀴녹스(Equinox) 등 소형차에서 중대형, SUV, 픽업 트럭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왔고, 최근에는 시보레 볼트 전기 자동차, 시보레 에퀴녹스 수소연료전지차 등 탁월한 최첨단 기술력을 선보이며 뛰어난 성능, 독특한 스타일, 좋은 품질로 세계의 대표적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쉐보레 엠블렘
쉐보레의 첫 번째 모델인 클래식 식스에는 쉐보레라고 쓰인 서명 형태의 엠블렘이 장착됐다. 이것이 바로 쉐보레 엠블렘의 효시. 그 이후 1913년 현재의 나비 넥타이(Bow-tie) 형태의 쉐보레 엠블렘이 탄생하게 됐다.
그 후 1960년대까지는 다양한 형태로 엠블렘 모양을 발전시키면서 1960년대 말부터 푸른색에 은색과 금색 등 여러 색상을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1980년도에는 가운데가 빈 빨간색 테두리의 쉐보레 엠블렘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카마로(Camaro)와 같은 고성능 차량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2001년까지 쉐보레 엠블럼의 이러한 추세는 유지된다. 그러다 현재의 쉐보레 엠블렘(두 가지 색상으로 빛을 발산하는 보석 형상의 금색 나비 넥타이 형상의 엠블렘)이 본격 사용된 것은 2003년 SSR 모델에 처음 적용하면서부터.
이후 쉐보레 엠블렘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대중차 브랜드 상징으로 야구 모자, 티 셔츠 등 다양한 패션 아이템으로도 활용되는 대표적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