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디자인, 그룹의 정체성을 정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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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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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25 00:0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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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디자인, 그룹의 정체성을 정립하다.
바야흐로 디자인의 시대다. 내재된 가치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디자인이다. 이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뿐 아니라 개인, 단체, 사회, 국가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디자인은 분명 만드는 이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더불어 만드는 이의 환경과 문화에 따라 천차 만별이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전 세계 70억 인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만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끄는 정도에 따라 가치 평가가 달라진다. 21세기 들어 10년의 세월이 지나며 전 세계 자동차업계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중 현대기아차 그룹의 부상도 주요 이슈 중 하나다. 현대기아차의 차만들기 역량의 향상에 더해 시장의 주목을 끄는 디자인 전략 때문이었다. 현대기아차의 디자인 전략에 대해 조망해 본다.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국장)
현대기아차는 지금 글로벌 플레이어들 중 보기 드물게 두 브랜드 모두 풀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세단형 1리터급의 미니카부터 전장 5미터가 넘는 풀 사이즈 세단까지, SUV도 소, 중, 대형 모두 라인업되어 있다. 유럽 기준으로 A,B,C,D세그먼트는 물론이고 E1 세그먼트의 제네시스와 K7, E2세그먼트에 속하는 에쿠스와 K9까지 있다. 포드와 혼다는 E2세그먼트의 모델이 없고 폭스바겐은 E1세그먼트가 없다. 토요타는 E2세그먼트에 센츄리가 있지만 일본 내수용이다. 세계적으로 이처럼 풀 라인업을 갖춘 메이커는 많지 않다. 풀 라인업을 구축했다는 것은 차의 크기에 따라 선호도가 다른 시장에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대와 기아 브랜드간의 차별화와 함께 브랜드 내 모델들도 시장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얘기이다. 차체 크기부터 시작해 엔진 배기량, 출력과 토크 특성, 승차감과 주행성, 각종 첨단 장비에 대한 생각도 시장마다 다르다. 미국시장도 다운 사이징의 트렌드를 거역할 수 없지만 여전히 큰 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유럽시장은 컴팩트하고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며 출력보다는 토크 특성이 좋은 차를 선호한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내용은 물론이고 크기에 대한 로망이 강하다. 에탄올 연료를 주로 사용하는 브라질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또 다르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지금 그런 시장 다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고 실제로 시장에 따라 투입되는 모델을 달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D세그먼트 모델인 현대 쏘나타다. 미국시장에는 중형 앞바퀴굴림방식 플랫폼을 베이스로 한 쏘나타를 판매하고 있지만 유럽시장에는 변형 플랫폼을 베이스로 한 그보다 약간 작은 i40시리즈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시장에는 현대 기아 공히 전용 모델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차명도 미국시장에서는 지명 등 고유명사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유럽시장에서는 i30, i40 등의 이니셜과 숫자를 조합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 i10은 유럽시장에는 있지만 미국시장에는 아예 없다. 불과 수년 전에 비해 크게 세분화되어 있는 내용이다. 기아자동차도 유럽시장 전용 모델 씨드를 개발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시장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이다.
디자인의 기아’, ‘현대의 디자인’
디자인 측면에서도 현대자동차는 지역별 차급별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테마는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lupture)다. 그 테마를 바탕으로 각 모델들에 각각의 컨셉을 부여하고 큰 틀에서의 패밀리 룩을 만들고 있다. 쏘나타와 아반떼의 디자인이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같은 주제를 표방하고 있고 그것이 현대자동차의 패밀리 룩이다.
피터 슈라이어와 오석근의 특성과 역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전략은 수장들의 캐릭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피터 슈라이어가 영입되기 전까지 현대기아차의 디자인은 조직 문화의 산물이었다. 디자이너의 존재감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전체적인 밸런스는 물론이고 브랜드별 일관성이나 차별성을 위한 포인트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 메이커들이 그러듯이 디자이너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 세우고 그에 따른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불과 5~6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것이 최근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일취월장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피터는 독일 폭스바겐 그룹 출신으로 21세기 들어 디자인 측면에서 BMW와 대비되는 방향성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아우디의 모델들을 디자인했었다. 그런 그의 배경은 기아브랜드에 반영되었다. 밸런스를 중시하고 지나친 공격성보다는 정통성을 중시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프로포션 측면에서는 아우디의 모델들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거기에서 기인한다.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의 디자인 철학을 형상화하며 양산 메이커이면서도 강한 패밀리 룩을 지향하고 있다.
반면 오석근이 이끄는 현대 브랜드의 디자인은 화려함을 추구하면서 차급과 시장에 따라 디자인에 변화를 주고 있다.
현대 브랜드의 얼굴은 쏘나타와 그랜저
현대 브랜드의 존재감을 끌어 올린 첫 번째 요소로 품질을 꼽는다. 그것은 과거의 현대에 비해서 그렇다는 얘기이지 글로벌 브랜드보다 앞섰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기본적인 조건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품질 이 외에 특별히 내 세울 것이 없는 현대자동차의 입장에서는 세계 5위 메이커에 걸맞는 그 무엇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인을 위한 차를 만들어야 하는 양산 브랜드의 패밀리 세단으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채용했다. 결과론적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지금 디자인을 비롯한 ‘새로운 개념의 상품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패밀리카의 대명사인 폭스바겐 골프는 오랜 세월 진화를 거듭하면서도 획기적인 변화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하고 내실을 다지는 발전을 해왔다. 스타일링 디자인에서 특별히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도 실증이 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제품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베스트 셀러 모델의 입지를 탄탄히 하고 있다. 당연히 골프를 벤치마킹한 토요타의 모델들도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양산 메이커이면서 파격적인 디자인을 추구한 브랜드도 물론 있다. 프랑스 3사와 일본의 닛산 등이 그렇다. 르노의 전위적인 디자인은 그 역사가 깊다. 푸조도 6세대 모델부터 기존의 클래식 디자인을 버리고 파격을 택했다. 닛산 브랜드의 모델들도 정통, 즉 클래식 디자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선과 면의 사용이 이그조틱카와 양산 패밀리 세단의 중간 지점에 있다.
문제는 그들의 전략을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이다. 지금도 도로 위를 보면 무채색 일색이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변화에 앞장서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가더라도 그 속도는 아주 늦다.
그래서 현대자동차는 2011년 디트로이트오토쇼를 통해 “New Thinking, New Possibility!”를 캐치 프레이즈로 내 세웠다. 생각을 바꾸라는 얘기이다. 그동안의 통념과 다른 접근을 통해 자동차를 보라는 것이다. 그런 현대자동차의 변화에 대한 이미지 리더로 벨로스터를 내 세웠다. 장르와 세그먼트에서 새롭고 스타일링 디자인에서도 파격적인 모델을 전면에 내 세워 현대 브랜드의 존재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마케팅 연관성(데이비드 아커, 브랜드&컴퍼니 간)'에서 이야기하는 하위 카테고리를 창출하고자 함으로 해석된다.
피터 슈라이어의 디자인, 현대 브랜드에도 영향
피터 슈라이어의 선과 면이 모든 모델에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 모든 모델에 패밀리 룩이 적용되어 있다. 피터가 내 세우는 기아의 디자인 테마는 ‘Simple is Beautiful.’이다. 간결한 선과 면의 조화를 통한 일체화된 형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기아자동차의 디자인은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에서 안정적인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 강한 캐릭터 라인을 통해 독창성을 만들기보다는 전체적인 균형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현대의 디자인’과 상대적으로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두 브랜드 대부분의 모델에 패밀리 룩이 적용된 지금 시점에서 현대와 기아 차별화는 더욱 주목을 끈다. 기아 쏘렌토R과 포르테 쿱이 표현하는 것은 현대 에쿠스와 투산 iX, YF쏘나타의 그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포르테와 쏘렌토R의 스타일링 익스테리어는 안정적인 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격한 캐릭터 라인의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 에쿠스와 K9의 표현법도 극명하게 다르다.
같은 그룹 내 두 브랜드의 디자인이 극단적으로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다. 과거 PSA푸조 시트로엥 그룹 내 푸조의 보수적인 디자인과 시트로엥의 전위적인 디자인이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폭스바겐 그룹 내의 양산 브랜드인 폭스바겐과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우디의 차이와도 비견될만하다.
또 하나, 기아자동차의 차만들기는 전형적인 ‘유러피언’ 지향이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미국시장을 의식한 차만들기다. 과거에도 이런 표현을 사용했었다. 당시에는 단지 그렇게 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이었다면 이제는 두 브랜드가 스타일링 디자인은 물론이고 하체의 특성까지도 그런 특성을 살려내고 있다.
여기에 기아자동차가 차명을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 조합으로 한 것도 두 브랜드 차별화의 중요 포인트다. 기아자동차의 모델들은 앞으로 모델체인지를 하면서 모두 K라인으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물론 현대기아의 전략이 장기적으로 변화가 없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등장할 모델에도 같은 차명이 적용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자동차업계에서는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그것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성공시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차명의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그것을 하나의 아이덴티티의 표현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지금 또 다른 차원에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전이다. 현대와 기아는 1998년 합병하면서 한 순간에 규모의 경제라는 숙명을 해결한 이후 연구개발센터의 통합과 플랫폼 공유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비용저감이 숙명인 양산차 메이커의 아킬레스건을 해결한 것이다. 그 힘은 부시의 이라크침공으로 인한 석유가의 고공행진과 만나 세계 시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현대기아차는 20세기 논리였던 ‘살아남을 메이커 10개 또는 6개’에도 들지 못했었으나 이제는 5대 메이커로 우뚝 섰다.
기회란 다름 아닌 브랜드 가치 제고다. 지금의 상승세를 어떻게 제품의 가치에 반영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현대나 기아 브랜드의 프리미엄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트렌드세터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캐치 업(Catch Up) 역량은 뛰어나지만 시대를 리드하는 선구자로서의 자세는 부족하다. 그런만큼 스토리 텔링을 할 수 있는 소재도 많지 않다. 더불어 희소성이 중요한 요소인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400만대의 현대나 300만대에 육박하는 기아나 거리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기아차는 새로운 방향성을 스스로 창조해 정립해 나가야 한다. 그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 기회는 어쩌면 현대 브랜드의 얼굴인 쏘나타의 차세대 모델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바야흐로 디자인의 시대다. 내재된 가치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디자인이다. 이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뿐 아니라 개인, 단체, 사회, 국가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디자인은 분명 만드는 이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더불어 만드는 이의 환경과 문화에 따라 천차 만별이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전 세계 70억 인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만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끄는 정도에 따라 가치 평가가 달라진다. 21세기 들어 10년의 세월이 지나며 전 세계 자동차업계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중 현대기아차 그룹의 부상도 주요 이슈 중 하나다. 현대기아차의 차만들기 역량의 향상에 더해 시장의 주목을 끄는 디자인 전략 때문이었다. 현대기아차의 디자인 전략에 대해 조망해 본다.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국장)
현대기아차는 지금 글로벌 플레이어들 중 보기 드물게 두 브랜드 모두 풀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세단형 1리터급의 미니카부터 전장 5미터가 넘는 풀 사이즈 세단까지, SUV도 소, 중, 대형 모두 라인업되어 있다. 유럽 기준으로 A,B,C,D세그먼트는 물론이고 E1 세그먼트의 제네시스와 K7, E2세그먼트에 속하는 에쿠스와 K9까지 있다. 포드와 혼다는 E2세그먼트의 모델이 없고 폭스바겐은 E1세그먼트가 없다. 토요타는 E2세그먼트에 센츄리가 있지만 일본 내수용이다. 세계적으로 이처럼 풀 라인업을 갖춘 메이커는 많지 않다. 풀 라인업을 구축했다는 것은 차의 크기에 따라 선호도가 다른 시장에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대와 기아 브랜드간의 차별화와 함께 브랜드 내 모델들도 시장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얘기이다. 차체 크기부터 시작해 엔진 배기량, 출력과 토크 특성, 승차감과 주행성, 각종 첨단 장비에 대한 생각도 시장마다 다르다. 미국시장도 다운 사이징의 트렌드를 거역할 수 없지만 여전히 큰 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유럽시장은 컴팩트하고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며 출력보다는 토크 특성이 좋은 차를 선호한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내용은 물론이고 크기에 대한 로망이 강하다. 에탄올 연료를 주로 사용하는 브라질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또 다르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지금 그런 시장 다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고 실제로 시장에 따라 투입되는 모델을 달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D세그먼트 모델인 현대 쏘나타다. 미국시장에는 중형 앞바퀴굴림방식 플랫폼을 베이스로 한 쏘나타를 판매하고 있지만 유럽시장에는 변형 플랫폼을 베이스로 한 그보다 약간 작은 i40시리즈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시장에는 현대 기아 공히 전용 모델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차명도 미국시장에서는 지명 등 고유명사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유럽시장에서는 i30, i40 등의 이니셜과 숫자를 조합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 i10은 유럽시장에는 있지만 미국시장에는 아예 없다. 불과 수년 전에 비해 크게 세분화되어 있는 내용이다. 기아자동차도 유럽시장 전용 모델 씨드를 개발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시장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이다.
디자인의 기아’, ‘현대의 디자인’
디자인 측면에서도 현대자동차는 지역별 차급별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테마는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lupture)다. 그 테마를 바탕으로 각 모델들에 각각의 컨셉을 부여하고 큰 틀에서의 패밀리 룩을 만들고 있다. 쏘나타와 아반떼의 디자인이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같은 주제를 표방하고 있고 그것이 현대자동차의 패밀리 룩이다.
피터 슈라이어와 오석근의 특성과 역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전략은 수장들의 캐릭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피터 슈라이어가 영입되기 전까지 현대기아차의 디자인은 조직 문화의 산물이었다. 디자이너의 존재감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전체적인 밸런스는 물론이고 브랜드별 일관성이나 차별성을 위한 포인트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 메이커들이 그러듯이 디자이너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 세우고 그에 따른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불과 5~6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것이 최근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일취월장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피터는 독일 폭스바겐 그룹 출신으로 21세기 들어 디자인 측면에서 BMW와 대비되는 방향성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아우디의 모델들을 디자인했었다. 그런 그의 배경은 기아브랜드에 반영되었다. 밸런스를 중시하고 지나친 공격성보다는 정통성을 중시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프로포션 측면에서는 아우디의 모델들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거기에서 기인한다. 피터 슈라이어는 기아의 디자인 철학을 형상화하며 양산 메이커이면서도 강한 패밀리 룩을 지향하고 있다.
반면 오석근이 이끄는 현대 브랜드의 디자인은 화려함을 추구하면서 차급과 시장에 따라 디자인에 변화를 주고 있다.
현대 브랜드의 얼굴은 쏘나타와 그랜저
현대 브랜드의 존재감을 끌어 올린 첫 번째 요소로 품질을 꼽는다. 그것은 과거의 현대에 비해서 그렇다는 얘기이지 글로벌 브랜드보다 앞섰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기본적인 조건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품질 이 외에 특별히 내 세울 것이 없는 현대자동차의 입장에서는 세계 5위 메이커에 걸맞는 그 무엇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인을 위한 차를 만들어야 하는 양산 브랜드의 패밀리 세단으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채용했다. 결과론적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지금 디자인을 비롯한 ‘새로운 개념의 상품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패밀리카의 대명사인 폭스바겐 골프는 오랜 세월 진화를 거듭하면서도 획기적인 변화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하고 내실을 다지는 발전을 해왔다. 스타일링 디자인에서 특별히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도 실증이 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제품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베스트 셀러 모델의 입지를 탄탄히 하고 있다. 당연히 골프를 벤치마킹한 토요타의 모델들도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양산 메이커이면서 파격적인 디자인을 추구한 브랜드도 물론 있다. 프랑스 3사와 일본의 닛산 등이 그렇다. 르노의 전위적인 디자인은 그 역사가 깊다. 푸조도 6세대 모델부터 기존의 클래식 디자인을 버리고 파격을 택했다. 닛산 브랜드의 모델들도 정통, 즉 클래식 디자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선과 면의 사용이 이그조틱카와 양산 패밀리 세단의 중간 지점에 있다.
문제는 그들의 전략을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이다. 지금도 도로 위를 보면 무채색 일색이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변화에 앞장서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가더라도 그 속도는 아주 늦다.
그래서 현대자동차는 2011년 디트로이트오토쇼를 통해 “New Thinking, New Possibility!”를 캐치 프레이즈로 내 세웠다. 생각을 바꾸라는 얘기이다. 그동안의 통념과 다른 접근을 통해 자동차를 보라는 것이다. 그런 현대자동차의 변화에 대한 이미지 리더로 벨로스터를 내 세웠다. 장르와 세그먼트에서 새롭고 스타일링 디자인에서도 파격적인 모델을 전면에 내 세워 현대 브랜드의 존재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마케팅 연관성(데이비드 아커, 브랜드&컴퍼니 간)'에서 이야기하는 하위 카테고리를 창출하고자 함으로 해석된다.
피터 슈라이어의 디자인, 현대 브랜드에도 영향
피터 슈라이어의 선과 면이 모든 모델에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 모든 모델에 패밀리 룩이 적용되어 있다. 피터가 내 세우는 기아의 디자인 테마는 ‘Simple is Beautiful.’이다. 간결한 선과 면의 조화를 통한 일체화된 형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기아자동차의 디자인은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에서 안정적인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 강한 캐릭터 라인을 통해 독창성을 만들기보다는 전체적인 균형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현대의 디자인’과 상대적으로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두 브랜드 대부분의 모델에 패밀리 룩이 적용된 지금 시점에서 현대와 기아 차별화는 더욱 주목을 끈다. 기아 쏘렌토R과 포르테 쿱이 표현하는 것은 현대 에쿠스와 투산 iX, YF쏘나타의 그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포르테와 쏘렌토R의 스타일링 익스테리어는 안정적인 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격한 캐릭터 라인의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 에쿠스와 K9의 표현법도 극명하게 다르다.
같은 그룹 내 두 브랜드의 디자인이 극단적으로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다. 과거 PSA푸조 시트로엥 그룹 내 푸조의 보수적인 디자인과 시트로엥의 전위적인 디자인이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폭스바겐 그룹 내의 양산 브랜드인 폭스바겐과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우디의 차이와도 비견될만하다.
또 하나, 기아자동차의 차만들기는 전형적인 ‘유러피언’ 지향이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미국시장을 의식한 차만들기다. 과거에도 이런 표현을 사용했었다. 당시에는 단지 그렇게 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이었다면 이제는 두 브랜드가 스타일링 디자인은 물론이고 하체의 특성까지도 그런 특성을 살려내고 있다.
여기에 기아자동차가 차명을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 조합으로 한 것도 두 브랜드 차별화의 중요 포인트다. 기아자동차의 모델들은 앞으로 모델체인지를 하면서 모두 K라인으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물론 현대기아의 전략이 장기적으로 변화가 없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등장할 모델에도 같은 차명이 적용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자동차업계에서는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그것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성공시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차명의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그것을 하나의 아이덴티티의 표현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지금 또 다른 차원에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전이다. 현대와 기아는 1998년 합병하면서 한 순간에 규모의 경제라는 숙명을 해결한 이후 연구개발센터의 통합과 플랫폼 공유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비용저감이 숙명인 양산차 메이커의 아킬레스건을 해결한 것이다. 그 힘은 부시의 이라크침공으로 인한 석유가의 고공행진과 만나 세계 시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현대기아차는 20세기 논리였던 ‘살아남을 메이커 10개 또는 6개’에도 들지 못했었으나 이제는 5대 메이커로 우뚝 섰다.
기회란 다름 아닌 브랜드 가치 제고다. 지금의 상승세를 어떻게 제품의 가치에 반영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현대나 기아 브랜드의 프리미엄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트렌드세터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캐치 업(Catch Up) 역량은 뛰어나지만 시대를 리드하는 선구자로서의 자세는 부족하다. 그런만큼 스토리 텔링을 할 수 있는 소재도 많지 않다. 더불어 희소성이 중요한 요소인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400만대의 현대나 300만대에 육박하는 기아나 거리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기아차는 새로운 방향성을 스스로 창조해 정립해 나가야 한다. 그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 기회는 어쩌면 현대 브랜드의 얼굴인 쏘나타의 차세대 모델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