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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사랑하는 어느 대학원생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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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6-03-17 05:52:44

본문

글로벌오토뉴스에는 자동차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개인 메일이 들어 옵니다. 자동차의 구입시 선택을 망설이면서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가장 많고 자동차회사에 근무하시는 분들, 다른 직업에 종사하시면서 차를 사랑하는 분들, 그리고 학생 신분으로 자동차관련 직업을 선택하고자 하면서 조언을 구하는 분들 등등...
그중 여기 소개하는 글은 어제 아침에 받은 메일로 여러가지를 생각케 해서 글로벌오토뉴스에 올립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공감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반대로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구나는 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글을 읽으시고 혹시 이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게시판에 글을 남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편집자 주)


저는 현재 서울에 살면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 오 경석 이라고 합니다.
학부도 기계공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대학원에서의 세부 전공은 마찰공학입니다.
사실, 뜬금없이 들리시겠지만, 진로 상담을 하고자 이렇게 물어물어 메일 주소를 알게 되어 메일 드립니다.
어쩌면 실제로 뵙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메일 드리는 것이 불쾌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자동차 업계에 몸 담고 계신 "선배님"께 조금이라도 말씀을 얻어 듣고자 하는 마음에 이렇게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1993년에 중학교 입학하면서 어머님께서 사다 주신 카 비젼이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주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용돈이 생기면 자동차 잡지를 꼭 사서 보면서 나름대로 자동차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1995년에 모터 매거진을 보기 시작했는데, 3월호 부록이었던 스포츠카 카탈로그에서 처음으로 교수님의 시승기를 보았습니다. 기억 나시나요? 당시에 빨간 머스탱을 시승하셨었어요.

너무 인상 깊었던 시승기였습니다. 특히 시승기 처음 시작하는 부분이 압권이었죠.
"자동차의 분류 중에 스포츠카란 차는 없다. 승용차로 형식승인이 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부류의 모델들을 스포츠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정의가 옳으냐 그러냐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머스탱은 그런 주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메리칸 스로츠카로 인정해 주는 차다. " 라고 쓰셨었는데, 그 글을 읽던 어린 시절에는 "아~" 하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지만, 해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 그리고 여러 자동차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교수님께서 쓰셨던 그 구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어렸을 시절에 부모님에게 카 레이스 유학을 보내달라 철없이
졸랐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자동차 튜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외국처럼 튜닝이 하나의 산업 분야로 자리잡은 모습이 너무나도 부럽게 보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자동차를 만들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었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선 뭘 전공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좌충우돌 끝에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 4년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현재에, 솔직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질 않습니다.

어렸을적엔, 차를 조금 더 완성된 상태로 만드는 튜닝이 너무나도 좋았고, 쾨니히처럼 아주 강력한 복제차를 만드는 독일이, 1천마력이 넘는 풀 튜닝 스카이 라인이 굴러다니는 일본이
너무나 부러웠고, 머스탱이라는 차 하나로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차가 그네들의 문화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미국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미국은 모병 광고에도 머스탱을 이용하더군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엔, 외국의 차들만 봐와서 그랬던걸까요......
조금 더 커서 한국의 자동차 산업 현실을 보니, 어렸을 적 가지고 있었던 꿈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돈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공장을 만들기도 너무나 힘들고,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 죽일 기세로 달려들어 싸우는 노사관계도 너무나 보기 싫었고, 앞뒤 모양만 바꿔 내놓고, Two니 Three니 하며 떠벌리는 한국 자동차 업체들의 작태 또한 너무나 보기 싫었습니다. 자동차 업체의 M&A에 정치논리로 대응하는 , 그리고 그러한 대응이 별로 문제시 되지 않는 한국의 현실이 너무나 .... 솔직히 짜증이 났습니다.

게다가, 그나마 저에게 조금이나마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던 자동차 잡지도, 언제부터인가 계속되는 오자와 탈자, 이를 넘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의 오류(라세티 해치백을 아반떼라 한다던가, 993 포르쉐 911의 쿨러를 '스포일러'라고 한다던가, BMW 6시리즈의 엔진이 W형 이라던가...)는 왠지 제게 실력 없는 자동차 관련 기자들마저 양산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자동차를 모르는 부류가 자동차 기사를 쓰는게 요즘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자동차 잡지만 놓고 본다면 90년대의 잡지가 시승기도 멋지고, 유용한 정보도 훨씬 많이 전달해주고, 내용상의 오류도 훨씬 적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학부에 다닐 적에 자동차에 관심 있는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도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국가의 기반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자동차 산업인데, 이런 자동차에 대해서 진정 관심있는 친구라고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한국차에 진정한 애정과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정말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현대 자동차에 입사해야 하는 이유가, 현재 현대 자동차가 국내 최대의 자동차 생산 기업이지만, 아쉽지만 아직까지도 실질적으로 해외 유명 메이커들과 어깨를 겨룰만한 브랜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기에 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꿈을 펼쳐보고자 입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라 "기계공학과"의 학과 특성과 잘 어울리고, 결정적으로 "연봉이 세기 때문에" 가야 한다고 학생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현실이 너무나 어이가 없습니다.

대학원에 가면, 조금이나마 저와 관심사가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관련된 공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 역시 오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학부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같은 관심사를 갖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사실, 대학원 진학 후, 제일 당황스러웠던 일 중 하나는, 모 자동차 회사의 설계팀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는 선배님이 제가 제 컴퓨터에 배경화면으로 지정해놓은
포니1 쿠페의 사진을 보고, "이게 어느 나라에서 나온 차니?" 하고 물어봤던 사건입니다.
처음에 장난으로 그러는줄 알았는데, 진짜로 포니1 쿠페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더군요. 살면서 처음 봤답니다.

아연실색의 경지를 넘어서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동차에 환장하고 싶어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또 지금은 마찰공학을 전공하고 있고, 제 인생을 자동차와 함께하고 싶어 자동차 관련 업종에서 종사하고 싶은 것이 제 생각이고 ,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 차량 개발에 참여해보고 싶은 것이 저의 작은(?) 꿈이었는데, 나중에 회사에 들어갔을 때, "저런 사람들만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등에서 식은땀이 주루룩 흘렀습니다.

교수님,
왜 사람들은 자동차를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걸까요?
자동차가 자동차 그 자체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에 "순수한 목적 그 자체"가 되면 안되는걸까요? 아니, 자동차가 순수한 목적 그 자체가 되기를 바라는게 저의 어리석은 바램일까요?

10년이 넘도록 혼자서 고민해봤지만, 도무지 답을 얻을 수 없어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계속 공부를 해야 할지......
주어진 현실에, 보여지는 현실에 순응하고 그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할지, 정말 고민이 됩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문득 교수님의 얼굴이(지면을 통해서만 뵈었지만) 생각났고,
교수님의 시승기가, 교수님이 쓰셨던 책이 생각나서(사실, 교수님이 쓰신 책, 엄청나게 공감했습니다) 이렇게 꼭두 새벽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난데없이 장문의 메일을 드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안면 있는 제자도 아닌데 이렇게 난데없이 메일 드려 죄송합니다.
절박한 마음에 메일을 쓰다보니 글 내용이 좀 뒤죽박죽 엉킨 것 같습니다.
이만 드리는 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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