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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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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6-05-16 05: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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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결단’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국장)

승승장구하던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내환에 휩싸였다.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의 건물 신축 문제로 시작되어 비자금으로까지 확대되어 그룹 총수인 회장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그러니까 갈 데까지 간 상황이다.

이에 대해 수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크게 요약하면 형평성을 제기하는 측의 의견이 우선은 더 많은 것 같다. 삼성그룹 문제와 비교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아니 우리나라 대기업들에 대한 그동안의 법적 잣대의 적용에 관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법부가 지금도 일관된 법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쪽의 의견은 현대사태가 몰고 올 경제적인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회사 전체의 일과 이런 개인차원의 일을 동일시해서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그것은 결국 현대자동차는 물론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차제에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는 얘기이다. 이쪽의 의견은 오히려 현대자동차가 지금 시점에서 명쾌하게 털고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고 주장한다.

어느쪽 의견이 옳은지는 그들의 가치관의 차이를 보여 주는 수준에 그칠 것이지만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지 결말이 날 것이다.
다만 아직도 군사문화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비자금을 원하는 측(정치권이 주를 이루겠지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조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한다. 그런 문화 속에서 뒷거래를 통해 기업의 덩치를 키우고자 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결국 비리로 이어지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소비자, 아니 국민이 짊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 왔는가. 지켜 보고 감시하는 입장에 있는 집단들이 그들의 이익을 쫒아 공정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아왔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남아있고 그것은 현대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어디 현대자동차만 그랬겠는가 하는 시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현대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사회 전반적으로 우리가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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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자동차 전문기자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내용에 대해 원칙론 이상의 언급을 할 수 없다. 다른 분야는 그쪽 전문가들의 몫이다.
다만 지금의 필자의 입장에서는 현대자동차는 어쩌면 지금이 최대의 기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2001년 필자는 ‘한국차 지금이 기회다’라는 책을 집필한 적이 있다. 그때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근거로 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으로 본다면 현대자동차는 말 그대로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역사도 따지고 보면 창업부터 경영진의 ‘결단’의 연속이었다. 처음에 자동차회사를 설립한다고 했을 때부터 국내외 소위 전문가들은 거의 모두가 무모한 짓이라고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결단’했고 현대자동차는 그것을 해냈다. 어디 현대 뿐인가. 현대와 통합된 기아자동차를 비롯해 지금은 GM산하로 넘어간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 등 사실 다른 나라에서 그 예를 볼 수 없을 정도의 도전의 역사가 한국 내에서는 이루어졌다.

현대기아차그룹만으로 좁혀서 살펴 보자면 1984년 경기도 용인에 설립한 ‘마북리연구소’도 오늘날 현대기아차그룹에 세계 속에서 독자행보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틀을 마련한 ‘결단’의 결과였다. 이 역시 주변의 전문가들은 ‘절대 불가론’을 내 세우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단지 연구소 설립만을 위해서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600억원이라는 자금이 필요했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많은 전문가들은 현대자동차의 규모로는 오히려 해외 업체들로부터 생산된 엔진을 구입해 차량을 조립생산하는 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 이득이라는 논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솔직히 필자는 지금도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진단을 하는 시각에 대해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말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미국자동차시장의 연간 판매대수가 최대 1,400만대 이상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미 1,700만대 선을 넘었고 상황이 안정되면 2,400만대까지는 성장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어쨌든 정세영회장은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연구소 설립을 ‘결단’했고 지금은 델파이코리아 사장으로 재직중인 이대운 박사와 현재 현대자동차의 이현순 사장 등을 영입해 연구소 운영을 맡겼다. 알파엔진을 처음 만들어 발표할 당시의 분위기를 필자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비록 초기 엔진은 적지 않은 말썽을 일으켰지만 자체 개발 엔진이라는 점에서 당시 마북리연구소는 물론이고 전국의 자동차 관련 종사자들을 들뜨게 했었다.

그 결과가 1990년 데뷔한 스쿠프에 탑재한 알파엔진이었고 지금은 베타, 감마에 이어 그랜저에 탑재한 3.8리터 람다 엔진까지 발전해 있다. 물론 이 엔진 기술이 완전히 현대자동차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아직도 선진 기술에 비해서는 해결해야 할 부분들이 있지만 짧은 역사를 고려한다면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이루어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IMF, 국외에서는 인수합병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 지각변동이 일어났던 1998년 대우자동차가 흔들렸고 그것을 시발로 현대와 기아자동차는 합병되기에 이르렀다.

사실 IMF는 대한민국이라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어쨌거나 결과론적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은 사건이었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거의 공포 수준이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지만 현대와 기아자동차 등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환율이 달러당 850원선에서 2000원에 육박한 것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준 것이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는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도 당시 표정조절하느라 애먹었었다.

동시에 IMF를 전후로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상황에서 정몽구회장의 ‘결단’도 등장한다.
현대자동차의 세계화전략은 1990년 11월의 우루과이 라운드로 대표되는 자유무역시대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되었다. 현대는 1990년 9월 GT-10추진본부를 발족시키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시도가 시작되었다. 이는 1991년에서 1993년까지는 기반구축기, 1996년까지는 발전기, 그리고 1999년까지를 성숙도약기로 삼아 2000년대에는 세계 10대 자동차메이커로 숙원을 이룬다는 계획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그 목표가 2010년까지 연간 500만대를 생산해 글로벌 톱5를 목표로한다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해 있다.

그리고 이런 발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1998년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 내 건 ‘품질 최우선’이라는 슬로건이었다. 1980년대 말 미국시장에 진출했다가 조악한 품질문제로 낭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조건은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을 품질로 내 세우기로 ‘결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성과를 보았다. 2004년 미국 J.D.파워사가 실시한 초기 품질조사에서 품질의 대명사인 일본의 토요타에 버금가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로 인해 이제는 더 이상 한국차가 싸구려 또는 낮은 품질이라고 하는 기사는 찾아 보기 힘들 정도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까지 내구품질에 대한 신뢰성 구축이라는 숙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최근의 상황으로 본다면 그 역시 그다지 이룩할 수 있는 과제로 보인다.

이런 현대자동차 경영진의 ‘결단’ 이외에 국제정세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을, 아니 한국차를 도와주고 있다. 다름 아닌 석유파동을 촉발시킨 이라크 전쟁이 그것이다. 이라크 전쟁 전 배럴당 20달러 전후에 불과했던 석유가격이 지금은 70달러를 넘어서있다. 소비자들은 당연히 기름 덜 먹는 차를 찾게 되었고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일본차다. 하지만 시장은 넓고 수요자도 다양해져 가격 경쟁력에서 앞선 한국차도 구매 리스트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내수에서의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차의 생산 및 판매는 일취월장을 거듭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뿐 아니라 GM대우제 모델들도 세계 각국에서 각광을 받으며 부평은 물론이고 군산, 창원 공장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단’은 해외 현지화의 본격적인 추진이다.
시대는 변했다. 이제는 ‘판매되는 곳에서 생산한다.’는 토요타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더 이상 한국 내에서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단적으로 ‘소품종 다량생산의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이행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만하더라도 1995년 모델 하나당 판매대수가 10만대를 넘었던 것이 2005년에는 4만 9,000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정보화 함께 개성있는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는 팽창해 갔고 그런만큼 자동차회사들은 좁은 지역 소비자들의 니즈에 부응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플랫폼과 부품의 공유화 등을 통해 비용을 저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규모의 경제논리에 지배를 받는 자동차회사들에게는 커다란 과제인 셈이다.
그것을 토요타등 일본 메이커들은 현지화를 통해 해결해 오고 있다. 토요타 등은 이미 1980년대부터 해외 생산시설을 설립해 지금은 일본 내 19개의 공장이 있고 해외 공장은 57개에 달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 그것도 부족해 토요타는 2005년부터 2007년 사이 7개의 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그뿐인가 기존 생산시설의 용량을 늘리고 건설 중인 시설의 용량도 계획보다 확대시키고 있다.

중국시장에서는 공급과잉 논란이 증폭되어 정부차원에서 시설 확대에 메스를 덴다는 수준까지 갔지만 토요타 등 일본 메이커들은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해 가며 현지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토요타자동차의 현지화 전략의 결과는 지난 5월 10일 발표한 2006년 3월기 연결결산에 잘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해외 판매가 호조세를 보인 결과 그룹의 매출액은 전기 대비 13.4% 증가한 21조 369억엔으로 일본의 제조업체로서는 처음으로 20조엔을 돌파, 세계 최대인 GM의 2005년 12월기 결산의 매출액 약 21조 7,600억엔(1달러 =113엔)에 육박했다. 2007년 3월기의 연결결산 매출액은 22조 3,000억엔으로 전망하고 있어 GM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
철저한 코스트 다운과 세계시장에서의 신차 판매 호조로 최종 이익은 17.2% 증가한 1조 3,721억엔으로 4년 연속 사상 최고기록을 갱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1조엔 초과 이익은 3년 연속.

현대기아차그룹은 2005년 미국 앨라배마 공장 준공을 계기로 해외 현지화 전략이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에 현대와 기아의 제 2공장이 건설중에 있고 상용차 공장도 확대하고 있다. 터키와 인도공장도 용량이 한계에 이르렀다. 올해 말에는 슬로바키아에 기아차 공장이 준공된다. 미국에 기아차 공장 계획도 추진되고 있고 체코에 현대자동차 공장 건설도 얼마 전 시작됐다.

사실 현대자동차의 본격적인 발전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안팎으로 내실을 다져야 할 시기이고 자체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때이다. 이때에 작금의 상황이 터진 것이다. 이를 지켜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안타까움을 피력한다. 현대기아차그룹 직원은 물론이고 국내 경쟁업체 종사자들, 나아가 수입차 업체 종사자들에 이르기까지 애정어린 시각으로 현대기아차 그룹을 지켜 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5월 12일 정몽구 회장은 또 다시 ‘결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중서신 형태로 밝혀진 정몽구 회장의 뜻은 "(수감돼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멈춤과 고난의 시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중의 하나인 이곳에서 지나간 일들을 깊이 성찰하고, 지금까지의 경영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힘을 합쳐 우리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며 대대적인 변화를 암시했다고 한다.

그 내용 중 필자의 눈에 들어 온 것은 "곤경에 처할수록 근본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현대차그룹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현대차 가족 여러분들의 땀의 결과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고 강조한 점 등이다.

이런 기업 총수의 인식 변화와 ‘결단’은 언제나 그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 해 온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 인식과 ‘결단’이 올바른 방향이었을 때는 발전을 거듭하겠지만 잘못됐을 때는 엄청난 대가를 치룬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인식과 ‘결단’을 실행에 옮기는 입장에 있는 집단들의 사고의 변화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이 만약에 남아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는 곪아 터진다.

지금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경영진 입장에서 볼 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큰 변수가 없는 한 현대기아차그룹의 미래는 당분간은 성장세를 그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국제정세가 현대기아차, 아니 한국차 업체들에게는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기아차 그룹 임직원들이 취해야 할 자세는 분명하다. 정몽구회장이 현대차 그룹으로 독립했을 때 내 세워 사시(社是)로 까지 정해진 ‘투명경영’을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런 내적인 문제로 힘을 소진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내부에는 분명 우수한 인재들이 많다. 그들을 자주 접하는 필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기도 한다. 우수한 두뇌와 혼신의 열정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들이 책임있는 자세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필자는 2005년 봄 발간한 ‘쏘나타, 신화를 창조하라’는 졸저에서 ‘인간관계가 아닌 인재 우선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번 현대기아차사태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다만 그것을 실천하느냐나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세상은 변한다. 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의 차이가 개인이고 집단이고 그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우리는 누차에 걸쳐 강조해왔고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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