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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국산 고유 모델 포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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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6-08-22 16: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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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국산 고유 모델 포니의 탄생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포니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이고 세계 시장에 현대는 물론이고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알린 첫 번째 모델이었다. 더불어 오늘날 한국이 세계 자동차생산대국 5위(2005년 기준 369만 9,350대)에 오를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된 모델이다.
물론 당시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로부터 무모하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와 결단으로 기간산업의 총아이자 종합 예술품인 자동차산업만이 국가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신념이 일구어 낸 작품인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1960년대 건설업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현대는 1967년 자동차회사를 세웠다. 이 역시 ‘불가론’이 지배적이었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규모의 경제가 요체인 자동차사업에 20세기말에 후발업체가 뛰어든다는 것에 대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했던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초기 자동차의 생산을 미국의 거대 다국적기업 포드와 기술계약을 통해서 했다. 다시 말해 포드로부터 모델 생산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포드의 모델을 현대자동차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시작했다는 얘기이다.
현대자동차는 1968년 11월부터 코티나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1969년에는 포드의 대형차인 20M, 1974년에는 뉴 코티나를 잇달아 출시했다. 그 결과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을 하게 된다. 그래봐야 당시 국내 자동차시장의 규모는 고작 1만대 전후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포드와의 합작투자에 관한 계약 연장 과정에서 1973년 협상이 결렬되어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기술력이 없던 현대자동차로서는 선진기업의 기술 제공이 없이는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의 경영진은 두 번째 결단을 하게 된다. 고유 모델의 개발이었다. 고유 모델이란 자동차의 부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메이커에서 개발 생산하는 의미는 아니다. 모델에 대한 기획을 주도하고 디자인이라든지 기술적인 내용은 외부로부터 공급받을지라도 그 모델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갖고 있을 경우 그것을 고유 모델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동차시장 연간 1만대 전후였던 한국의 상황에서는 자동차산업의 요체인 규모의 경제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적어도 연간 5만대 이상 생산을 해야 자동차회사로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대는 4만대 이상을 수출할 수 있는 ‘고유 모델’을 개발하기로 결단했다. 자체적으로 판권을 가진 모델이 아니고는 해외 시장에 수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라이센스 모델 대신 고유 모델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다시 한번 불가론을 내 세웠다. 대규모 양산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 300억 원 이상이 필요했었는데 현대자동차는 자본금이 17억 원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누구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의 경영진은 세계의 투자자들을 찾아 다니며 차관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미쓰비시와의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해결했다.

당시의 상황은 전 세계가 석유파동으로 인한 충격에 휩싸여 있었던 때. 그래서 현대자동차는 기본 엔진을 1.3리터급에 맞추고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차체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에게, 설계는 만토바니에게 의뢰했다. 쥬지아로는 5인승 4도어 모델과 4인승 2도어 쿠페 두 모델을 제시했고 이 중 4도어 모델이 최종 선정되었다. 여기에 미쓰비시의 4기통 1,238cc 새턴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얹은 현대의 첫 독자모델 포니는 개발을 시작한 지 불과 1년 6개월 만인 1974년 10월 이태리에서 개최된 제55회 토리노 모터쇼에서 출품됐다.

처녀 출품한 작품이었지만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차라는 점과 비슷한 시기 폴크스바겐 골프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소형차라는 사실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그런 관심에 힘입어 현대자동차는 1975년 12월 울산에 연간 생산능력 10만 대 규모의 종합공장을 세워 50대의 포니를 시험 생산했고 1976년부터 4도어 해치백 포니1의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다.
이어서 1976년 픽업을 비롯해 1977년에는 왜건, 78년에는 배기량 1천439cc 92마력 엔진을 얹은 포니 1400을 출시했다. 물론 그때마다 내외장을 크게 개선했으며 자동 변속기도 도입했다. 그리고 포니는 1982년 차체 모서리를 둥글리고 인테리어를 현대적으로 바꾼 포니2로 변신해 ‘한국의 벤츠’로 불리며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포니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인기 있었다. 현대는 76년 7월 남미 에콰도르에 5대를 시작으로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포니를 수출했다. 83년 현지법인을 통해 캐나다에 진출한 포니2는 84년 캐나다 수입차 판매 1위를 차지해 훗날 포니2의 후계차인 엑셀이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포니는 포니2 픽업이 90년 단종될 때까지 국내외에서 모두 66만1천501대가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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