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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은 금융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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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9-05-27 06: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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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은 금융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다.

20세기 말 자동차산업의 화두는 규모의 경제였다. 덩치를 키워서 비용을 저감해야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동차산업의 생존 조건이 바뀌고 있다. 아니 바뀌고 있다기 보다는 자동차산업의 본질로 회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피아트와 크라이슬러간의 제휴, 오펠 등의 인수의사 표현 등으로 이합집산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M&A열풍이 불고 있다는 식의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20세기 말의 ‘사건’과 21세기의 현상을 통해 자동차산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짚어 본다.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자동차산업은 탄생 이래 합병과 통합의 역사를 계속해 왔다.
합병과 통합이 처음으로 극성을 부렸던 것은 1920년대와 30년대로 각 나라의 국내 기업들이 서로 뭉치는 형태로 일어났다. 그래서 무려 320개가 넘는 자동차제조회사가 있었던 미국이 오늘날의 빅3로 규모화를 추구한 것도 끝없는 합병과 통합의 결과다.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은 60년대에 통합을 완료했고 7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변화가 일어났다. 여기까지는 자국 내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후 국제적인 통합과 제휴의 시대가 다시 시작된다. 미국의 GM과 일본의 토요타가 절반씩 투자해 1982년 미국에 NUMMI를 설립해 생산을 개시한 것이 그 시초다. 이것이 국제적 규모의 합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국제적인 업계 재편은 가속화되어갔는데 그 이유는 물론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 다시 말해 생산설비의 건설과 제품을 개발하는데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합병을 통해 부품을 공유화하면 개발비를 저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규모의 경제라는 말로 요약되었고 이 후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회사들은 서로에게 궁합이 맞는 상대와 짝짖기를 하려고 애를 써왔다. 그런 움직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었던 것이다. 1998년 독일의 다임러 벤츠와 미국의 크라이슬러의 인수합병이었다. 당시 전 세계 자동차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가 전격적으로 합병을 발표한 것은 1998년 5월이었다. 이듬해에는 르노와 닛산이 자본제휴를 발표해 세계 자동차산업이 6대 그룹과 혼다, BMW, 현대 등 자국 자본에 의한 회사라고 하는 형태의 모양세가 갖추어졌다.

그런데 그 보다 먼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 합병 이전인 1994년 독일의 BMW는 영국의 로버를 인수했었다. BMW와 로버를 통합한 BMW 그룹의 총생산대수는 100만대를 넘어섰고, 이 일을 꾸민(?) 피셰츠리더 회장은 미니와 랜드로버, 오스틴 힐리등 많은 클래식한 브랜드들을 보유한 로버를 잘 활용하면 BMW그룹이 대형화되어 가는 경쟁사들 사이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규모의 경제에 대한 신념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피셰츠리더는 로버의 경영 정상화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으며 건실한 BMW와는 달리 문제 투성이의 로버를 잘못 파악했는지 본사에서 경영진을 직접 파견해서 로버사의 문제를 파악, 장악하지 않고 자율적인 해결에 맡기는 바람에 로버는 인수 후에도 점점 부실해져 갔다.

결과는 BMW는 로버그룹 중에서 랜드로버(Land Rover)를 포드사에게 매각하고 미니(Mini)브랜드는 계속해서 보유, 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로버(Rover)사는 영국계 컨소시엄인 Phoenix Consortium에게 상징적인 액수인 10파운드 가량의 '푼돈'을 받고 ‘넘겨줬다'.

이렇게 하여 부실한 영국 자동차 그룹은 1999년 당시의 피셰츠리더 회장과 라이츨레 사장이라는 BMW의 최고경영인 두 명을 앗아가는 등 BMW에게 커다란 후유증을 남긴 채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아이러니하게 BMW가 로버를 포기한지 바로 1년 전에 다임러 벤츠는 크라이슬러와 합병을 했다. BMW가 겪고 있던 고초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였던지 프리미엄 브랜드와 양산 브랜드의 합병은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뭉쳤다.

결과는 다임러크라이슬러는 2007년 5월 14일(현지 시간) 미국 크라이슬러 그룹의 80.1% 및 크라이슬러 관련 금융서비스회사를 55억 유로(74억 1,000만 달러)를 미국 투자회사(국내에서는 사모펀드라고 하고 있다.) 서베러스(Cerberus) 캐피탈 매니지먼트(CBS.UL)에 매각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또 하나의 합병이 실패로 끝났다.

통합에 의한 시너지 효과를 지나치게 평가해왔다는 것이 다임러 벤츠(메르세데스 벤츠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명)의 공식 입장 표명이었다. 1998년 당시 '세기의 합병'을 도출했던 크라이슬러의 밥 이튼과 다임러 벤츠 위르겐 슈렘프의 판단이 옳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임러와 크라이슬러 모두 새로운 기회를 찾는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런 실패로 이미 증명이 되었음에도 최근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탈리아의 피아트를 중심으로 한 인수합병이 논의되고 있다. 1998년 파국에 이른 피아트는 미국의 GM이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했었다. 하지만 2004년 GM은 위약금 2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면서 계약을 파기해 버렸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했을 때의 금액이 5억 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합병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고가 싹 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GM은 르노 닛산 그룹과의 제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역시 이익보다는 손해가 많다는 결론을 내리고 없었던 일로 했다.

그런 과정에서 20세기 말 많은 전문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규모의 경제 논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가 어느 시대에나 적용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BMW는 로버를 때 낸 이후 일취월장 발전을 거듭해 갔으며 메르세데스도 크라이슬러를 때 낸 후 재정 상태가 오히려 좋아졌다.

그래서 최근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제휴, 오펠 등의 인수합병이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특히 피아트는 기술력에 한계가 있다. GM 과 완전 결별 후 개발 도상국으로 눈을 돌려 수익성을 찾기는 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크라이슬러와 오펠등과 합병한다해도 그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서로 당장에 주고 받을 것은 판매 네트워크 정도다. 개발 생산과정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성공을 확신해 추진되었던 모든 이국간의 합병은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현재의 문제는 M&A가 아니다. 자동차산업 본질에 대해 되짚어 볼 때다. 양산 브랜드의 대명사인 미국 디트로이트 빅3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GM과 포드는 그들이 인수했던 모든 브랜드를 내놓았다.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야 미국 발 금융위기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한 석유가 급등이 도화선이었다. 부시 정부는 석유산업은 때 돈을 벌게 했지만 자동차산업은 무너트리는 누를 범한 것이다.

그로 인해 미국 경제가 뿌리채 흔들렸고 그 여파로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던 토요타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자동차회사들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판매 하락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자동차회사가 동시에 곤궁에 빠진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는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을 보유한 미국의 빅3가 몰락하고 그 여파가 전 세계에 미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제조업의 대명사였던 자동차산업이 금융산업으로 변질된데 있다. 자동차산업은 미국에서 할부금융이라는 것을 도입하면서부터 금융산업으로써의 길을 걸어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한 술 더 떠 은행들과 결탁해 돈 장사에 맛을 들이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자동차산업뿐만이 아니다. 석유산업도 이미 금융산업이 되어 버렸다. 돈 놓고 돈 먹기이다. 제테크에 능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 버린 것이다.

모든 기업체에서는 CFO(Chief Financial Officer)라는 직책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 버렸다. 그들이 하는 일은 회사의 재무상태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일이었지만 실제로는 선물환(헤지) 등의 거래를 통해 문서 속의 이익을 만들어 내는데 혈안이 되었다. 간단하게 GM대우의 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2008년 GM대우는 26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했던 환율이 폭락한 결과 2조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고 그로 인해 유동성이 흔들리며 부도 직전에 몰리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자동차산업을 바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메이커와 그렇지 못한 메이커로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기준은 자동차산업을 제품을 최우선으로 하는 제조업으로 여기고 있느냐 아니면 제테크를 잘 하는 금융산업으로 여기고 있느냐다.

금융산업화에 앞장 선(?) 미국 디트로이트 빅3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제조업은 제테크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다.

대신 ‘자체 자본’과 ‘자체 기술력’으로 자동차를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으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메이커들로 새롭게 정리되어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독일의 폭스바겐 아우디그룹과 BMW, 메르세데스 벤츠, 일본의 토요타와 혼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기아차 그룹 정도가 남아 있다. 르노닛산 연합도 서로 다른 나라 메이커끼리 연합해 생존하고 있지만 자본이 섞여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프랑스의 PSA푸조시트로엥도 자생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

폭스바겐 그룹의 마틴 빈터콘 회장이 2007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장에서 ‘기본으로 돌아가자’라고 했던 말이 새삼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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