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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업계 생존의 조건은 규모가 아니라 기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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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9-07-04 0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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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빅3의 몰락은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지각변동을 촉발하는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다.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제휴 협상을 계기로 새로운 질서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다. 일부에서는 1998년 독일의 다임러와 미국의 크라이슬러간의 세기의 합병을 떠 올리며 또 다른 인수합병의 물결이 일어 자동차업계의 지도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월간 이코노미 플러스 2009년 7월호 게재 원고)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국장)

자동차산업은 탄생 이래 합병과 통합의 역사를 계속해 왔다.
합병과 통합이 처음으로 극성을 부렸던 것은 1920년대와 30년대로 각 나라의 국내 기업들이 서로 뭉치는 형태로 일어났다. 그래서 무려 320개가 넘는 자동차제조회사가 있었던 미국이 오늘날의 빅3로 규모화를 추구한 것도 끝없는 합병과 통합의 결과다. 빅3라고 하지만 브랜드로 따지면 20여개에 달했다. 그것은 규모의 경제라는 말로 요약되었고 이 후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회사들은 서로에게 궁합이 맞는 상대와 짝짖기를 하려고 애를 써왔다. 그런 움직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었던 것이 1998년 독일의 다임러 벤츠와 미국의 크라이슬러의 인수합병이었다. 당시 전 세계 자동차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가 전격적으로 합병을 발표한 것은 1998년 5월이었다. 이듬해에는 르노와 닛산이 자본제휴를 발표해 세계 자동차산업이 GM, 토요타, 포드, 폭스바겐, 다임러크라이슬러, 르노닛산 등 6대 그룹과 혼다, BMW, 현대기아 등 자국 자본에 의한 회사라고 하는 형태의 모양세가 갖추어졌다.

그런데 그 보다 먼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1994년 독일의 BMW는 영국의 로버를 인수했었다. 하지만 1997년 BMW가 상징적인 액수인 10파운드 가량의 '푼돈'을 받고 로버를 매각하면서 실패로 귀결되었다. 아이러니하게 BMW가 로버를 포기한지 바로 1년 후 다임러 벤츠는 크라이슬러와 합병을 했다. BMW가 겪고 있던 고초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였던지 프리미엄 브랜드와 양산 브랜드의 합병은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뭉쳤다.

하지만 다임러크라이슬러가 2007년 5월 14일(현지 시간) 미국 크라이슬러 그룹의 80.1% 및 크라이슬러 관련 금융서비스회사를 55억 유로(74억 1,000만 달러)를 미국 투자회사(국내에서는 사모펀드라고 하고 있다.) 서베러스(Cerberus) 캐피탈 매니지먼트(CBS.UL)에 매각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또 하나의 합병이 실패로 끝났다.

그렇게 해서 자동차산업은 이때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지도를 완성했다. GM과 토요타, 포드, 폭스바겐, 르노닛산, 혼다, 현대기아차 등 양산 브랜드와 BMW, 다임러(메르세데스 벤츠) 등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각자의 길을 가는 쪽으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2008 미국발 금융위기로 디트로이트 빅3가 초토화되면서 새로운 지도를 그리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이탈리아의 피아트를 중심으로 한 인수합병 논의다. 피아트는 1998년 망했던 회사다. 살아남기 위해 당시 피아트는 미국의 GM이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했었다. 하지만 2004년 GM은 위약금 2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면서 계약을 파기해 버렸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했을 때의 금액이 5억 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합병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고가 싹 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GM은 르노 닛산 그룹과의 제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역시 이익보다는 손해가 많다는 결론을 내리고 없었던 일로 했다.

그런 과정에서 20세기 말 많은 전문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규모의 경제 논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가 어느 시대에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BMW는 로버를 때 낸 이후 일취월장 발전을 거듭해 갔으며 메르세데스도 크라이슬러를 때 낸 후 재정 상태가 오히려 좋아졌다.

그래서 최근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제휴, 오펠 등의 인수합병이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특히 피아트는 기술력에 한계가 있다. GM 과 완전 결별 후 개발 도상국으로 눈을 돌려 수익성을 찾기는 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크라이슬러와 제휴하기로 했지만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서로 당장에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판매 네트워크 정도다. 개발 생산과정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성공을 확신해 추진되었던 모든 이국간의 합병은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현재의 문제는 M&A가 아니다. 자동차산업 본질에 대해 되짚어 볼 때다. 양산 브랜드의 대명사인 미국 디트로이트 빅3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GM은 GM대우를 제외한 그들이 인수했던 모든 브랜드를 내놓았다.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야 미국 발 금융위기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한 석유가 급등이 도화선이었다. 부시 정부는 석유산업은 때 돈을 벌게 했지만 자동차산업을 무너트리는 누를 범한 것이다.

그로 인해 미국 경제가 뿌리채 흔들렸고 그 여파로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던 토요타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자동차회사들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판매 하락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자동차회사가 동시에 곤궁에 빠진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는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을 보유한 미국의 빅3가 몰락하고 그 여파가 전 세계에 미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제조업의 대명사였던 자동차산업이 금융산업으로 변질된데 있다. 자동차산업은 미국에서 할부금융이라는 것을 도입하면서부터 금융산업으로써의 길을 걸어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한 술 더 떠 은행들과 결탁해 돈 장사에 맛을 들이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자동차산업뿐만이 아니다. 석유산업도 이미 금융산업이 되어 버렸다. 돈 놓고 돈 먹기이다. 제테크에 능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 버린 것이다.

모든 기업체에서는 CFO(Chief Financial Officer)라는 직책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 버렸다. 그들이 하는 일은 회사의 재무상태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일이었지만 실제로는 선물환(헤지) 등의 거래를 통해 문서 속의 이익을 만들어 내는데 혈안이 되었다. GM대우의 예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2008년 GM대우는 26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했던 환율이 폭락한 결과 2조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고 그로 인해 유동성이 흔들리며 부도 직전에 몰리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자동차산업을 바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서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메이커와 그렇지 못한 메이커로 구분되어 가고 있다. 물론 그 기준은 자동차산업을 제품을 최우선으로 하는 제조업으로 여기고 있느냐 아니면 제테크를 잘 하는 금융산업으로 여기고 있느냐다.

금융산업화의 대명사격인 미국 디트로이트 빅3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제조업은 제테크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다.

대신 ‘자체 자본’과 ‘자체 기술력’으로 자동차를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으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메이커들로 새롭게 정리되어가고 있다. 이 기준을 충족한 업체로는 현재로서는 독일의 폭스바겐 아우디그룹과 BMW, 메르세데스 벤츠, 일본의 토요타와 혼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기아차 그룹 정도가 남아 있다. 르노닛산 연합도 서로 다른 나라 메이커끼리 연합해 생존하고 있지만 자본이 섞여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프랑스의 PSA푸조시트로엥도 자생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

다만 중국이라는 변수는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해야 한다. 현재 미국 빅3가 매물로 내 놓은 브랜드만도 10여개에 달한다. 이들 모두를 중국 업체들이 인수한다면 과거 일본이나 한국의 자동차회사들이 해외 업체들로부터 기술을 사들이거나 도용했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마인드가 부족한 중국 기업들이 자본만을 앞세워 기존 브랜드들을 싹쓸이 한다면 질서가 무너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15억이라는 시장은 기존 관점의 모든 예측을 무색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 거대한 시장을 어떤 방법으로 공략하느냐가 우선이다. 장기적으로는 Made by China 제품이 전 세계를 주름 잡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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