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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스토리 - 중국 최초의 자동차메이커 Hong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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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9-12-28 12: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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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자동차회사인 中國第一汽車集團(First Auto Works Group, 이하 FAW)의 승용차 디비전이 紅旗(Hongqi, Red Flag)이다. 1958년 정식으로 설립허가를 받은 홍치는 첫 모델 발표 당시 북경市 시장이었던 펑쩐(彭眞)의 건의로 마오쩌뚱(毛澤東) 사상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紅旗)을 상표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데서 홍치라는 이름이 유래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홍치의 첫 모델인 CA72는 구 소련의 GAZ社에서 만든 볼가(Volga)라는 모델에서 주요 기술과 제원을 제공받아 자체 설계로 제작한 것으로 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스타일과 유사하다.

첫 모델부터 홍치는 중국 지도자들의 업무용과 의전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64년에는 CA72가 국빈용차로 지정되어「國車」라는 명예를 수여 받고 오늘날까지 고위급 간부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1966년에는 CA770을 20대 생산하였는데 이것은 독일의 히틀러가 타던 메르세데스 벤츠社의 770K 리무진을 본 따 제작한 것으로, 전장 5.8m에 5,650cc V8 엔진을 탑재한 대형 리무진이다. 83년에 이르러 연비가 좋지 않아 한동안 생산이 중단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1989년 재생산하기 시작하여 1998년까지 꾸준히 생산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외국 파트너를 구하던 중 크라이슬러를 만나 닷지 600(Dodge 600)을 베이스로 하여 4기통 2,136cc 엔진 사양의 CA750과 6기통 3,244cc 엔진을 얹은 CA760을 발표하였다. 크라이슬러와의 인연으로 성공을 한 홍치는 크라이슬러 엔진 라인을 통째로 매입하여 CA7220 시리즈에 얹을 엔진을 직접 생산하기도 하였다.

1987년, 88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社의 모델 200과 230E를 녹다운방식으로 800여대 생산하면서 독일 메이커를 접한 것을 계기로 88년에는 아우디와의 합작에 성공한다. 아우디 모델 100의 생산 라인 일부를 FAW의 장춘(長春) 공장으로 이전하였는데 현재 장춘 공장은 구내에 버스가 다니고 기차가 달리고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이 있을 정도의 대규모 자동차 공장이다. 부지 면적이 1. 5㎢에 달하며 4만 여명의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홍치는 이곳에서 4기통 1,781cc의 모델 100과 5기통 2,226cc의 모델 200을 생산,판매하였다.

1989년부터 93년까지는 독일 업체의 도움으로 CA7225의 롱 휠베이스 버전을 제작하고, 94년에는 일본 닛산의 VG30S 엔진을 얹어 CA7300을 잠시 생산하였다. 오늘날에도 닛산과는 인연이 있어 2.0리터 엔진을 얹어 "世紀星(Century Star)"이라는 모델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1990년 FAW는 폭스바겐과 정식 합작으로 FAW-VW社를 설립해 제타(Jetta)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97년에는 패이스 리프트 모델을 선보였다. 그동안 홍치는 독자적으로 5인승 소형 국민차 CA7080을 개발하기도 했으나 프로토타입 발표에만 그치고 말았다.

1998년에는 미국 포드와의 합작으로 링컨을 베이스로 한 'Big Hongqi' CA7460을 발표했으며 99년에는 아우디社의 A6 생산을 시작하였다. 2001년에는 370여대의 明仕(Mingshi), 紅旗 18, 世紀星 같은 모델이 북경의 택시로 공식 판매된 것을 비롯해 연간 생산대수 21,000대 수준에서 생산을 꾸준히 하고 있다.

Hongqi CA770 (홍치 CA770)
중국공산당의 두번째 지도자로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제개혁에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덩샤오핑(鄧小平)이 1984년 인민공화국 건국 35주년 기념행사때 사열하면서 탄 차가 홍치(紅旗) CA770 리무진이다.

그 거대한 중국에 자동차 회사가 하나밖에 없던 시절 CA770은 태어났다. 당시 사회상황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은 미국적인 디자인(50년대 미국차의 전형적인 스타일)에다 엔진마저 미국에서 유행하던 V8 엔진을 얹었다. 이런 것을 보면 '자동차란 이념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공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66년 20대 생산에서 출발해 차츰차츰 생산을 늘이다 1983년 낮은 연비를 핑계로 한 중앙당의 건의에 의해 생산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1989년 재생산에 들어갔으며 91년까지 1,520대를 생산하였다.

6m에 이르는 길이와 3.7m의 휠베이스 안에는 7~8명은 충분히 탈 수 있었으며 운전석과 뒷좌석은 유리로 분리되어 있다. 도어는 클랩도어이고 뒷유리는 방탄에 커튼이 설치되어 있다. 주로 당원들을 위한 공식업무용 차량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앞범퍼 양쪽에 깃발을 달 수 있는 깃대가 마련되어 있다.

CA770은 의전용 리무진뿐 아니아 여러가지 목적으로 쓰이기 위해 다양한 타입으로 생산되었는데 엠블런스용인 CA770 W와 컨버터블 타입인 CA770 JG, 퍼래이드용인 CA770 TJ 등 여러가지 타입이 있다.

Hongqi CA770 Limousine (홍치 CA770 리무진)
홍치(紅旗)는 1953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자동차회사인 중국제일자동차집단(中國第一汽車集團, First Auto Works Group)에서 출발했다

1958년 CA72 모델을 시작으로 1966년에는 CA770을 선보였는데, CA770은 독일의 히틀러가 타던 메르세데스-벤츠 770K 리무진을 본떠 제작한 것으로, 전장 5.8m에 5,650cc V8 엔진을 탑재한 대형 리무진이다. 일명「大紅旗」라고도 불린 7~8인승CA770은 중국 영도자들이 주로 사용하여, 길 가던 사람들이 CA770을 보면 주목하여 예를 표했다고 한다. 연비가 좋지 않아 1983년부터 한동안 생산이 중단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1989년 재생산에 들어가 1991년까지 꾸준히 생산되었다.

본 전시품은 CA770 생산종료 후 1994년 건국 45주년 기념행사 때 덩샤오핑(鄧小平)의 사열용 행사 차량으로 전장을 7m로 늘려 특별 제작되었으나, 키가 작은 그를 위한 자동 승강 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공식 행사에는 사용되지 못했다. 이후 연구소에서 시험용으로 사용하다 일반에 매각되어 결혼식 임대 차량으로 활용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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