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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전설, 21세기의 아이콘 - 환희의 여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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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1-07-04 17: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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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 이야기가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면 이 전설이 널리 퍼지게 내버려 두세요.” – 환희의 여신상 디자이너 찰스 사익스의 딸 조세핀 사익스

이 이야기는 신비와 매력, 흥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도로들이 건설되고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이 폐지되면서 영국의 자동차 제조업체와 소비자, 매니아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열렸던 초창기 자동차 시대에서부터 시작된다. 등장인물 중 여러 명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지만 우리에게는 하나의 전설로 남았다. 또한, 오늘날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영감을 주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11년 2월6일부터 롤스로이스 자동차 제품의 후드 위에 우아하게 장식되기 시작한 날아가는 여인 모양의 마스코트, ‘환희의 여신상(Spirit of Ecstasy)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롤스로이스 브랜드를 창시한 찰스 롤스(Charles Rolls), 헨리 로이스(Henry Royce), 클라우드 존슨(Claude Johnson)이라는 서로 매우 다른 세 명의 사람들로 시작한다.

찰스 롤스는 귀족이자 기술자였으며 운전 경험이 매우 많았다.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롤스는 얼스 코트(Earls Court) 근처에서 자동차 수입 회사를 경영했다. 수입차의 품질에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맨체스터에서 자동차 제조업을 하던 유명 전기 기술자 헨리 로이스(Henry Royce)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사람은 롤스-로이스에서 하이픈의 역할을 한 클라우드 존슨(Claude Johnson)의 소개로 1904년 만났다. 존슨은 나중에 RAC 클럽이 된 대영제국 자동차 클럽(Motor Club of Great Britain)에서 비서로 재직하다, 1901년 롤스의 사업에 합류했다. C.S. 롤스 주식회사가 메이페어, 콘듀이트 스트리트에 위치한 대리점으로부터 롤스로이스 자동차 판매 독점권을 설정했을 때, 이를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존슨이 크게 기여했다.

존슨은 마케팅에 재능이 있었으며, 신문사 소유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초기 롤스로이스 광고에 사용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The Best Car in the World)’라는 유명한 문구도 존슨이 작성했다. 이 문구는 그 당시 자동차 매체들이 반복해서 사용했으며 지금까지도 롤스로이스 모델에 적용되고 있다.

클라우드 존슨과 찰스 롤스의 친구였던 존 스콧 몬타규(John Scott Montagu) 또한 자동차 산업의 선구자였다. 1902년 카 일러스트레이티드(The Car Illustrated)라는 잡지를 창간했고 그의 아들은 지금까지 햄프셔에서 환희의 여신 전설을 이어가고 있다.

1903년 몬타규는 찰스 사익스(Charles Sykes)라는 젊은 조각가이자 삽화가를 자신의 잡지사 전속 화가로 영입했다. 최초의 환희의 여신상 디자인에 방향을 제시해준 것은 바로 사익스의 아름다운 삽화와 청동상이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등장인물이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엘리노어 쏜튼(Eleanor Thornton)이다. 엘리노어는 대영제국 자동차 클럽에서 클라우드 존슨의 비서로 일했다. 이후에 몬타규의 개인 비서로 자리를 옮겼고 그 곳에서 사익스와 공동 작업을 하게 된다.

매우 영국적인 이 전설은 엘리노어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롤스로이스 이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자동차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잡한 후드 장식품이 유행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존슨은 자신을 매료시켰던 사익스의 삽화와 조각품을 해결책으로 삼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사실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엘리노어 쏜톤에 관한 부분은 신비스럽고 흥미롭다. 엘리노어는 성실한 직원이었으며, 몬타규 사무실에서 ‘사업의 배후에서 지원하는 두뇌’ 역할을 했다. 존슨이 대영제국 자동차 클럽에서 일할 때에는 그 유명한 1,000마일 시운전을 기획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000마일 시운전 행사는 초기 자동차 산업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이는데 크게 기여한 대회였다.

엘리노어는 능력 있는 동료 이상이었다. 아름답고 도발적이었던 그녀는 사익스의 작품활동에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해 연재되었던 자동차나라의 앨리스(Alice in Motorland)의 주인공도 엘리노어였다. 엘리노어는 잡지 표지 모델로도 여러 번 등장했는데, 1905년 크리스마스 판에서는 날개 달린 마차를 탄 앨리스의 모습을 띄었다.

엘리노어가 사익스의 초기 스케치와 그림, 청동 조각상에 영감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위스퍼러(Whisperer)는 사익스의 청동 조각상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조각상이 후에 등장할 후드 마스코트의 바탕이 된다.

슬프게도 찰스 롤스는 환희의 여신상이 롤스로이스 자동차에 장착되는 것을 끝내 보지 못했다. 비행에 대한 그의 열정은 1910년 본머스 에어쇼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그의 사고는 영국 내 최초의 비행 사망 사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엘리노어도 결국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그녀와 몬타규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1915년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지중해에서 그들이 탄 배에 적의 어뢰 공격이 있었고 엘리노어는 돌아오지 못했다. 몬타규는 살아 남아 귀국했는데, 타임지에 그의 사망 기사가 이미 실려 있었다.

그렇다면 전설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한 세기 동안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장식해왔던 작은 조각상이 정말 엘리노어 쏜톤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는 게 사실이다.

사익스는 1915년부터 1950년 죽을 때까지 엘리노어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의 딸 조세핀에게는 비밀을 털어놓았을 수 도 있지만, 엘리노어와 아버지, 환희의 여신상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조세핀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엘리노어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어요. 흥미로운 이 이야기가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면 그냥 이 전설이 퍼져 나가게 내버려 두세요.”

홍보의 힘과 전설의 매력을 알고 있었던 존슨이 이야기를 더 부풀렸을 수도 있다.

확실한 점은 환희의 여신상이 진정한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로스트 왁스(lost wax) 공법을 지금까지 이용하기 때문에 조각품 하나하나가 아주 독특하다. 따라서 자동차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이 심볼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정과 의미를 부여한다.

엘리노어 쏜튼의 이미지가 어떻든지 간에,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 환희의 여신상이 롤스로이스 자동차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그들을 흥분 시키며, 영감을 불어 넣어 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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