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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 페라리를 타도하기 위한 불굴의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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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1-11-05 0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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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하면 주저 하지 않고 이탈리안 레드의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를 연상한다.
람보르기는 무작정 페라리를 이기기 위해 한 사람에 의해 탄생했지만 그 후 선의의 경쟁을 통해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을 일진보 시켰고, 더불어 많은 메이커에 자극을 주게 되었다. 타도 페라리를 외치며 탄생한 람보르기니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알아보자.

이탈리아인에게는 '벤데타(Vendetta)’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중세부터 뿌리 깊게 내려져 있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피의 복수’나 ‘상호 복수’를 뜻하는 이 말은 부당한 도전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끝장을 보고 마는 라틴민족의 기질과 지중해의 변덕스런 날씨 환경으로 형성된 독특한 민족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포츠카 메이커들은 이런 ‘벤데타’를 계기로 탄생하게 된다. 알파 로메오에서 쫓겨난 엔초 페라리가 알파 로메오를 타도하겠다는 일념으로 페라리를 만들었고, 페라리에서 일하던 조아키노 콜롬보가 엔초와 대판 싸워 라이벌인 마세라티로 옮겨 페라리 타도에 앞장서게 되었으며, 오늘의 주인공인 페루초 람보르기니 역시 엔초 페라리에게 선의의 충고를 부당하게 무시당했다고 여겨 페라리와 견줄 수 있는 람보르기니를 탄생시킨 것으로 이는 이탈리안식 사고와 이탈리안식 자동차 만들기가 합쳐서 결국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명문 메이커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트랙터에서 수퍼 스포츠카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초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1916년 4월 이탈리아의 볼로냐 근처의 작은 마을 레나초에서 농업을 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부터 기계와 과학기술 등에 관심을 보였던 페루초는 볼로냐에서 기술학교를 수료하고 세계 2차 대전 중 그리스 로도스섬에 배속되어 자동차 정비주임으로써 많은 노하우를 쌓는다.

종전 후 그는 고향으로 복귀한 후 전쟁 중 낡은 군용 트럭을 개조하여 트랙터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은 전후 국가 재건을 위해 많은 수의 상용차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페루초는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이 사업으로 센토에 작업장을 사들여 1948년부터 본격적으로 람보르기니 트랙터를 생산하게 된다. 1959년에는 트랙터뿐 아니라 연소기와 에어 컨디셔너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페루초의 열정으로 사업은 날로 번창해 그가 하고 싶었던 헬리콥터 생산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하여 중단하게 된다. 하지만 페루초는 어린 시절 꿈꾸었던 일들을 하나 둘씩 성취하게 된다.

페루초가 본격적으로 자동차에 뛰어 든 것은 피아트 토폴리오나 1100(밀레 첸트)을 직접 튜닝하여 출력을 높이는 일에 몰두 하다, 1947년 배기량 500cc 토폴리오를 700cc로 튜닝 하여 밀레밀리아에 출전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이탈리아 자동차들은 SV 엔진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OHV 헤드를 장착한 것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트랙터 사업이 더욱 번창 하면서 자동차 일에 전념할 수 없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페라리는 아무나 탈 수 있는 스포츠카는 아니었다. 부를 축적한 페루초는 페라리를 비롯하여 마세라티, 오스카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기계 분야에 지대한 관심과 직접 튜닝을 했던 페루초는 페라리의 몇 가지 문제점을 엔초에게 건의 했지만 거절당한 것에 ‘타도 페라리’를 외치며 모든 면에서 페라리를 뛰어 넘는 스포츠카를 만들기 위해 스포츠카 전문 메이커를 설립하게 된다.

350GT 1964
1963년 프로토타입으로 선보인 350GTV를 다듬어 탄생한 람보르기니의 첫 번째 양산차.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여 전 세계 스포츠카 시장에 람보르기니의 이름을 알린 의미 있는 모델이다. V12 3.5리터 엔진에 ZF 5단 매뉴얼 트랜스미션을 매칭시켰으며, 최고출력은 280마력, 1966년까지 120대만 생산됐다. 최고속도는 250km/h, 0→100km/h 가속은 6.8초.
독립 서스펜션과 LSD를 채택했으며, 단 2대만 생산된 320마력의 350GTS도 선보였다. 350GT는 400GT로 이어졌다.

Miura 1966
스페인의 유명한 황소 이름을 딴 미우라는 지금도 카 마니아들 세계에서는 전설적인 스포츠카로 손꼽힌다. 마르첼로 간디니의 전위적인 디자인과 컴팩트한 V12 3.9리터 엔진을 미드십에 장착하고 제네바 모터쇼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1969년까지 475대만 만들어 졌으며, 로드스터 버전이 쇼카로 선보이기도 했다. 미드십에 탑재된 V12 엔진은 최고출력 350ps/7,000rpm, 최대토크 37.6kg·m/5,100rpm으로 0→100km/h 가속은 6.7초, 최고속도는 280km/h에 육박하여 당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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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ero 1968
본격적인 GT를 위해 탄생한 이슬레로 400GT는 1968년 알루미늄 보디에 DOHC V12 엔진과 독립식 서스펜션과 디스크 브레이크,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무장하고 제네바 모터쇼에서 소개됐다.
1969년까지 125대만 생산되었으며, V12 3.9리터 엔진의 최고출력은 320마력, 0→100km/h 가속은 6.2초, 최고속도는 265km/h의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이슬레로 400 GTS는 1970년까지 100대만 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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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ach 1973
1974년 제네바 모터쇼에 데뷔한 카운타크는 마르첼로 간디니가 람보르기니를 위해 2번째 디자인한 모델이다. 튜뷸러 스페이스 프레임, 걸윙 도어, 세미 롤 다운 사이드 윈도우 등 스펙터클한 스타일링으로 미우라의 뒤를 잇는 강력한 스포츠카로 당시로선 무척 혁신적인 모델이었다.
미우라의 V12, 3.9리터 엔진을 베이스로 카운타크 LP400 경우, 최고출력 374ps/8,000rpm, 최대토크 37.1kg·m/5,000rpm으로 0→100km/h 가속은 6.8초, 0→1km 가속은 14.4초, 최고속도는309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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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 002 1986
1981년에 등장한 LM 001 후속 모델로 AM 제너럴 허머와 같은 전천후 SUV로 중동의 부호들을 타켓으로 개발했다.
엔진은 파올로 스탄자니가 설계한 카운타크의 V12 5.2리터 455마력 엔진을 탑재하여 3톤이 넘는 차체 중량을 0→100km/h 가속 7.8초, 최고속도 210km/h에 이르렀다. 특히 4WD 시스템은 앞·뒤 토크를 25~75%까지 자동으로 분배하여 최적의 구동력을 발휘하며, 카운타크의 브레이크 시스템을 적용하여 안정성을 확보했다. LM 002는 301대가 생산됐고, 일부는 사우디아라비 군에 납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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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blo 1990
카운타크 후속 모델로 개발된 디아블로는 1990년에 첫 선을 보였다. 미우라와 같이 황소 이름을 따서 사용했으며, 스타일링 역시 마르첼로 간디니의 손길이 묻어 있으며 당시 람보르기니를 인수한 크라이슬러에서 수정을 가하여 탄생하게 된다. 초기 디아블로는 V12 5.7리터 엔진을 사용했으나, 배기량을 6.0리터로 확대한 550마력의 디아블로도 선보인다. VT 6.0은 최고출력 492ps/7,000rpm, 최대토크 59.0kg·m/5,200rpm으로 0→100km/h 가속은 3.95초, 최고속도는 335km/h. 1998년까지 800여대가 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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