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오토뉴스

상단배너

  • 검색
  • 시승기검색
ä ۷ιλƮ  ͼ  ī 󱳼 ڵδ ʱ ڵ 躴 ͽ ǽ ȣٱ Ÿ̾ Auto Journal  Productive Product
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F1 역사상 최고 드라이버 톱10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3-09-23 02:54:47

본문

F1 역사상 최고 드라이버 톱10

지금까지 F1 무대를 밟은 드라이버는 750여 명. 이 가운데 F1 그랑프리를 빛낸 선수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드라이버는 누구일까? 이보다 예민한 논쟁거리도 없을 듯하다. 사실 F1 무대에서 뛴다는 그 자체만으로 세계 최고의 훌륭한 드라이버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최고 드라이버는 있기 마련. 폴포지션, 우승, 페이스트랩 횟수 등의 데이터와 선수의 인지도 등을 고려해 필자 임의대로 F1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명의 드라이버를 선별했다. 단 올 시즌에 출전하는 드라이버는 제외했다.

후안 마누엘 판지오
통계로 드라이버의 실력을 판가름한다면 아르헨티나 출신의 판지오는 F1계의 정상급이다. 출전횟수 51전에 5회의 세계 챔피언과 24승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통계는 실상의 절반 밖에 밝히지 못한다. 1957년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관전한 사람이라면 마세라티 250F를 몰고 질주한 그의 위력을 잊지 못할 것이다. 옛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현역 드라이버들도 최고로 꼽는 레이서 중 한 명이다.

36888_2.jpg


스털링 모스
세계 타이틀을 단 한 번도 따지 못한 드라이버 가운데 단연 사상 최고의 레이서. 통산 16승. 그 중 2위가 4회였다. 3번은 J.M. 판지오, 한 번은 M. 호손에게 우승을 빼앗겼다. 유명한 일화로 1958년에 친구이자 라이벌인 M. 호손이 포르투갈 레이스에서 임원들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타이틀을 스스로 거부했다. 그는 아직도 아마추어 정신이 널리 퍼져 있던 시대에 최초의 진정한 프로페셔널 드라이버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드라이버 경력은 1962년 부활절 직후 월요일에 발생한 충돌사고로 일찍 끝을 맞았다.

짐 클라크
72전 중 25승을 거둔 전설적인 드라이버. 콜린 채프먼의 로터스팀을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딴 것은 1963년과 65년뿐이지만 클라크와 채프먼은 1960년대를 휩쓸었다. 특히 속도 면에서는 최고의 레이서가 아닐까? 트랙을 떠난 후 스코틀랜드 국경지방의 평온한 농부로 돌아간 클라크가 1968년 독일 호켄하임에서 사망하자 F1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넬슨 피케
3회 세계 챔피언과 통산 23승. 그 성적에 힘입어 상위권에 들었다. 하지만 그의 선수생활은 실망스러운 일면이 있다. 초기에는 안정된 달리기와 스피드를 자랑했다. 특히 1981년의 타이틀전은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후기에 가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었다. 불행히도 그 인상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 또한 그는 싸움을 피하지도 않았다. 독일 호켄하임에서 살라자르와 충돌한 후 벌였던 쿵푸 스타일 싸움실력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니키 라우다
라우다의 레이서 생활은 페라리와 브라밤으로 갈라진다. 1974년 페라리에 들어가 에이스로 자리잡고 F1계를 장악했다. 77년까지 페라리에서 활약해 2회 타이틀을 잡은 뒤 브라밤으로 옮겼다. 7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갑자기 은퇴했다가 82년 맥라렌에 들어가 F1에 복귀했을 때에는 훨씬 신중했고 속도가 떨어졌지만 안정된 달리기로 84년에 다시 챔피언의 왕관을 따냈다. F1에 있는 동안 자신의 완고한 시각을 굽히지 않으며 냉소적 유머로 일관했다.

알랭 프로스트
챔피언 타이틀이 4회여서 J.M. 판지오의 5회에 뒤지지만 프로스트는 51승으로 그랑프리 사상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그의 탁월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비판자가 많지만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1986년 케케 로즈버그와 함께 맥라렌에 있다가 그가 떠난 뒤의 맥라렌 전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시기 통계를 살펴보면 프로스트는 한 차례 월드 챔피언십(1989년)과 11승(4PP)을 거두었다. 1993년 은퇴한 프로스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팀을 운영하려다 실패했지만 F1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시기에 그가 세운 기록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36888_3.jpg


아일톤 세나
F1 역사상 브라질 출신의 세나처럼 유능한 드라이버가 없었고, 그처럼 자신만만하게 시대를 지배한 레이서도 없었다. 서킷에서 산화한 나이는 34세. 드라이버로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그 나이에 46번의 폴포지션(PP)에서 35승을 올렸고, 마법과도 같은 순간들을 연출하며 모든 승리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세나의 전성기는 1984년 모나코, 1987년 모나코, 1988년 스즈카, 1992년 모나코, 1993년 도닝턴을 들 수 있다. 세나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숭배하고 존경하며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드라이버다. 매년 5월 1일이면 모두가 그를 애도하며 기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그를 상기하곤 한다.

36888_4.jpg


재키 스튜어트
드라이버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F1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국제적 기업가, 스튜어트 그랑프리팀의 오너이기도 하다. 때문에 요즘에는 그의 눈부신 드라이버 경력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F1 데뷔 때부터 매끈한 드라이빙과 질풍 같은 스피드가 일품이었다. 3회 세계 챔피언을 따내고 은퇴할 때까지 27승의 기록을 남겼다.

나이젤 만셀
만셀은 전형적인 대기만성형이다. 하지만 일단 궤도에 들어서자 거침없이 달렸다. 데뷔 75전째인 1985년 영국 브랜즈 해치 그랑프리에서 처음으로 표창대 정상에 올랐다. 그 뒤 112전을 더 뛰면서 30승. 1992년에 F1을 떠나 미국의 인디카로 발걸음을 돌렸으며 1994년 윌리엄즈로 돌아왔지만 황금기가 지난 버린 뒤였다. 영국의 스포츠 영웅은 ‘사랑이 아니면 증오’를 받게 마련이다. 애증과는 관계없이 만셀은 진정 탁월한 레이스 드라이버다.

미하엘 슈마허
지난해 은퇴한 드라이버로 F1 황제로 불리고 있다. 베네통 두 차례의 타이틀을 따냈다. 슈마허가 완파한 윌리엄즈는 베네통 이상의 저력을 가진 경주차. 페라리에서도 눈부신 테크닉을 선보였다. 그는 경주차가 역부족일 때도 승리를 끌어내는 괴력을 지니고 있다.

36888_5.jpg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하단배너
우측배너(위)
우측배너(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