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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얽히고설킨 모터스포츠 라이벌 스토리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4-01-27 03:44:56

본문

금세기 최고의 현역 축구스타 라이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처럼 스포츠계에서 라이벌은 무궁무진하다.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라이벌 관계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스페인 프리메라 리그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등이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다. 모터스포츠 최고봉인 F1 그랑프리에도 라이벌 관계가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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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초창기인 1950년대에는 J.M. 판지오와 S. 모스가 존재했고 60년대에는 J. 클라크와 G. 힐이 있었다. 70년대 초반에는 한때 J. 스튜어트와 E. 피티팔디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고, 80년대 동시 데뷔한 A. 세나와 A. 프로스트의 경쟁은 F1 그랑프리 역사 중에 가장 압권이었다. 페라리의 M. 슈마허와 맥라렌의 M. 하키넨은 90년대 최고 라이벌로 자리했으며 2000년대엔 J. 버튼과 L. 해밀턴이 대표적인 라이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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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950년대 대표 라이벌인 아르헨티나 출신 J.M. 판지오와 영국 출신 S. 모스는 55년부터 4년간 열띤 경쟁을 펼쳤다. 두 선수는 사제지간으로 당시 26살의 모스는 1955년 마세라티에서 메르세데스-벤츠로 팀을 옮겨 월드 챔피언(51, 54년) 출신 판지오에게 레이싱 테크닉을 배웠다. 판지오는 44살이었다. 하지만 모스는 3년(55~57년) 연속 정상에 오른 판지오의 그늘에 가려 번번이 2위에 머물렀다.

두 선수의 결투는 판지오가 쿠바 그랑프리 전날인 1958년 2월 23일 카스트로군에게 납치당한 후 충격을 받아 시즌 도중에 은퇴하면서 막을 내렸다. 모스는 이듬해 ‘2인자’의 딱지를 떼고 정상에 올라서는 듯 했으나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1961년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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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인 J. 클라크와 G. 힐의 라이벌 구도도 모터스포츠계에서 유명하다. 2년 터울로 F1에 데뷔한 힐(58년)과 클라크(60년)는 1962년부터 7년간 혈투를 펼쳤다. 두 선수의 대결은 명문 BRM와 신예 로터스의 컨스트릭터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두 선수는 1962년(힐), 1963년(클라크) 번갈아 시리즈 정상에 오른 뒤 매년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다. 특히 62년 월드 챔피언 힐 덕분에 BRM은 로터스와 쿠퍼를 앞질러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을 그동안의 패배를 설욕했다.

힐은 1968년 클라크의 소속팀인 로터스로 이적해 한솥밥을 먹었지만 자존심 대결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네덜란드 호켄하임 그랑프리에서 의문의 사고로 클라크가 죽어 힐은 쉽게(?) 월드 챔피언을 차지했다. 그러나 힐 역시 모스처럼 이후 오랫동안 현역에서 활동했지만 명성에 걸맞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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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튜어트와 E. 피티팔디도 1970년부터 1973년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혈투’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이미 챔피언(69년)에 올라 레이스 영웅으로 추앙받던 스튜어트는 1971년에 종합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어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스튜어트 타도에 나선 피티팔디는 이듬해 로터스 72 경주차로 12경기 중 5경기에서 우승컵을 품에 안아 25세의 나이로 최연소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1973년에는 F1 그랑프리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상승세를 탄 브라질 출신 피티팔디가 주역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으나 월드 챔피언 타이틀은 스튜어트에게 돌아갔다. 세 번째 챔피언이 된 스튜어트는 은퇴해 고향인 영국 와틀랜드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다. 스튜어트의 그랑프리 27회 우승은 이전에 클라크가 세운 25회와 판지오의 24회 기록을 깬 것이다. 브라질 출신 피티팔디는 스튜어트가 은퇴한 틈을 타 74년에 챔피언이 되었지만 이후 계속 쇠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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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최대의 라이벌은 ‘전설적인 레이서’ A. 세나와 ‘서킷의 교수’ A. 프로스트다. 1988년 세나는 로터스를 청산하고 운명의 라이벌이었던 프로스트가 몸담고 있던 맥라렌으로 옮긴 후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이듬해에도 근소한 점수차로 선두다툼을 벌였으며, 최종전 일본 스즈카 그랑프리를 앞두고 세나가 앞섰다. 그러나 최종전에서 프로스트가 세나를 들이받고 표창대 정상에 섰다. 그 뒤 충돌지점은 ‘세나-프로스트 코너’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나는 기자들 앞에서 프로스트를 정면으로 비난할 정도 감정이 극에 달했으나 프로스트가 은퇴한 1993년 이후 조금씩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다. 세나는 1994년 산마리노에서 머신 조종석 무선을 통해 프로스트가 떠난 외로움을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그러나 세나는 앙금을 완전히 풀지 못하고 그해 이몰라에서 사고로 사망해 안타까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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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양대 라이벌을 꼽으라면, 단연 페라리의 M. 슈마허와 맥라렌의 M. 하키넨을 떠올릴 것이다. 1990년 독일 F3 챔프 슈마허와 영국 F3 챔피언 하키넨은 F1 데뷔전인 마카오 그랑프리부터 치열한 경쟁을 했다. 두 선수 모두 91년 F1에 데뷔했지만, 94, 95년 정상에 등극한 슈마허에 비해 하키넨은 불운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98년 챔프 하키넨은 이듬해 영국 그랑프리에서 슈마허가 사고로 시즌 도중 불참해 2년 연속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자존심을 만회했다. 두 선수의 열띤 경쟁은 하키넨의 은퇴로 마침표를 찍는 듯하다.

이후 F1은 슈마허와 페라리가 독무대였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챔피언 타이틀은 모두 페라리의 슈마허의 독차지였다. 이 사이에 F1 인기도 반감되었다. 슈마허의 독주는 2005년 르노의 F. 알론소에 의해 막을 내렸다. 슈마허가 은퇴한 뒤에는 K. 라이코넨, L. 해밀턴, J. 버튼, S. 베텔 등의 새로운 챔피언들이 연이어 탄생했고 F1의 인기 역시 다시 살아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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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에 대한 시선은 때론 긍정적, 때론 부정적이 되는 등 사안에 따라 유동적이다. 하지만 라이벌 구도의 경우,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고 공정 경쟁을 한다면 시장 전체의 규모를 키우고 서로의 실력을 배가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 때문에 모터스포츠 팬들은 최근 독주를 펼치고 있는 베텔과 세기의 명승부를 벌일 새로운 라이벌 탄생을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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