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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서킷의 황제’ A. 세나가 남긴 명승부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4-01-29 01:41:16

본문

1960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태어난 A. 세나는 13세 때 모터스포츠에 뛰어든 천재 드라이버였다. 모터스포츠 최정상 F1에 발을 들인 1984년부터 94년 ‘산마리노의 별’로 산화할 때까지 그가 남긴 기록은 영웅의 발자취였다. 톨레만, 로터스, 맥라렌, 윌리엄즈 팀을 거치면서 출전한 161경기에는 34년을 살다간 세나의 숨결이 녹아들어 있다. 그가 떠난 지 20년. 그러나 서킷의 황제를 기억하는 팬들의 뇌리에 그는 영원히 살아있는 듯하다. F1 사상 길이 기억될 레이스는 많지만 그 가운데 시즌마다 가장 뛰어난 그랑프리를 골라 보았다

1984년 모나코 그랑프리
1984년 모나코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폭우 속에서 세나는 한 바퀴 랩타임이 2위보다 3초 이상 빨랐다. 그럼에도 시상대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마치 알랭 프로스트를 위한 레이스처럼 경기 중단을 알리는 적기에 이어 체커기가 나왔다. 결국 77랩 가운데 31랩이 끝났을 때 1위를 달리던 프랑스인 프로스트가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1985년 포르투갈 그랑프리
85년 시즌 2라운드가 열린 4월 21일, 포르투갈 에스토릴 서킷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1그리드에서 출발한 세나는 독주를 펼쳤다. 체커기가 나왔을 때 같은 랩에 레이스를 끝낸 드라이버는 2위 M. 알보레토뿐이었다. 레이스가 2시간 가량 지난 67주에 피니시 체커기가 나왔다. 세나와 알보레토의 차이는 자그마치 1분. F1 사상 초강력 다크호스의 출현을 알리는 경기였다.

1986년 스페인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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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시즌에 N. 피케, N. 만셀, A. 세나와 A. 프로스트가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이 엮어내는 레이스는 언제나 극적이었다. 이들은 스페인 헤레스 서킷에서 사투를 벌였다. 1위 만셀은 타이어 이상으로 아홉 바퀴를 남기고 피트인해 세나가 1위로 나섰다. 만셀은 19.4초 뒤진 3위. 불꽃 튀는 추격전을 벌인 72주째 세나와 만셀은 거의 동시에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시차는 0.014초. 만셀은 라인을 밟은 직후 세나를 앞질렀다.

1987년 모나코 그랑프리
연비가 좋은 머신의 운전대를 잡은 세나는 연료를 적게 싣는 작전을 폈다. 게다가 굿이어타이어의 이점을 최대한 살렸다. 모나코 첫 승의 비결은 여기에 있었다. 세나가 타이어 교환을 위해 피트인한 것은 43주째. 선두그룹에서는 마지막 피트스톱이었다. 1시간 57분에 이르는 장시간 레이스에서 세나는 육체와 정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그래서인지 경기 후 토했다. 하지만 승전 파티에는 산뜻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이튿날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며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1988년 일본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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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랑프리 직전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세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프로스트가 2연승한 반면 세나는 6위와 4위였다. 드디어 찾아온 스즈카의 결전. 세나는 PP를 잡았지만 엔진 트러블이 일어났다.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진 뒤 스즈카의 직선 코스에서 되살아난 세나는 시상대 정상에 올라 활짝 웃었다.

1989년 일본 그랑프리
타이틀과 우승을 동시에 노리는 세나와 프로스트는 종반에 접어들었다. 둘은 시케인에서 접촉. 프로스트는 경주차에서 내렸지만, 세나는 피트에서 노즈를 수리한 뒤 경기를 계속했다. 결국 선두를 달리던 A. 나니니를 따돌리고 먼저 체커기를 받았다. 그러나 세나는 프로스트와 접촉 후 코스에 복귀할 때 시케인을 통과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실격 판정이라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1990년 미국 그랑프리
89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프로스트와의 접촉사건은 큰 파문을 던졌다. 세나는 F1에 눌러있기로 했지만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개막전 미국 그랑프리에서 세나는 레이스의 기쁨을 되찾는 전기를 맞았다. 프랑스의 새별 장 알레지가 힘없는 티렐을 몰고 선두 세나를 맹추격했다. 이를 제압하고 표창대 정상에 오른 세나는 완전 부활의 기쁨을 만끽했다.

1991년 브라질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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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는 비원의 고국 승리를 향해 PP에서 발진했다. 계속 선두를 지키며 후반을 맞았다. 쌍벽 프로스트는 부진했고, 강적 만셀은 일찌감치 전열에서 탈락했다. 낙승이 점쳐지던 세나가 종반에 들어갔다. 하늘도 수중전의 왕자 세나를 축복하듯 서킷에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나는 기어 고장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이 순간 6단만으로 달리는 전설이 태어나고 있었다. 악전고투 끝에 고국 첫 우승을 이룩했다.

1992년 모나코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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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에서 승리의 여신은 세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종반에 만셀이 타이어 이상으로 피트인하자 세나가 선두로 튀어나갔다. 피트에서 나온 만셀은 사력을 다해 뒤집기에 나섰지만 노폭이 좁은 몬테카를로 시가지 서킷에서 추월은 불가능했다. 세나는 모나코 4연승에, 통산 5승의 위업을 달성했다(93년 다시 모나코를 제패했다). 두 라이벌의 각축전은 모나코 그랑프리 사상 가장 치열한 결투로 꼽힌다.

1993년 유럽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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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2위, 고국 브라질에서 수중전의 실력을 과시하며 역전승한 세나는 뒤이어 3라운드에 들어갔다. 무대는 영국 도닝턴 파크. 예선 4위에서 출발한 그는 빗속의 오프닝 랩에서 선두그룹을 제치고 기선을 제압했다. 뒤이어 변덕스러운 날씨에 갈팡질팡하는 프로스트를 곁눈질하며 먼저 체커기를 받았다. 수중전 왕자다운 면모가 빛나는 레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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