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국내 모터스포츠계에도 굵직한 소식들이 터져 나왔다. 최고의 빅뉴스는 챔프카 월드시리즈 서울그랑프리 무산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서울시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챔프카 한국대회를 서울난지도공원에서 열기로 주최 측인 코리아모터스포츠센터(KMC)와 2003년 계약을 맺고 1주 길이 2.5km의 서킷을 2004년 3월 착공, 5월에 완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4년 4월말 건설교통부가 홍수위험과 하천훼손 등을 이유로 장소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아 개최계획에 차질을 빗었다. 주최 측은 대회장소를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주변도로로 바꾸기로 했다. 이미 포장이 되어있는 도로를 활용해 아파트공사현장 밖으로 2.5km의 경주코스를 만든다는 것. 하지만 서울시는 7월 초에 일반도로를 막고 대회를 열면 시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대회 개최가 불가능하다는 통지를 보내왔다. 결국 개최 석 달을 앞두고 대회가 무산된 것이다.

경남도의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수퍼프리 재계약 포기도 빼놓을 수 없는 뉴스거리였다. 경남도는 3월말 F3 수퍼프리 재계약을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경남도지사가 중도사임하면서 갈팡질팡한 데다 창원시의회와 경기장 주변 주민이 강력하게 반발해 재계약이 연기되었다. 이후 경남도의회는 F3 대회비용(9억 원)과 5년 재계약을 승인했으나 보궐선거로 당선된 김태호 신임 경남도지사가 F3 대회 재계약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 또다시 난관에 부딪쳤다.

결국 경남도는 대회개최에 따른 경주차 굉음, 해마다 시설 보완공사와 대회기간 중 자동차통제로 인한 교통불편, 종합운동장시설 이용불편 등의 집단민원이 들어와 대회 연장 개최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7월 21일 창원시에 통보했다. 지난 1999년부터 경남 창원에서 개최된 이 대회는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 때문에 10월 16∼17일 강원도 태백 레이싱파크에서 열린 아시안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AFOS)가 2004년도 유일한 국제대회였다. 사실 AFOS 한국대회도 개최가 불투명했었다. 2003년도 한국 측 프로모터인 KFOS의 허술한 준비 탓으로 개운치 않게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대회 2주 전까지 서킷 공인을 받지 않았고, 국제자동차연맹(FIA)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와의 조율도 원만하게 처리되지 않아 2004년 캘린더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한국대회를 한 달 가량 남겨두고 AFOS와 한국 측 새 프로모터인 SG인터내셔널이 3년 계약을 맺었다. SG인터내셔널은 부랴부랴 태백준용 서킷을 대회장소로 결정한 뒤 KARA 공인을 받았다. 이 대회 역시 프로모터의 경험부족과 빠듯한 준비기간으로 또다시 파행을 걷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주최 측의 매끄러운 경기운영으로 무사히 대회를 마무리했다. 다만 홍보부족으로 국제대회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200여 명만이 경기장을 찾아 아쉬움을 남겼다.

일본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상륙한 AFOS의 카테고리는 포뮬러 BMW 아시아와 포르쉐 인피니언 카레라컵 아시아(PCCA). 부호들의 잔치인 포르쉐 카레라컵 아시안 챌린지에서는 M. 마시가 두 경기 모두 2위와 큰 차이를 보이며 2연승을 거두었다. 9개국 13명이 출전한 포뮬러 BMW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홍콩 출신 유망주 마치 리가 두 경기 연속 폴투윈을 낚았다.

2003년 포뮬러 BMW 아시아 시리즈 신인왕 출신인 유경욱은 불운으로 한국 대회에서 표창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2004년 시즌 종합 2위를 차지했다. 바레인,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태국, 한국 등을 돌며 모두 14전을 치른 이 대회에서 유경욱은 세 차례나 2위에 오르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3월 28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10월 31일 최종전까지 7전을 치르며 막을 내린 국내 최고의 자동차경주대회 BAT컵 GT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일본인 드라이버 심페이 코노미(오일뱅크)가 한국진출 3년 만에 포뮬러1800-A 클래스 ‘별 중의 별’로 우뚝 섰다. 시즌 6전부터 코노미의 저격수로 나선 최해민은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종합 2위에 만족했다. 4라운드까지 종합선두를 달린 조항우는 3위에 그쳤다.

그밖에 GT1 김의수(인디고), GT2 김한봉(펠롭스), 투어링A 이승철(아이리버), 하이카 박인천(알테크), 신인전 류상훈(리레이싱), 포뮬러1800-B 조현성(캐스트롤-킴스) 등이 시즌 클래스 최고의 드라이버가 되었다. 2004년 처음 선보인 GT1과 GT2 팀 타이틀은 인디고, 펠롭스가 차지했다.

시즌 6라운드에서는 대회 창설 10년 만에 처음으로 렉서스 IS200을 몬 황진우가 최고종목 GT1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승리로 황진우는 GT1 역대 최연소 우승(만 21세)을 이룬 것은 물론 소속팀 시그마파오-렉서스에 수입차 첫 우승, 팀 창단 이후 최단기간 우승(6경기) 등의 기록을 안기며 스타급 드라이버로 떠올랐다. 아울러 국산차의 독주가 끝나고 수입차와의 무한경쟁시대가 열렸다.

강원도 춘천 모터파크와 춘천시 동면에 마련된 랠리 특설 무대에서는 코리아 랠리 챔피언십의 서막을 열었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 랠리위원회가 주관하고 금호타이어와 춘천시가 후원한 이번 대회는 출전팀 절반이 탈락한 서바이벌게임. 안개 속에 파묻힌 개막전 우승컵의 주인공은 SS3 체커기가 흩날릴 때까지 점치기 어려웠다. 개막전의 히어로는 신수욱·윤여훈 조. 7개 팀이 출사표를 던진 최고 클래스(A7)에 참가한 신수욱·윤여훈 조는 2위 그룹을 멀리 따돌리고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남은 대회는 후원사가 없어 모두 취소되었다.

9월 12일 강원도 태백 레이싱파크에서는 국내 최장 온로드 내구레이스(4시간)가 열려 화제가 되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경기장을 뜨겁게 달군 클릭 스피드 페스티벌 레이스는 달비팀의 원투 피니시로 막을 내렸다. 2명이 한 팀을 이룬 이 대회에서 달비팀의 한상규·유채영 조가 우승컵을 챙겼다. 뒤를 이어 서효성·이지현(달비), 류시원·장세례(R스타즈) 조가 2, 3위로 골인했다.

속도가 아닌 ‘연비’로 순위를 다투는 색다른 이벤트도 열려 자동차 매니아들의 관심을 모았다. 4월 17∼18일, 강원도 오대산과 강릉 일대에서 열린 제1회 한국 연비 랠리 페스티벌이 화제의 주인공이다.

참가자들은 서울 양재동 오토갤러리에서 출발해 영월의 별마로 천문대를 거쳐 오대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경포대와 대관령목장을 거쳐 오대산으로 돌아오는 총 428.6km 코스를 달렸다. 배기량과 엔진 종류에 따라 6개 그룹으로 나눈 이 대회에는 가족과 연인, 친구, 동료들이 팀을 이뤄 100여 명이 참가했다. 최소 2명이 한 팀이 되어 주최 측에서 준비한 로드북을 보면서 정해진 코스를 달렸다.

참가자들은 연료를 가득 채우고 주유구를 봉인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진짜 랠리처럼 체크 포인트에서는 오피셜의 통과 확인을 받고, 최종 도착지에서 사용한 연료량을 계산해 가장 연비가 뛰어난 순서대로 성적을 매겼다. 이 대회에서 경승용차 부분은 마티즈를 타고 출전한 한재군·이상록 조가 우승했다. 2,000cc 이상 휘발유 승용차 부분 그랜저 XG의 서정원·김수민 조, 1,600∼2,000cc 부문은 쏘나타Ⅲ를 몬 이대규·강명호 조가 우승했다. 한편 디젤 SUV 부분은 김용철·이옥인, 조대희·차미경 조가 가장 좋은 연비를 과시했다.

한편 2004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충남의 아주자동차대와 경북의 가톨릭상지대에 모터스포츠학과가 생기고 카레이서가 강단에 서는 등 자동차경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라대가 카레이서를 자동차관련학과 특기생으로 모집하고, 경기대가 모터스포츠 과목을 개설한 바 있으나 모터스포츠학과가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