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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첫 풀 모노코크 경주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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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병헌(bhkim4330@hanmail.net)
승인 2016-11-25 17:18:20

본문

1962년 로터스25가 보여준 기술적 진보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팀은 치프 엔지니어 토니 래드의 지휘 아래 실험적인 모노코크 섀시 제작에 들어간 BRM은 앞 세미 모노코크, 뒤쪽의 엔진 베이는 튜블러 프레임으로 처리한 최신 P56을 만들었다. V8 엔진의 P56은 운전석 바로 뒤 연료탱크에서 모노코크가 끝나고, 뒤쪽 튜블러 스페이스 프레임에 엔진과 리어 서스펜션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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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단계 발전한 P61/1은 1963년 6월 13일, 그레이엄 힐이 겨우 80km의 테스트를 거친 9일 후 네덜란드 그랑프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예선에서 사용한 뒤 본선에서는 스페이스 프레임의 P578이 뛰었다. 며칠 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그레이엄 힐은 P61/1 몰고 예선 2위, 결승 3위의 성적을 올렸다. 7∼8월에 실버스톤과 스네타턴 서킷에서 테스트한 후 대표적인 고속 서킷인 몬자에서 예선 2위를 차지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결승에서도 8주간 톱을 달렸지만 59주 때 아쉽게도 클러치 고장으로 리타이어 했다.

 

세미 모노코크의 P61/1은 강성이 높고 전면 투영면적이 적어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더구나 뒤쪽 파이프 프레임이 전체적인 강성을 떨어뜨린다는 결과에 따라 토니 래드는 풀 모노코크의 새로운 섀시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P61 마크Ⅱ(1964년)였다. 래드는 이 섀시에 개량형 V8 엔진을 얹고자 했다. 신형 엔진은 흡기가 바깥쪽에 위치했고 배기가 뱅크 사이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헤드 개발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 처음에는 구형 엔진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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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M은 ‘P61 마크Ⅱ’라는 이름이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판단해 P261로 고쳐 부르기로 했다. 새 이름을 사용한 섀시는 1964년 실버스톤에서 첫선을 보였다. 지나치게 슬림한 P261은 그레이엄 힐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콕핏이 좁아 토니 래드는 외관에 걸리는 응력을 계산한 후 해머로 두들겨 공간을 넓혀야 했다.

 

그레이엄 힐은 새 경주차의 높은 조종성능에 감격했다. 1964년 3월 데뷔전에서 힐은 예선 2위에 이어 결승에서도 잘 달렸지만 빗길에서 수막현상 때문에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에이스 드라이버였던 힐은 5대가 제작된 P261 중 섀시 넘버 2614와 2615를 사용했고 시즌 막바지 미국과 멕시코에서는 2616에 탔다. 한편 세컨드 드라이버 리치 긴더는 2613번을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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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그레이엄 힐은 우승 2회(몬테카를로와 미국), 2위 3회 그리고 4위와 5위를 각각 한 차례씩 차지하며 최종전 멕시코 그랑프리를 앞두고 챔피언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반디니의 페라리 때문에 스핀에 배기관이 파손됨으로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총 득점은 힐이 높았지만 페라리의 존 서티스가 유효득점에서 힐을 눌러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65년에는 긴더 대신 재키 스튜어트가 세컨드 드라이버로 기용되었다. 이 둘은 3번의 우승과 2위 5번의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그레이엄 힐은 모나코와 왓킨스글렌(미국)에서 3연승(P261과는 2연승)을 기록했다.

 

한편 BRM의 오너였던 알프레드 오웬 경은 P261을 개량해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열리는 타스만 시리즈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66년부터 3.0리터의 새로운 엔진 규정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여기에 맞춘 H형 16기통 엔진 개발이 늦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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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M은 지금까지 사용해 온 V8 1.5리터 엔진의 배기량을 늘려 F1과 타스만 시리즈에 참가하기로 했다. 타스만용 머신은 V8의 배기량을 2.0리터로 키우고 2614와 2616 등 2대의 P261 섀시에 얹어 그레이엄 힐과 재키 스튜어트, 리차드 에트우드가 몰았다. J. 스튜어트가 66년 타스만 챔피언을 차지했다.

 

스튜어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타스만 버전의 V8 엔진을 얹고 모나코 그랑프리마저 제압했다. 그러나 거센 빗줄기 속에서 열린 벨기에 스파프랑코샹에서는 3대 모두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이때의 부상 때문에 스튜어트는 프랑스 그랑프리에 결장해야 했다.

 

타스만 버전의 P261을 몬 그레이엄 힐은 1966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반기 6전에 출전해 2위와 3위 한 번, 4위 두 번을 거두었다. 스튜어트는 한 차례 우승했지만 리타이어 2번에 한 번은 결장했다. 3.0리터 규정의 새 엔진을 얹은 경주차 P38은 이태리, 미국, 멕시코에 출전했지만 결과는 모두 리타이어였다.

 

P261은 67년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5리터 블록의 배기량 한계인 2,070cc까지 확대한 V8 엔진을 얹고 스튜어트와 애트우트, 피어스 카레지, 크리스 어윈과 함께 타스만 챔피언십에서 다시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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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는 뉴질랜드와 레디 위그럼 트로피, 호주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짐 클라크의 로터스 타입33에 눌려 타스만 챔피언 타이틀을 지켜낼 수 없었다. 타스만 시리즈 도전을 담당했던 프라이비트팀 파넬은 이후 BRM의 실질적인 세미 워크스팀으로 발돋움했다.

 

1967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J. 스튜어트는 H16 엔진 대신 예비로 준비했던 V8 엔진의 P261을 타고 본선 레이스에 참가했다. 데뷔 3년 반이나 지난 구형이었지만 2대의 브라밤 BT24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건재한 실력을 자랑했다. 이것이 P261이 공식 참가한 최후의 레이스였다. 하지만 P261은 여기서 퇴역하지 않고 1969년까지 여러 프라이비트팀을 통해 다양한 레이스에서 좋은 성적을 남겼다. 활동하는 동안 우승은 6번에 불과했지만 2위와 3위는 16번이나 차지했고 타스만 시리즈에서는 17번의 우승과 24회의 2, 3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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