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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아찔한 사고 뒤 단단해진 드라이버들

페이지 정보

글 : 김병헌(bhkim4330@hanmail.net)
승인 2017-09-29 13:32:46

본문

# 1976년 F1 시즌 10라운드인 독일 그랑프리. N. 라우다는 레이스 도중 사고로 머리와 양 손목에 화상을 입고 소화기 가스를 들이마셔 전신 약 70%의 혈액을 교체하며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맸다. 이후 고비를 넘긴 라우다는 1개월 12일만에 서킷에 복귀하며, 팬들에게 ‘불사조’라고 불리게 됐다.

 

# 1995년 시즌 최종전인 호주 그랑프리. 예선에서 M. 하키넨은 타이어 펑크로 머신이 방호벽에 부딪히는 대형사고를 당하며 두 개 골이 함몰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하키넨은 치료와 재활훈련을 받은 뒤 이듬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퇴원했다. 3개월 28일 만이다.

 

# 1999년 제8전 영국 그랑프리. M. 슈마허는 충돌사고로 다리 부상을 입고 여섯 경기를 쉰 뒤 세팡 서킷에서 열린 15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복귀해 폴포지션을 획득하는 건재를 과시했다. 회복기간은 3개월 3일이다.

 

이들 공통점은 레이스 도중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재기에 성공한 드라이버들의 이야기다. 가장 용감한 귀환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드라이버는 1976년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발생한 사고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라우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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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다는 1976년 레이스에서 전년도에 이어 또 다시 선두 그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이날 날씨는 매우 습하고 시야도 좋지 못했다. 노면이 젖어 있어 2단 기어로 출발한 라우다는 타이어가 헛돌아 뒤로 밀려났다. 첫 랩 마지막에 슬릭 타이어로 바꾸기 위해 피트로 들어갔고, 이는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랩 중반에 위치한 좌회전 코너에서 라우다의 페라리는 오른쪽으로 갑자기 방향이 꺾이면서 스핀하며 방호벽으로 돌진했다. 연료탱크가 파열되어 화염에 휩싸인 페라리는 방호벽에서 튕겨 나와 트랙을 가로막았고, 미처 피하지 못한 브레트 룽거는 측면에서 직각으로 충돌했다.

 

방호벽에 부딪쳐 라우다의 헬멧이 일그러졌고 룽거와 아투로 메르자리오, 가이 에드워드, 하랄트 에르틀은 그를 구출하려고 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라우다는 메르자리오가 안전벨트를 풀고 그를 끌어내기 전까지 45초 정도 섭씨 800도의 불길에 휩싸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요일 저녁에 라우다는 민하임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심각한 상태에서 벗어난 라우다는 사고가 일어난 지 겨우 33일 만에 화상과 다친 오른쪽 귀의 통증을 최소화하도록 맞춤 제작한 헬멧을 쓰고 피오라노에서 페라리 312T2에 앉았다. 40랩을 달린 그는 며칠 후에 있을 몬자 레이스도 문제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몬자에서 그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금요일 연습주행 때는 비가 내렸다.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운전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러나 콕핏에 앉았을 때 두려움이 그를 짓눌렸다. 라우다는 너무 일찍, 너무 빠르게 달리려 했던 탓에 스스로를 겁에 질리게 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토요일에 약간 느리게 달렸고, 일요일 결승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클레이 레가조니나 카를로스 로이트만 등 페라리 동료들보다 빠른 랩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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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라우다는 이듬해 1977년과 1984년에 두 번 더 월드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그는 불길에 휩싸인 기억을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말했다.

 

끔찍한 사고에 대한 기억은 1999년 실버스톤에서 열린 영국 그랑프리 첫 랩에 페라리가 충돌하면서 다리가 부러진 슈마허도 갖고 있다. 초기의 충격을 제외하면 그의 사고타격은 크지 않았다. 실제로 슈마허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같은 행동은 TV에 자신이 괜찮다고 사실을 알리는 표시다. 의료진이 도착했을 때 그는 아내 코리나에게 자신이 괜찮다고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서스펜션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다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 그는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아 너무나 두려워했다. 슈마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후 1∼2초 정도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그 당시에는 육체에서 분리된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슈마허는 회복 기간 동안 휴식을 취함으로써 훨씬 더 강해졌다. 그가 말레이시아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생기를 되찾아 강하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휴가에서 돌아온 듯한 모습이었다. 슈마허는 그 뒤로 승승장구 했으며 7차례 F1 챔피언을 거머쥐었지만 2013년에 스키를 타다 사고로 요양과 치료를 하고 있다.

 

하키넨은 애들레이드에서 발생한 1995년의 사고에서 거의 죽다 살아남았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머리에 부상을 입어서 생기는 문제는 기억상실로 인한 자신감 상실이라고 말한다. 하키넨은 1998년부터 1999년까지 타이틀을 두고 라이벌 슈마허와 열띤 경쟁을 벌였고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키넨은 2000년 시즌에도 슈마허와 맞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한 정신적 소모가 상당해 원상태로 복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2001년말 하키넨은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33세에 F1 서킷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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