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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F1 무대서 비운의 넘버 투는 누구?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2-07-30 10:52:12

본문

F1 무대서 비운의 넘버 투는 누구?

피터 콜린스
콜린스는 1956년 시즌 최종전인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할 기회를 얻었다. 란치아-페라리의 리더 후앙 마누엘 판지오가 스티어링 암 파손으로 리타이어한 것. 그러나 15랩을 남겨두고 콜린스는 피트로 들어가 경주차에서 뛰어내렸다. 뛰어난 스포츠맨십을 발휘해 네 번째 우승을 거머쥘 수 있도록 자신의 경주차를 판지오에게 넘겨주었다.

프란시스 세버트
재키 스튜어트의 수제자인 세버트는 우승할 수도 있었지만, 팀 동료를 더 존중했다. 1973년 독일 그랑프리에서 세버트는 티렐팀 리더 스튜어트의 뒤를 충실히 따르며 뉘르부르크링(1주 22.835km) 서킷의 모든 에이펙스와 브레이킹 포인트를 습득했다. 세버트는 언젠가 자신의 힘으로 넘버 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해 최종전을 치르는 도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면서 끝내 기회를 얻지 못했다.

로니 피터슨
스웨덴 출신 피터슨은 1978년 로터스에서 마리오 안드레티를 보좌하는 넘버 투 드라이버로 활동했고, 둘은 친했다. 피터슨은 시즌 말에 자신이 팀에서 퇴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일부 드라이버들은 타이틀을 놓고 안드레티와 싸워보라고 부추겼다. 네덜란드 그랑프리에서 안드레티는 브레이크 고장을 안고 선두로 달렸다. 그러나 피터슨은 그 뒤를 지켰다. “계약서에 서명하며 분명히 약속했다. 지금 그 약속을 어긴다면 누가 다시 나를 믿을 수 있겠나?” 그는 끝까지 명예로운 드라이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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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빌르너브
빌르너브는 1979년 타이틀을 자력으로 거머쥘 수 있었지만, 우승 대신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이탈리아에서 팀 동료인 쉑터가 선두를 달렸고, 페라리는 오랜 전통에 따라 질에게 위치를 고수하라고 지시했다. 만약 추월했다면 질은 그해 왕좌에 오를 기회를 살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추월하지 않았다. 질은 “나는 게임의 법칙을 알고 있었고, 이미 약속을 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후 내내 그의 엔진을 노려보면서 제발 터져 버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카를로스 로이트만
1980년에 앨런 존스를 우승시키면서, 로이트만은 넘버 투 역할을 받아들였다. 이듬해에도 역시 카를로스의 계약서에는 ‘존슨 우선권’ 조항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우승하는 쪽을 택했다. 엄청난 비가 쏟아지는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그는 존스를 앞질렀고, 윌리엄즈 피트에서 위치를 바꾸라고 지시했지만 카를로스는 이를 무시했다. 팀과 존스는 격분했고, 로이트만은 81년에 우승을 차지하지도 못했다.

게하르트 베르거
베르거는 세 시즌 동안 아일톤 세나의 세컨드 드라이버였다. 1991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세나는 결승 코너에서 베르거에게 우승을 선물했다. 팀 보스 론 데니스는 “멋진 행동이었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게하르트가 지원해준 데 대한 보상으로 세나가 한 행동은 은혜라도 베푸는 듯한 모습이었다. 보다 고상한 방법으로 고마움을 표현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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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파트레제
만셀의 팀동료로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를 이기기라도 하는 날엔 상황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1992년 만셀은 시즌 초반 5경기를 휩쓸면서 챔피언십 선두를 유지했다. 그러나 팀 동료인 파트레제가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자신을 앞지르자 심기가 불편해졌다. 피트로부터 지시를 받고 스타트라인 직선주로에서 만셀에게 선두를 넘겨준 파트레제 역시 불쾌하기는 마찬가지. 만셀이 타이틀을 차지한 후에야 파트레제에게 부스러기라도 주울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데이비드 쿨사드
1997년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윌리엄즈와 맥라렌은 임시적인 팀 협약을 맺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윌리엄즈 빌르너브는 마지막 랩에서 두 맥라렌 드라이버에게 선두를 내주었다. 쿨사드는 핀란드에서 그의 첫 그랑프리 우승을 하키넨에게 내어주며, 이미 준우승을 양도한 상태였다. 쿨사드는 레이스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1998년 호주 그랑프리에서도 하키넨이 추월하도록 했다.

루벤스 바리첼로
2001년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슈마허는 바리첼로 덕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불과 여섯 경기 만에 팀 오더가 전해졌다는 사실에 격분하는 팬들도 있었다. 1년 뒤에 우승을 두고 자리바꿈이 일어나자 이 분노는 격해졌다. 슈마허가 명백하게 지고 있었지만, 바리첼로는 그에게 승리를 양보하도록 강요당했다. 슈마허가 포디엄 정상으로 바리첼로를 떠밀면서 시상식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 후에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슈마허가 결승점 동시통과를 시도하면서 수치심은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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