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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엔진의 역사 알면 경주차 튜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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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2-10-02 02:16:15

본문

엔진의 역사 알면 경주차 튜닝이 보인다

경주차의 엔진 튜닝 기본은 엔진의 실체를 아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면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4사이클 휘발유 엔진 기술의 뿌리를 찾아가 보자. 1883년 독일인 고틀리프 다임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소형 휘발유 엔진 특허를 따냈다. 그 뒤 휘발유 엔진은 어떤 모양으로 발달하고 널리 퍼져나갔을까. 상품으로서의 엔진은 용도별로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쓰임새에 따라 발달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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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 자가용차 엔진은 2차대전 이래 온갖 고난의 길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 여정이 결코 단순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일본은 패전한 뒤 오랫동안 맥아더 사령부의 엄격한 규제를 받아 일본 자동차 메이커가 자체 개발한 엔진마저 자유로이 생산할 수 없었다. 일본 메이커는 상당한 기간 유럽 모델을 만들다가 점령군 사령부의 해제조치가 나오자 자체 설계한 엔진과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동차 엔진은 용도별로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공통점으로는 높은 열효율, 대마력, 소형, 경량, 신뢰성, 내구성, 유지비를 포함한 경제성을 꼽을 수 있다. 이 항목 가운데 어느 것을 가장 앞세우느냐에 따라 엔진의 특성이 달라진다. 여기서는 위에 꼽은 항목 가운데 경제성을 빼고 엔진에 공통되는 기본기술을 설명하고자 한다. 휘발유 엔진을 용도별 생산대수, 합계마력, 판매액에서 따져볼 때 자가용 승용차 엔진이 압도적이다. 승용차 엔진을 대상으로 연대순으로 발달과정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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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기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72년에 이르고 독일의 슈토르체가 발명한 열기 카스터빈이 나타난다. 그러나 가스터빈은 이론이나 실제 활용면에서 어려운 점이 많아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실용화된 제품은 2차대전 말에 겨우 나오게 된다.

그와는 달리 왕복형 내연기관은 적동원리가 단순명쾌하다. 이미 실용 중이던 증기기관의 구조를 응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뒤에 나왔지만 먼저 발달했다. 왕복형 내연기관의 원리는 1862년 프랑스인 폴 드 로샤가 고안했다. 그에 따르면 내연기관은 충분한 흡입, 충분한 압축, 그리고 점화한 뒤 압력의 급상승과 충분한 팽창이 필수조건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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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리가 기계에 적용된 시기가 1876년. 독일인 오토와 랑게가 발명한 4행정 가스 엔진이다. 오토 사이클 엔진이 탄생한 것이다. 1883년이 되면 독일인 다임러가 4행정의 휘발유 엔진을 만들어낸다. 바로 휘발유 엔진의 시초다. 엔진에 쓸 기구와 구조는 왕복형 증기기관에 이미 쓰고 있던 방식을 응용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원형 실리더 피스턴은 1705년 발명된 뉴컨맨 증기기관에서 실용화되었다. 크랭크샤프트와 커넥팅 로드는 1780년 프랑스인 피카드와 로즈블로가 발명해 특허를 얻었다. 제임스 와트는 이 특허에 막혀 자신이 발명한 증기기관의 피스턴 왕복운동을 기계축의 회전운동으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 증기기관에 럭과 톱니바퀴를 이용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1794년 특허의 시효가 끝나 자유로이 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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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핏 밸브에 의한 작동 유체 교환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에 쓰였다. 남은 것은 내연기관 특유의 장치다. 연료와 공기를 섞어 혼합기를 만드는 기화기와 실린더의 압축 혼합기에 불을 댕기는 점화장치. 첫 기화기는 휘발유를 빨아올려 공기의 흐름 속에 노출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그러나 공기의 속도와 온도의 변화에 따라 혼합비에 변화가 많은 것이 약점이었다.

다음으로 벤투리를 사용한 분무형이 나왔다. 이것도 공기속도의 변화에 따라 혼합비에 변화가 일어났다. 솔렉스(프랑스), 스트롬버그(영국), 카터(미국) 등 기화기 메이커가 발명한 고성능 기화기가 나와 벤투리형까지의 약점을 보완하게 되었다.

최초의 점화장치는 램프 불꽃의 한쪽 끝을 작은 용기에 담아 연소실에 들락거리게 하는 방법이었다. 다임러 엔진도 이 방법을 썼다. 지금 쓰이고 있는 전기점화식은 1895년 프랑스의 드디옹 부통사가 발명한 것. 연소실 안에 설치한 가동접점에 단속적으로 불꽃을 일으키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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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1900년 독일인 R. 보쉬가 저압 마그넷을 발명했다. 영구자석 사이에 쇳조각을 움직여 코일에 일어나는 전력을 이용했다. 불꽃은 연소실 안에 있는 접점이 여닫히면서 생겨났다. 1902년 보쉬는 고압 마그넷을 잇 따라 발명했다. 실린더의 공기를 밀폐한 채 피스턴을 움직이는 것을 왕복형 내연기관 실용화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장력을 가진 피스턴링은 1885년 영국인 람스보텀이 발명했다. 이것으로 왕복형 내연기관에 필요한 요소가 모두 갖추어졌다.

한편 19세기에 발명되고 발전된 엔진은 기술혁명의 20세기로 넘어왔다. 그러나 20세기에도 휘발유 엔진에는 큰 변혁이 일어나지 않았다. 엔진의 세부를 좀 더 개량해 성능을 올리며 지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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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 엔진을 처음으로 원동기로 얹고 달린 것은 2륜차, 3륜차와 하천용 선박이었다. 연료의 휘발유는 운반이 쉬웠다. 거기에다 연료인 휘발유는 운반이 쉬웠다. 거기에다 당시의 증기기관에 비해 엔진이 작고 가벼웠을 뿐 아니라 물과는 달리 자주 갈아 넣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증기기관에 비해 시동까지의 준비와 정지 후의 일거리가 없다시피 했다. 내연기관이 널리 퍼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뒤로는 용도에 맞게 개량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대형선박에 쓰일 엔진이 개발되면서 중유를 쓰는 디젤 엔진이 나왔다. 휘발유는 화재위험이 크고 값이 비싸 소형선박의 선외 엔진으로만 쓰였다. 반면 휘발유 엔진은 자동차의 원동기로 발전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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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자동차 엔진 발달의 역사를 살펴보자. 1883년 독일인 다임러가 4행정 휘발유 엔진을 발명한 것은 앞서 밝힌 대로다. 뒤이어 1885년 최초의 교통기관용으로 2륜차 특허를 따냈다. 같은 해에 하천용 배에도 휘발유 엔진을 얹어 썼다. 그럴 즈음 다임러와는 전혀 관계없이 내연기관을 개발하던 독일인이 칼를 벤츠. 그는 다임러가 특허를 따낸 지 5개월만인 1886년 1월 휘발유 엔진을 얹은 3륜차 특허를 얻었다. 당시 독일을 중심으로 한 내연기관 연구개발의 열기는 실로 놀라웠다.

이로써 다임러와 벤츠는 자동차 발명의 빛나는 영광을 안았다. 두 사람이 만든 회사는 뒷날 하나로 합쳐 다임러-벤츠AG가 되었고 상품명은 다임러-벤츠-메르세데스였다. 1926년 이래 승용차는 메르세데스 벤츠로 이름이 통일되었다. 1886년 프랑스인 E. 로쉐가 벤츠 엔진 기술을 도입해 파리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연유도 곁들여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벤츠 엔진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로써 독일, 이태리, 영국, 프랑스에서 실용차가 나오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889년 파나르사가 다임러 기술을 도입해 자동차 엔진을 만들기 시작해 대호평을 받았다. 1895년 프랑스의 드 디옹 부통사는 독자적으로 알루미늄제 크랭크 케이스, 팬 달린 공랭식 실린더 등 참신한 설계로 자동차 엔진을 만들어 엔진 발달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드디옹 부통사의 경기용 3륜 엔진은 14마력. 당시로서는 놀라운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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