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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돌아본 한국모터스포츠 25년사 (4)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1-04-26 17:24:32

본문

1990년 들어서 첫 경기는 5월 12∼13일 ‘일간스포츠’ 후원 ‘한국타이어’ 협찬을 받아 인천 영종도에서 개최되었다. 대회명은 챌린지컵 자동차경주대회 제1전. 이 대회는 완전히 정착한 원메이크와 2,000cc 이하 그룹A 두 부문으로 나뉘었는데 원메이크 55대, 그룹A 39대가 참가해 성황을 이루며 본격적인 레이스 붐이 조성되었다. 이때 현대전에 신차종 스쿠프가 출전해 우승하며 스쿠프시대를 예고했다. 이해는 몽산포 300km 내구레이스가 한 차례 더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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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은 모두 세 차례 경기가 있었고, 반면 지금까지의 한국 모터스포츠 사상 가장 큰 안전사고가 난 해로 기록되었다. 1991년 5월 12일 경기도 안산시 초지동 666번지의 안산종합운동장부지 특설트랙에서 열린 91 코리아챌린지모터레이스는 한국타이어, 기아자동차, 중외제약, 중외산업, 상아앤드참이 협찬하고 교통방송과 일간스포츠가 후원을 했다.

대회규모도 역대 어느 때보다 컸고, 안산시의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로 성대한 행사가 기획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경기를 알리는 안내책자와 포스터도 제작되었다. 레이스가 시작된 지 4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동호인들의 축제 성격에 머물러 홍보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처음으로 안내책자에 지동차경주의 필요성, 레이스가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영향, 자동차문화의 선도,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3대 스포츠라는 내용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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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은 경기 15일 전부터 안산에 머물면서 조성했다. 코스는 지금까지 치러온 자갈밭이나 모래사장과 달리 황토 흙이라 조금만 건조하면 많은 먼지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레이스에서 시계불량은 곧바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최 측은 살수차를 준비해 물을 뿌려댔지만 우리나라의 건조한 5월 기후에는 역부족이었다.
91년 코리아 챌린지컵 안산 레이스가 열릴 때까지 서울지역에는 톨바, 볼카노, R&B, 월드카 등 10여 개의 레이싱팀과 부산지역의 용마, 에이스맨 선빔, 도깨비, 대구의 허리케인, 호크, 파라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90년까지 참가자가 50명을 넘지 못했으나 이 레이스에서는 90여 명이 기량을 겨루게 되었다. 부산과 대구지역 레이싱팀의 참가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한 달 앞서 4월 7일 부산에서 열린 제1회 슬라럼대회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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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슬라럼대회는 한국자동차협회 스포츠위원회가 주관하고 부산지부가 주최해 서울, 부산, 대구를 비롯한 경남권에서 120명 가량이 참가해 모터스포츠의 지방세를 확산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대회의 남자부 우승은 홍성열에게 돌아갔고, 신준용, 권정락이 2, 3위를 차지했다. 여자부는 원형신, 전재경, 윤명화가 시상대에 올랐다. 인기상은 김주현의 몫이었다.

이런 배경을 갖고 91 코리아 챌린지 안산 레이스에는 전국에서 90여 명이라는 많은 드라이버가 참가하게 되었다. 주최 측은 마지막 코너의 폭을 넓히고, 살수차를 준비해 먼지를 줄였다. 또한 안전을 위해 관중석 앞에 1m20cm의 방호벽을 2m 두께로 쌓고, 관중 통제라인을 5m 뒤로 후퇴시켰다. 하지만 결승 9랩에서 당시 마루아치팀 안병환의 차가 관중석으로 뛰어들어 안전요원과 관중 등 1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크게 다친 관중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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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중단되고 주최 측은 경기의 무기연기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사고는 지나친 승부욕과 전문요원의 부재, 신호규정과 관제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무지함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일어난 사고로 한창 활성화되려던 모터스포츠 붐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왔고 한편으로는 전용경기장과 전문요원의 절대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중단되었던 경기는 10월 5∼6일 영종도에서 가까스로 마무리를 한다.

같은 해 10월 19∼20일 B&W클럽이 몽산포에서 이해의 마지막 경기인 몽산포 300km 내구레이스를 치른다. 이 경기에서 예선 1위인 김한봉이 점심시간에는 트랙을 주행할 수 없다는 특별규정을 어겨 페널티로 최후미에서 결승출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해서 200만 원의 상금과 함께 푸짐한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경기는 내구레이스인 만큼 비포장 4km 트랙을 50주하게 되어 있는데 24대 중 8대가 겨우 완주를 한다.
1992년, 한국모터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변혁이 일어난 해였다. 전해의 안전사고와 계속되는 판정시비, 전문 진행요원의 부재 등으로 허덕이고 있는 모터스포츠계에서 마치 구세주와 같은 희소식이 전해진다. 삼성그룹(중앙개발)이 자동차전용경기장을 만든다고 나선 것이다. 모터스포츠인들은 더 이상 이곳저곳 나대지를 찾아 떠돌지 않고 원하면 언제든지 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해 초 서킷건설이 현실화되고 여름인 7월,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의 잔디배양장이 부지로 확정되어 잔디를 드러내고, 측량을 하고, 중장비가 들어와 토목공사가 일사천리로 숨가쁘게 진행되어 갔다. 이때 실무팀장으로는 그룹비서실에서 정원영 부장이 특파되어 진두지휘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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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정 부장은 그룹 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교통사고예방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일본 스즈카 서킷의 안전교육에 참가했다가 교육을 담당한 인스트럭터(Instructer) 대부분이 전․현직 레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귀국 후 실무를 위한 인스트럭터를 찾다가 비포장경기의 선수들과 알게 되고, 그것은 삼성이 모터스포츠와 인연을 맺고 서킷건설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91년 11월 국내 최초의 안전운전교육에 인스트럭터로 초빙된 레이서는 김선우, 김건식, 이창복, 이명목, 김한봉, 노재경, 안종호 등이다. 경기장이 본래는 안전운전교육장으로 구상되었으나 교육을 위해 미팅을 갖는 자리에서 인스트럭터들은 국내에 서킷 건설이 절실하다는 것을 어필했고 그것은 회사에 무리 없이 어필되었다고 한다.
서킷 조성사업은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9월에 비포장상태로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고, 서킷 테스트 겸 새로운 모터스포츠 붐 조성을 위한 세 차례의 경기가 치러진다. 이때 치러진 세 차례의 경기는 9월, 10월, 11월이었는데 200여 명에 가까운 오피셜이 동원되어 국내 모터스포츠계에 오피셜의 체계적인 활용방법을 보여주었고 안전을 위한 깃발규정의 적극적인 교육 등으로 서킷 레이스의 토대를 구축하는 대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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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를 주최한 F1기획은 대회를 위해 국내 초유로 생방송 쇼를(MBC-TV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경기장에 유치하고, 일본에서 프로 레이싱카 F3000, 그룹 C카, 닛산 펄사의 랠리카, F3를 들여다 전시를 하는 계획도 세웠으나 일본 측이 F3000과 그룹 C카만 보내 차질을 빚기도 했다.

특히 국내경기규정이 없던 터라 국제자동차연맹(FIA)의 규정과 일본자동차연맹(JAF)의 규정을 번역해 기본 골격을 삼고 차량규정은 운영위원과 팀장, 레이서들이 모여 협의로 만들어진다. 이때 규정은 하나로 똑같으며 그래서 일본규정을 그대로 써도 된다는 그동안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나라든 FIA 규정의 골격으로 내셔널규정이 있고, 서킷마다, 아니면 실정에 맞게 조정된 규정으로 변형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코너포스트의 역할과 오피셜의 중요성이 다시 인식되게 되어 한층 성숙되고 체계적인 레이스 풍토가 조성된다. 그러나 세 번의 경기를 마친 주최 측은 엄청난 빚을 안고 도산한다. 그 외에도 울산, 영종도, 부산 수영만에서 있은 한 차례씩을 합해 모두 여섯 번의 경기가 치러지고 이 해가 마감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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