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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자연과 인간, 자동차의 결전장 ‘다카르 랠리’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2-12-24 11:12:22

본문

세계 모터스포츠의 새해를 여는 다카르 랠리가 오는 1월 5일 페루에서 시작된다. 다카르 랠리는 1980년대까지 관례적으로 1월 1일에 시작되었으나 1990년 들어 그 전통이 깨졌다. 2013년 대회의 참가자들은 2012년 대회 결승점이었던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출발해 아르헨티나를 횡단, 1월 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결승점을 통과하게 될 예정이다. 특히 첫 날부터 사막을 무대로 레이스가 진행되며 보다 스릴 있는 코스를 위해 페루의 아타카마 사구와 안데스산맥의 일부가 코스에 포함되었다.

그럼 다카르 랠리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다카르 랠리의 창시자는 프랑스 출신의 티에리 사비. 1977년 모터사이클로 사하라사막을 건너다 말리 근처에서 길을 잃었다. 구조비행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그는 그때의 체험을 되살려 사막 랠리를 창안해냈고 참가자들은 첫 대회는 1978년 12월 26일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알제리, 니제르, 말리를 거쳐 이듬해 1월 14일 세네갈 다카르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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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 대회부터 드라이버와 원주민의 목숨을 앗아가 비인간적인 레이스로 비난을 받았다. 이후 매년 대회 존폐 여부를 놓고 공방전이 벌어졌다. 그러던 중 1986년 대회가 열리기 전 사비느가 탄 헬리콥터가 코스를 정찰하다 프랑스 TV 기자 4명과 함께 모래언덕에 추락해 목숨을 잃은 사고가 일어났다. 주최자의 죽음으로 랠리의 앞날이 불투명해진 듯했지만 사비느의 아버지 길베르가 TSO(Thieery Sabine Organization)를 설립해 아들의 뜻을 이어받았다. 대회의 실제 운영은 사비느의 친구이자 다카르 랠리에서 3승을 거둔 르네 미주가 맡았다.

2년 뒤 다카르 랠리는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겪었다. 대회기간 동안 7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중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주최 측은 규정을 손질했다. 대회 일정은 22일에서 18일로, 코스길이는 1만3,000km에서 1만831km로 짧아졌다. 또한 2,300km를 2, 3일만에 달려야 하는 구간이 있었으나 하루 800km 이상 넘지 않도록 변경했다. 마을을 지날 때도 속도측정기를 설치해 시속 40km를 넘으면 벌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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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랠리는 경유지, 도착지가 조금씩 바뀌면서 공식 명칭도 달라졌지만 사하라사막은 대회마다 포함되어 ‘지옥의 랠리'라는 악명을 얻게 되었다. 특히 제14회 때는 옛 향수를 살려 북아프리카 사막을 코스에 넣고 사막, 밀림, 초원을 지나며 대회본부 측이 파놓은 함정까지 통과하게 했다. 가혹한 한계 상황으로의 끝없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내전으로 아프리카 관통이 불가능해지자 이듬해엔 이전으로 돌아갔고, 코스는 역대 랠리 중 가장 짧으면서 험하게 재조정되었다. 제16회 때는 경주차들이 파리에서 일제히 출발해 반환점인 세네갈의 다카르에 도착했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파리-다카르-파리 랠리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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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대회는 그라나다를 출발지로 하고 다카르까지 달리는 레이스로 그라나다-다카르 랠리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2000년엔 다카르에서 출발해 이집트 카이로에서 골인하는 변화를 시도했지만 이슬람 무장조직이 니제르를 통과하는 랠리대열을 습격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려 주최 측은 치안이 불안한 니제르지역의 4개 레그를 취소했다. 이처럼 다카르 랠리는 아프리카지역 국가들의 불안한 정치상황과 치안상태로 대회 도중 일부 구간이 변경되거나 취소되었다.

한데 다카르는 테러 위협 앞에 무릎을 꿇어 2008년 대회가 무산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다카르 랠리는 사상 처음으로 남미지역에서 막을 올렸으며 지금까지 개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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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카르 랠리 참가 차종은 카, 바이크, 트럭 등이다. 이중 해마다 승부의 초점이 되어 관심을 끄는 부분은 세계 자동차회사들이 명예를 걸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 카(Car)다. 랠리코스는 연결구간(Liaison Stage)과 경쟁구간(Special Stage)으로 나뉜다. 연결구간은 말 그대로 경쟁구간 전후를 이어주고, 이 구간에선 경주차들이 속도경쟁을 하지 않는다. 연결구간은 낮은 평점을 기준으로 규정된 한계시간 내에 이동을 마쳐야 한다. 예를 들어 2시간의 시간한계가 있는 거리를 오전 8시 58분에 출발했다면 오전 10시 58분에 도착해야 한다.

경쟁구간은 레이스구간으로, 초까지 시간계산이 된다. 허가된 최대시간을 넘으면 안 되고, 결정된 최소시간을 기준으로 경과시간이 체크된다. 또 시간실격이 있어 늦거나 반칙을 해 시간실격에 걸리면 공식 순위에서 제외된다. 경쟁구간에 골인하면 참가자들은 연결구간을 통해 야영지까지 이동한다. 야영지엔 랠리 본부, 메디컬이나 미디어센터 외에 식당이 마련되어 있다. 경주차의 정비는 아침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물론 드라이버와 등록된 미캐닉, 팀 감독만 정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날 출발은 전날의 경쟁구간(SS) 성적 순위에 따라 모터사이클, 자동차, 트럭 순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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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르 랠리는 그동안 사막의 영웅 A. 바타넨, 시노즈카 등 수많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바타넨은 푸조 소속으로 1987년 우승컵을 안은데 이어 1989∼91년 3연패를 거두었다. 바타넨이 푸조에서 시트로앵으로 옮기고 시노즈카의 미쓰비시팀이 급부상하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의 다카르 랠리는 시트로앵과 미쓰비시팀 경쟁으로 압축되었다. 하지만 시트로앵이 랠리에 빠진 이후부터는 시노즈카를 앞세운 미쓰비시가 독주했다. J. 클라인슈미트는 2001년에 다카르 랠리 사상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해 ‘다카르의 여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이후 2003년부터 출사표를 던진 폭스바겐이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경주차 중에서는 1982년 출시된 미쓰비시 파제로가 다카르 랠리에서 7회 연속 우승 등 모두 12회 정상에 등극, 최고의 랠리카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다카르와 인연이 있다. 1987년 당시 재불 시인이던 최종림 씨가 도요타 랜드그루저를 몰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제9회 대회에 참가, 국내에 다카르 랠리의 존재를 알렸다. 이후 여러 명이 랠리에 출전했지만 번번이 경기 도중 주저앉았고, 쌍용팀이 제16회 대회에서 완주와 함께 종합성적 8위를 차지, 다시 한번 큰 관심을 모았다. 2008년 대회에선 금호타이어가 영국의 보울러팀의 레인지로버를 기반으로 제작한 네메시스 경주차에 타이어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다카르 랠리에 참가했다. 기아 역시 지난 2000년과 2001년 스포티지로 참가한 데 이어 2008년에 쏘렌토를 앞세워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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