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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돌아본 한국모터스포츠 25년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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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1-05-06 17:37:50

본문

1993년에는 자연농원 모터파크가 포장공사에 들어가 10월에 마무리를 하여 2월에 60분 내구레이스 외에는 더 치르지 못한다. 그 외에 4, 5, 6월에 충남 몽산포와 인천 영종도에서 경기가 있었다. 11월엔 울산대학교 캠퍼스에서 자동차 동아리 카로마니의 주최로 짐카나대회가 열렸다. 깨끗한 매너와 바른 질서가 돋보인 이 대회에는 31명의 학생 선수가 참가해 빗속에서 실력을 겨루었고 용마팀의 시범경기도 펼쳐졌다. 경주전문대 성제현 선수가 가장 빠른 기록으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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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2월 12일에는 한국자동차경기연맹과 모터파크 공동주최로 용인 자연농원 모터파크에서 연습경기가 열렸다. 경기는 3개조로 나뉘어 A, B는 원메이크 선수가 뛰었고 C조는 그룹A와 N 선수들이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 A조 장정학(볼카노), B조 고승욱(허리케인), C조 윤철수(탑 스피드) 선수가 각각 조 1위를 했다. 이날 경기의 목적은 드라이버와 진행요원들이 경험을 쌓기 위한 것이었다.

경기를 마친 뒤 모터스포츠연맹의 간부는 이날 경기를 통해 나타난 진행요원과 안전요원의 상황 대처능력부족, 컨트롤 타워와 포스트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 레이스 용어의 혼란 등을 지적했다. 또 모터파크에서 보완할 점으로 배수로, 관객을 위한 전광판 설치, 통신장비, 기록장비 등의 미비점도 얘기했다. 선수들은 자기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올바른 스포츠맨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경기에서는 금호타이어에서 개발한 레이싱용 슬릭 타이어가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185/60R 14, 205/60R 15 두 사이즈로 그룹A 선수들에게 무료로 주었다. 수입 슬릭 타이어는 보통 네 짝에 100여만 원 한다. 금호에서 레이싱 타이어의 개발을 마치면 레이서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날 C조에서 1위를 한 윤철수 선수도 금호 슬릭 타이어를 끼고 경기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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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94년엔 모터파크 서킷이 공식포장경기장의 면모를 갖추고 시즌을 맞는다. 그러나 공식온로드레이스를 치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인허가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한 차례의 페스티벌과 합동훈련형태로만 7차례 치렀다.

그해 첫 연습경기는 2월 20일 모터파크 서킷에서 펼쳐졌다. 경기는 오전 9시 45분 원메이크전 프라이드, 스쿠프, 르망 순서로 시작되었다. 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오전 8시까지 참가 접수를 한 뒤 경기 스케줄에 대한 브리핑, 경주차 검사, 메디컬 체크 등을 마쳤다.

모터파크는 경기진행에서 보완할 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피트 내의 선수 관계자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이 경기에서는 3분 전 사인보드가 나가기까지는 자유롭게 출입하며 선수들에게 격려와 작전지시를 할 수 있게 했다. 또 연습이었지만 상위권 선수들이 시상대에 올라 기쁨을 맛보게 했다.

경기결과 그룹 N1-A 우승은 두 번째 연습경기에서 우승한 윤철수(탑스피드), 그룹 N1-B 표세훈(볼카노) 선수가 차지했다. 원메이크전은 스쿠프 김 근(탑스피드), 르망 이원철(탑스피드), 프라이드 조현건(조스)이 각각 우승했고 여성전은 김주현(개인) 선수가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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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월 20일 연다고 발표했던 개막전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3월 13일에는 다시 연습경기가 열렸다. 4월 9일 또 한 번의 연습경기가 있었고 4월 23일에야 첫 공식경기인 94 모터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이날 대회는 20개팀 81명의 선수가 출전해 성황을 이루었다. 경기종목은 그룹 N1-A, N1-B와 함께 현대 스쿠프, 대우 르망, 기아 프라이드의 원메이크 3전이 더해져 모두 5클래스로 나누어졌다. 경기는 오전의 예선을 거쳐 오후에 결승경기로 이어졌다. 경기 결과 관심의 초점이 된 그룹 N1-A에서 이명목 선수, N1-B에서는 최재명 선수가 우승했다.

이후 국내 레이싱팀들의 합의 아래 치러진 합동훈련이 8월에 이어 9월 11일 열렸다. 1차 합동훈련에는 5개팀 32명의 드라이버가 참가했으나 2차 합동훈련에는 13개팀 89명의 드라이버가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이 합동훈련은 프로화 시대에 걸맞게 드라이버의 실력과 실전경험을 쌓고 레이싱팀들의 경기력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일반 연습주행과는 달리 클래스를 나누고 경기에서 쓰이는 각종 사인에 따라 서킷을 달리는 것으로 공식기록과 시상 등이 없을 뿐 실제경기와 비슷한 형태로 치러졌다.

하지만 이날 합동훈련은 순수한 훈련이라는 취지와는 달리 드라이버들의 과열경쟁과 신경전으로 실제 경기보다 위험한 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되었다. 또한 드라이버들이 안전규칙을 어기거나 무리한 선두다툼으로 패독에서의 욕설과 몸싸움까지 빚어져 관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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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용인 모터파크 서킷에서 25개 레이싱팀이 참가한 가운데 3차 합동훈련이 열렸다. 공식기록과 시상이 없을 뿐 실제경기와 같은 방식으로 치러져 드라이버들의 테크닉을 다지고 다이내믹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드라이버들의 기량이 돋보였으나 무리한 경쟁으로 사고가 일어나고 미숙한 진행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94년 용인 서킷경기를 마감하는 4차 합동훈련은 11월 27일 모터파크 서킷에서 열렸다. 이날 경기 역시 3차훈련과 같이 공식기록과 시상 없이 실제경기와 비슷한 형태로 치러졌다. 합종훈련은 그동안 여러 팀의 호응을 얻어 많은 팀이 참가했으나 경주에 따른 규정이 문제되어 3차 때는 합동훈련에 따른 특별규칙을 마련하기도 했다. 4차훈련은 기본적인 경기 취지와 함께 특별규칙을 정례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4차 합동훈련에는 2, 3차 합동훈련보다 줄어든 56명의 드라이버가 참가했다. 95년 스폰서들과의 새로운 지원 계약을 위해 소속팀에서 떨어져 나와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드라이버들도 많았다. 클래스는 그룹 N1-A와 N1-B, 원메이크 스쿠프, 르망, 프라이드전의 5개 종목으로 나누어 열렸고 참가가 적은 르망과 프라이드전은 통합전으로 치러졌다.

이날 훈련을 마친 뒤에는 그룹 N1-A 경주에서 사고를 당한 박정룡 선수가 심판위원단에 항의해 사고 상대였던 김정수 선수가 징계를 받았다. 또한 출전차 중 일부를 다시 검차해야 한다는 드라이버들의 검차시비도 있었다. 그러나 1시간여의 회의 끝에 없었던 일로 마무리했다. 공식경기가 아닌 훈련임에도 드라이버들이 지나치게 승부를 의식해서 빚어진 일이다. 드라이버들 사이의 불신감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편 94년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킷 전용 경주차인 포뮬러카가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국내 처음으로 카트를 개발한 삼성중공업 특수개발팀이 만든 이 포뮬러카는 F3급으로 닛산의 2,000cc급 엔진을 얹었고 최고출력 200마력, 최고시속 280km를 낸다. 삼성의 포뮬러카 개발은 국내 모터스포츠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삼성중공업 특수개발팀은 1993년 10월에 구성되었다. 94년에 포뮬러카에 대한 컨셉트를 마련하고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지만 포뮬러카에 대한 구상은 그 이전에 세워져 있었다. 포뮬러카 프로젝트에 참여한 전문요원 10명을 포함한 50여 명이 참여했다. 개발비는 5억 원이 투자되었고 머신제작에만 2억 원이 들었다.

특수개발팀은 포뮬러카 계획이 확정된 94년 2월부터 필요한 부품을 일본의 전문부품숍에 발주해 7월말에 조립을 끝냈다. 조립을 마친 F3는 용인 모터파크 서킷에서 비밀리에 주행 테스트를 했다. 삼성 F3의 제작과 테스트에는 포뮬러카 개발팀의 일본인 기술고문인 우메하라 노부히로 씨의 기술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 30년간 드라이버로 활동한 우메하라 씨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한 드라이버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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