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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석은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이며 컨설턴트이다. 그는 수입차 태동기인 1980년대 말부터 수입차 업계에서 종사했으며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사업 계획 등의 전략 기획 업무를 중심으로 각종 트레이닝 업무에도 조예가 깊다. 폭스바겐 코리아에서 프리세일즈 부장, FMK에서 페라리 브랜드 제너럴 매니저 등을 지냈다.

폭스바겐 그룹 허버트 디스 회장의 퇴진이 남긴 숙제

페이지 정보

글 : 나윤석(stefan.rah@gmail.com) ㅣ 사진 : 나윤석(stefan.rah@gmail.com)  
승인 2022-08-01 10:55:08

본문

폭스바겐 그룹의 허버트 디스 회장이 9월 1일자로 폭스바겐 그룹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의 후임으로는 포르쉐 CEO 올리버 블루메(Oliver Blume)가 이어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상호 합의 하’에 퇴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노조와의 계속되는 갈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퇴진은 그 배경과는 별도로 폭스바겐 그룹과 유럽 전기차 전략의 앞길에 적잖이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허버트 디스 회장은 폭스바겐 그룹이 공격적으로 전동화 전략의 핵심적 추진력이었다디젤 게이트가 발발하자 퇴임한 빈터콘 회장의 후임으로 취임한 마티아스 뮬러 회장은 디젤 게이트가 남긴 회사 안팎의 후유증을 수습하는 데에 전력을 다했다. 즉, 디스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폭스바겐 그룹에게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첫 번째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디스 회장에 대한 평가는 몇 가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강인한 추진력이다. 사실 폭스바겐 그룹은 변화에 민감한 순발력이 우수한 기업은 아니었다. 유럽 혹은 세계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거대 기업이며, 니더작센 주 정부가 지분의 11.8%를 소유한 준 공영 기업이며, 유럽 최대의 노조인 IG 메탈 (우리 나라로 치면 금속노조)의 최대 지부가 있으며 노조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기업이다. 즉 다양한 집단의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거대기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공룡’ 폭스바겐 그룹이 지난 5년동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동화, 디지털화를 추진했고 성과를 보이기까지 한 중심에는 허버트 디스 회장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강력한 주도권을 행사하는 다분히 독선적인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일런 머스크와의 회동에서도 보여주었듯이 폭스바겐 그룹의 미래 지향점을 테슬라로 삼았다. 작년 말 노조와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듯이 전동화 변화에서 피할 수 없는 고용 축소도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추진하려는 등 합리적이지만 매우 냉철한 경영 스타일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부작용은 피할 수 없었다. 노조와의 마찰은 어쩌면 예상할 수도 있는 문제였을 정도다. 사실 그보다는 급속도의 체질 전환에 필수적인 엄청난 투자가 회사와 주주 – 특히 포르쉐-피에히 가문이 장악한 최대주주 포르쉐 오토모빌 홀딩에게 커다란 부담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브레이크를 걸 수도 없는 골치아픈 입장이었다. 고전적 기계 기업이었던 폭스바겐에 카리아드(CARIAD)와 같은 순수 소프트웨어 기업의 설립이 가져온 개발 지연에 의한 제품 출시 계획의 지연 역시 피할 수 없는 위험 요소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스 회장의 개혁에는 거침이 없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작게는 폭스바겐 그룹은 자신이 저지른 디젤 게이트의 검은 이미지에서 신속하게 벗어나 미래차 시대에도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의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회사 차원의 시급한 전략적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는 독일 정부는 21세기 들어 프리미엄 브랜드와 자동차 3사가 이룩한 세계 자동차 시장의 지배력과 세계적인 티어 1들을 중심으로 완성한 자동차 밸류체인의 주도권을 놓고 싶지 않았다. EU 정부는 빠르게 다가오는 지구온난화 사태와 미중 무역전쟁, 코로나 사태 이후에 강화되는 블록 경제 혹은 보호 무역의 분위기에서 유럽이 비교 우위를 갖고 있는 친환경 기술을 경쟁력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탄소국경세의 도입과 EU 택소노미다.

이와 같은 회사 차원, 국가 차원, EU 차원의 목표에서 폭스바겐 그룹의 임무는 매우 컸다. 독일 및 유럽 최대의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은 미래차 시장에서도 독일 브랜드의 시장 주도권과 밸류 체인의 경쟁력 구축이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래서 신모델의 출시, 디지털 기술의 내재화, 배터리 산업에도 직접 깊숙하게 관여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디스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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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올라프 슐츠 독일 정부의 출범, 그리고 결정적으로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이다. 

이전의 상황이 자동차 산업 혹은 거시 경제 주도권이 중시되던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당장의 경제 상황과 사회 안정이 더 중요한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유럽 공동체와 주도권을 중시했던 중도 우파의 기민당 메르켈 총리에 비하여 올라프 슐츠 총리는 사회 안녕과 인권, 노동권을 중시하는 중도 좌파 사민당 소속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고용 안정 문제가 이전보다 높은 우선 순위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거시적 목표 때문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니더작센 주 정부도 고용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할 수 있는 상황이 돌아온 것. 

폭스바겐 그룹의 최대주주인 포르쉐-피에히 가문이 디스 회장을 퇴진시키고 블루메 신임 회장을 임명시키기로 결정한 데에도 폭스바겐 그룹의 경영적 목표가 중요하게 반영되었다는 해석이다. 과감한 회사 개혁과 신기술 개발은 회사 곳곳에서 마찰음과 비효율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경영 실적의 악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공격적이고 다소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디스 회장에 비하여 블루메 신임 회장은 협력을 중시하고 안정감이 뛰어난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직원들, 특히 주주들의 입장에서는 반길 요소가 많은 경영자이고 이런 점을 최대주주가 반영하여 인선에 고려했다는 풍문이다. 

물론 명분이 필요했다. 가장 마찰이 많았던 노조와의 문제도 고려되었겠지만 디스 회장의 가장 중요한 경영상 실책은 가장 중요한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의 주도권 획득 실패와 소프트웨어 개발 지연에 의한 신모델 출시 계획의 차질이었다고 전해진다.

다시 큰 그림의 입장에서 보자. 독일 자동차 산업과 EU 친환경 산업 경쟁력의 중요한 견인차로서 빠르게 혁신 중이었던 폭스바겐 그룹의 경영진이 보다 안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전술적으로는 옳은 선택일 수 있겠지만 거시적인 전략적 관점에서는 속도 저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만일 이번 경영진 교체가 폭스바겐의 혁신 속도를 늦추는 쪽으로 작용한다면 지금의 경쟁적 상황을 감안할 때 만회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술, 한국의 배터리 산업, 중국의 전기차 대량생산 기술 등과 경쟁할 수 있는 핵심적 미래차 경쟁력은 유럽 내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둑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두 집 내고 살려다가 대마가 잡히거나 안전한 끝내기가 완착으로 작용하여 반집패로 결론나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비난하기는 어렵다. 마치 당기 수익성을 중시하는 빈 카운터의 경영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만은 없듯이.

폭스바겐의 새로운 회장은 어떤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 것인가? 어쩌면 유럽의 경제 정책과 세계 미래차 시장의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작지만 거대한 변화가 될 수 있다. ​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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