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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수퍼커브 스토리 – (1) 일본에 꼭 필요했던 모터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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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일한(chepa@global-autonews.com)
승인 2017-09-19 23: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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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이면 혼다의 명기라고 불리는 수퍼커브가 세상에 등장한 지 60주년이 된다. 그리고 올해에는 수퍼커브의 생산 누계가 1억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인간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모터사이클을 제작하겠다’는 혼다 소이치로의 의지가 시대를 넘어서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퍼커브는 그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본래의 카뷰레터 엔진을 인젝션 엔진으로 교체하고 배기량과 출력도 조금씩 상승했지만, 손쉬운 조작과 이동성, 정비의 용이성이라는 본래의 사명은 정확히 지켜나가고 있다.

 

그래서 수퍼커브와 관련된 이야기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그 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수퍼커브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왔기 때문에 어찌 보면 지루한 감도 없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언급하는 이유는 수퍼커브가 세월을 넘어 끊임없이 진화해 왔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는 모터사이클’이 되었기 때문이다. 긴 세월을 살아온 수퍼커브의 이야기를 개발부터 특별한 CF, 세월을 살아온 모델들까지 다방면으로 서술해 본다.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모터사이클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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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후 자신의 이름을 딴 모터사이클 제조사 ‘혼다’를 설립한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는 자전거에 부착하는 내연기관 발동기를 제작하다가 1949년에 혼다 최초의 모터사이클인 ‘드림 D’를 제작했다. 같은 해 혼다의 경영을 전반적으로 담당하게 되는 후지사와 타케오(藤澤武夫) 전무를 만난 소이치로는 그에게 인감을 맡기고 전적으로 새로운 탈것에 대한 개발에 몰두한다. 둘의 만남으로 인해 혼다는 점점 성장하기 시작했다.

 

1956년 말, 혼다 소이치로와 후지사와 타케오는 차세대 모터사이클을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모페드도 스쿠터도 아닌, 일본인들이 원하는 진짜배기가 필요했지만 당시에는 그 생각을 명확하게 떠올릴 수 없었기에 모터사이클 선진국이었던 유럽에 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이 본 것은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모터사이클들과 작은 모터사이클이 사용되고 있는 환경이었다.

 

1957년 초에 귀국한 그들은 혼다가 아닌, 일본 고유의 스타일과 편안함을 갖춘 새로운 개념의 모터사이클을 구상한다. 물론 이를 통해서 구현할 수 있는 회사의 수익, 회사의 근본을 이루는 모델이라는 점도 중요했다. 당시 혼다의 직원들은 대배기량 엔진을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은 소형 모터사이클을 제작하는 데 역량을 쏟아야 된다는 점에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소이치로와 타케오의 개발 지침은 명확했다. 고성능과 저소음, 높은 연비를 실현하는 4스트로크 엔진, 여성 라이더도 쉽게 승하차가 가능한 크기와 모양으로 설계된 차체, 클러치 레버 없이 기어 변속이 가능한 새로운 변속기, 친근하면서도 신선하고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디자인.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손에 딱 잡히면서도 작동이 쉬운 모터사이클을 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지만, 모든 것을 실현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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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말에 혼다에 입사했던 키무라 조자부로(木村讓三郎)는 “당시 오얏상(親父さん, 혼다 소이치로는 사장이라는 직함보다 이 명칭을 더 좋아했다)은 ‘일본의 도로 상태는 좋지 않으니 적어도 4마력은 낼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혼다가 생산하고 있었던 소형 엔진은 자전거에 부착하는 2행정 내연기관 발동기로 50cc 엔진에서 1마력을 발휘했을 뿐인데 이것을 한 번에 4배로 늘려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4행정 엔진은 그 구조상 같은 배기량의 2행정 엔진보다 출력이 떨어진다. 여러 가지로 난관에 봉착했던 것이다.

 

게다가 후지사와 전무가 ‘누구나 탑승할 수 있는, 특히 여성들이 운전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모터사이클’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프레임 설계도 힘들어졌다. 이 과제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혼다 내 엔진 개발 부서에서 개발을 주도했고 프레임의 기본 구조를 고려해 엔진을 수평으로 장착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프레임에는 높이가 낮은 메인 튜브를 적용해 승하차가 용이하도록 했고, 이를 통해 ‘슬림하면서도 앉기 편한’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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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이 낮게, 수평으로 위치하게 되면서 제일 문제가 된 것은 엔진 과열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실린더 헤드 커버에 구멍을 내고 점화 플러그 제조업체에 그때까지 없었던 형태의 점화 플러그들을 주문해 제작을 요구했다. 출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고민해 본 결과 당시로써는 최신 기술을 사용해 9,500rpm에서 최고출력 4.5마력이 발휘되도록 엔진을 다듬었는데, 시기를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엔진 회전과 출력을 구사해 낸 셈이다.

 

엔진과 함께 또 다른 문제는 수퍼커브에 적용되는 ‘원심 클러치’였다. 클러치 레버를 없앰으로써 오른손과 양 발의 조합만으로 발진부터 기어 변속, 정지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혼다 소이치로는 이를 두고 ‘소바 배달부가 한 손으로 운전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원심 클러치를 적용한 변속기 개발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클러치를 결합하고 떼는 타이밍이었다.

 

변속기 개발 담당이었던 아키마 아키라(秋間 明)는 클러치 로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버튼을 이용해 간편하게 시동을 거는 방식이 아니라 엔진에 결합되어 있는 레버를 내린 후 발로 밟아서 시동을 거는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에 시동 시에는 클러치가 결합되어야 했고, 시동이 걸린 후에는 즉각 클러치가 풀려야 한다는 어려운 명제가 있었다. 서로 상충되는 요구 사항을 모두 해결해야 하니 개발팀도 매일 머리를 써야 했고, 소이치로도 매일 생각에 잠겼다. 매일 아침마다 혼다의 디자인 실에서는 ‘진척 상황을 알려달라’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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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커브 개발에 관련된 엔지니어들은 많은 토론을 거쳤다. 모터사이클의 구조 또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모든 엔지니어들은 나이와 직책, 책임에 상관없이 진실하게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논쟁이 가열되면 혼다 소이치로가 직접 분필을 들고 칠판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때로는 논쟁이 가열을 넘어 격해지기도 했고 그때마다 소이치로의 “빠가야로!(바보녀석!)”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한 토론 문화는 이후 혼다의 기업 문화를 상징하는 ‘격정적인 토론’이 되었다.

 

변속기 문제는 결국 담당인 아키라가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8 가지의 새로운 디자인을 갖고 와 일일이 실험을 하고 실증을 거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를 통해 ‘편안하면서도 여성도 쉽게 다룰 수 있는’ 모터사이클이 만들어졌다. 세 개의 차체 프로토타입과 8개의 변속기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하면서 제일 나은 모델로 최종적인 조합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제 이들을 감싸는 본격적인 외형 디자인이 시작되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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