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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ㅣ 사진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0-11-25 13: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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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라가 날개를 달았다?


기아가 새로 내놓은 스펙트라윙은 광고를 통해 처음 만났다. 앞모습만 보여준 스펙트라윙은 제법 강한 인상을 지녔다. 보닛의 굵은 주름, 미려한 헤드램프의 디자인, 꽤 괜찮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헤드램프의 디자인은 BMW의 것과 사뭇 닮았다. 그러나 좋은 디자인을 제대로만 소화해낸다면 굳이 욕할 것도 없지 않은가. 베꼈다고 욕하기보다는 벤치마킹이란 긍정적인 표현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광고에서 본 새로운 이미지의 스펙트라를 기대하며 실제로 만날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시승을 위해 만난 스펙트라윙은 뜻밖에도 슈마를 닮아 있었다. 이름만으로는 스펙트라를 변경한 것인줄 알았는데 실물을 보니 슈마의 변형 모델이다. 기아의 준중형급 차종이 슈마와 스펙트라 2종류로 나뉘어 있어 이를 단일 차종으로 통합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스펙트라윙의 외형은 기존 슈마의 앞모습이 바뀌었을 뿐 옆모습과 뒷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광고를 보고 기대했던 모습과는 딴 판이어서 조금은 맥이 빠진다. 앞모습만 살짝 바꿔 마치 새 차인양 떠벌리려는 것인가 싶기도 해서 실망스럽기도 하다.

실내의 인테리어 디자인도 기존 스펙트라와 다를 게 없다. 대시보드의 패널을 메탈그레인으로 바꾸고 이중접이식 센터콘솔 박스, 도어포켓에 패트 병이 들어가도록 설계한 것, 원터치 방식 재떨이 등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이라면 오히려 기존 스펙트라가 나은 것도 있다. 메탈 그레인보다는 우드그레인을 더 고급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본으로 적용됐던 글래스 안테나는 스펙트라윙에선 사라졌다.

편의장비 중에 그나마 인정해줄 만한 것은 타이어를 195/60R 14인치로 좀더 키운 것과 오디오 시스템에 CD플레이어가 더해진 정도. 그런데도 값은 모델별로 75만원~95만원이나 올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가. 그렇다면 성능 면에서 뭔가 크게 달라졌다는 얘긴가.

힘겨운 동력성능과 짜증나는 소음
짜깁기식 차보다 기술개발 노력을

그러나 시승을 하면서는 더욱 노골적인 짜증이 터져나왔다. 슈마와 스펙트라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시승차는 1.5DOHC 풀옵션 모델. 4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시승차는 달리는 동안 형제 차종인 슈마를 계속 떠올리게 했다. 슈마가 처음 등장했을 때 스포티한 스타일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주행성능에 실망했었다. 높은 차체와 지상고, 당연히 주행안정감은 떨어지고 하체는 물컹거렸다. 도무지 스포츠 세단이라는 컨셉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 4,000rpm만 넘어가면 엔진이 깨질 듯이 울리는 소음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스펙트라도 마찬가지였다. 준중형급 중에선 비교적 고급스런 편의장비와 쌈팍한 외모를 뽐냈지만 성능은 한마디로 ‘꽝’이었다. 슈마보다 소음은 줄었으나 답답한 동력성능과 굼뜬 몸놀림은 국산차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줄 뿐이었다.

‘윙’이라는 글자를 하나 더 달고 나타난 스펙트라도 이들과 다를 바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원표를 비교해보면 엔진은 스펙트라의 것 그대로인데다 몸무게는 더 무거워졌고 차체는 좀더 길어졌다.

출발가속은 기존 준중형급 차들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시속 40km이상, 엔진회전수 3,000rpm을 넘어서면 저절로 짜증이 난다. 새로 보강했다는 자동변속기는 풀 액셀을 해도 좀처럼 가속력을 발휘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단에서 2단으로 넘어가는 것은 쉽지만 그 다음부터는 숨이 가쁘다. 액셀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대도 소리만 요란할 뿐 3단, 4단을 넘기는 것은 인내심이 요구된다.

소리는 또 어떤가. 이 놈의 가속소음은 엔진소음과 노면마찰음이 그대로 전달되면서 신경을 자극한다. 시속 100km를 넘으면 앞유리창 양옆의 A필러 부근에서 바람소리까지 가세해 도무지 쾌적한 운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튼 본 기자의 8년된 ‘똥차’ 못지 않게 시끄러운 주행소음이다. ‘이것이 날개를 더 달아서 그런가’

자동변속기는 풀 액셀 상태에서 변속충격이 강하게 전달되기도 한다. 서스펜션은 기존 스펙트라보다 충격흡수력이 좀더 나아진 느낌이다. 그러나 강성면에선 역시 별다른 개선이 느껴지지 않고 코너링에서 안정감이 떨어진다. 직각 코너를 시속 80km 정도로 돌아보면 차체가 심하게 기울고 불안하다. 타이어가 큰 규격으로 바뀌었지만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같다.

반면 스티어링 반응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유격도 거의 없어 의도한 대로 조종할 수 있다. 브레이크의 성능도 믿을 만하다. 주행성능 중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면 제동성능일 듯하다. 기존 동급차종들에 비하면 꽤 괜찮은 반응을 보인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스펙트라 윙은 이전의 형제차들과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게 가장 아쉬운 점이다. 도대체 껍데기 말고 바뀐게 뭔가. 결국 광고에서 보여진 모습은 철저한 껍데기 포장일 뿐이란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 껍데기 마저도 슈마와 스펙트라를 섞어놓았고 앞부분만 살짝 바꿔놓았다. 섀시와 엔진은 스펙트라의 것. 이렇게 놓고 보면 BMW를 닮은 헤드램프도 좋게 생각하려던 마음이 사라지고 유치한 베끼기로 평가하게 된다.

현대가 기아를 인수한 뒤부터 이처럼 여러 차들을 짬뽕해놓은 차가 늘고 있다. 수익성 면에서 보자면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이런 식으로 만들어놓고 마치 새 차 인 것처럼 광고를 해대는 것은 소비자 우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걱정스러운 것은 눈 앞의 수익성 때문에 이런 차들을 계속 만들다간 연구개발 능력이 점점 떨어질 것이란 점이다.

메이커측도 이런 차가 잘 팔리길 기대하진 않으리라 본다. 기대에 훨씬 못미칠 정도로 팔린다면 결국 메이커의 손실이고 그나마 ‘짜깁기차’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많은 엔지니어들의 시간과 노력도 헛수고가 돼버린다. 다행히 이런 차가 잘 팔린다면 국내 소비자들의 굳센 어리석음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새 차를 대하는 마음은 언제나 흥분되고 기대되지만 그런 마음을 허탈과 실망으로 되돌려 주는 차들도 있다. 스펙트라윙도 그런 차 중 하나다. 날개를 달아주려면 이름만으로 되지 않는 다는 걸 메이커들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 같다.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날다가 추락해버린 이카루스의 신화가 자꾸 생각난다.

- 아이컴즈콤 사이버 X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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