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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실패작시리즈5-時運을 못 타 단명한 화려한 포드의 혈통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6-08-28 18:13:12

본문

실패작시리즈5-時運을 못 타 단명한 화려한 포드의 혈통

2차 대전 종전 직후인 50년대 미국은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유럽과 동남 아시아에서 치룬 대전은 막대한 량의 군수물자가 필요했다. 전장이 아닌 미국은 전쟁특수로 때돈을 벌었다. 이런 풍요시대의 미국은 무엇이든 화려하고 크며 편한 것을 찾았다. 절약경제란 필요 없었다. 미국산 자동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크고 화려하며 강한 차라야 잘 팔렸다. 이런 유행에 불을 지핀 것이 번쩍이는 크롬 도금과 비행기 꼬리날개처럼 생긴 테일핀(Tail Fin) 디자인이었다.

2차 대전 때 동체가 둘 달린 미국의 전투기 P-38의 뒤에 나란히 솟아 오른 두 개의 꼬리날개를 1949년 캐딜락 뒷부분에 처음 접목시킨 스타일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었고 이 스타일은 삽시간에 미국 자동차로 번졌다. 50년대로 들어 크고 강하고 화려한 차 만들기 경쟁에서 테일핀은 중요한 장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런 유행에서 가장 늦었던 것은 보수적인 포드였다. 포드도 결국 GM이나 크라이슬러와의 경쟁에서 뒤 처질 수 없어 캐딜락의 테일핀을 재칠 수 있는 좀 독창적인 화려한 스타일의 포드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 포드의 총수였던 헨리 포드의 손자인 포드Ⅱ세는 자동차업계와 미국인들이 깜짝 놀라게 할 멋진 차 그러면서도 테일핀 디자인의 왕자인 캐딜락을 능가하는 차의 개발을 링컨 머큐리 사업부에 지시했다. 책임을 맡은 링컨 머큐리부 리더들은 새로운 차를 위해 미국인들의 선호경향을 광고사, 심리학자, 사회학자 심지어는 문학가들을 동원 의논했다. 유래 없는 대 규모의 시장조사와 노력을 들여 개발한 새 모델은 불운했던 포드Ⅱ의 아버지를 기념하는 뜻으로 그의 이름인 에드젤(Edsel)을 달아 57년 9월 대대적인 선전아래 쇼룸에 나타났다.

헨리 포드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애드젤은 1943년 스트레스로 인한 암으로 죽을 때까지 25년간 아버지의 갖은 독재적인 횡포를 견디며 포드 발전에 공헌했지만 대권을 물려주지 않아 결국 아버지 때문에 죽은 비운의 자동차 인이었다. 이런 아버지의 비극을 그의 아들인 포드Ⅱ세는 마음 한 구석에 항상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의욕적으로 개발한 새차에 아버지의 이름 에드젤을 부친 것은 조금이라도 아버지를 위로함이었을 것이라는 평이다.

이 뉴 모델의 특징이라면 상하로 길게 생긴 타원형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좀 더 많은 크롬 장식일 뿐 다른차와 크게 차이나는 점이 없었다. 테일핀도 없는 에드젤은 고급스러운 내장과 투톤의 화려한 외부 색깔 등으로 캐딜락처럼 튀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데서 우선 고객의 시선을 휘어잡지 못해 주문이 신통 찮았다. 포드의 보수주의 가 처음부터 거만한 기획을 한 것이 화근인데다가 너무 늦게 등장하여 유해의 타이밍을 놓쳐 실패했던 것이다.

에드젤의 실패는 유행을 놓친 것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의 흐름도 잘 못 읽은 때문이었다. 58년부터 빅3의 거창한 차들이 수요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불어닥친 불경기의 탓도 있었지만 크고 강하며 호화스러운 차만 탐욕했던 어리석음을 미국인들은 반성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큰 작용을 한 것이 에드젤이 화려한 데뷔를 한고 난지 1개월도 못되어 소련이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닉을 쏘아 올린 것이다. 모든 면에서 미국이 가장 앞선 것으로 믿었던 미국인들은 거칠고 야만적인 불량배로 알았던 소련에게 첨단 기술에서 뒤졌다는 허탈감 때문에 미국을 뒤돌아보게 됐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미국은 그 동안 전후의 번영에 빠져 나라 전체가 어리석은 길을 걸었으며, 향락과 물질적 가치에만 눈을 돌렸기 때문에 반성을 해야한다`고 보도했다.

이런 정세와 경제의 변화는 곧 화려하고 큰 덩치에 강한 테일핀 차 시대의 종말을 가져와 적당한 크기의 경제형 차시대를 열었다. 결국 시대를 잘 못 탄 에드젤도 결국 3년동안 6만 3천대밖에 팔지 못해 60년 생산을 중단 에드젤처럼 불운하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진; 1958년 포드의 에드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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