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드 버그만의 페라리 375MM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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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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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9 01:1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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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태어난 불륜의 선물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은 아내 잉그리드 버그만이 남편으로부터 받은 결혼선물인 맞춤형 페라리 스포츠카에 만족하자 즐거운 기분의 연장으로 때마침 스위스에서 열리고 있던 자동차 경주인 제7회 ‘스텔라 알프스 힐 클라이밍 레이스’에 잉그리드 버그만의 페라리를 몰고 출전하였으나 충돌 사고로 차체가 일부 망가져 다시 새 차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버그만의 결혼 기념 페라리는 로셀리니의 사고 때문에 잠깐 사이에 두 대가 탄생했다. 두 번째 차부터 이름을 ‘잉그리드 버그만 페라리’로 불렀다.
‘불륜’이라는 세상의 비난 속에서 두 사람은 합심하여 여섯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는 만든 것마다 흥행에 실패하자 평론가들의 줄 이은 비난으로 두 사람의 사랑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경제적인 파산이 두 사람의 결별을 재촉하였고, 둘 사이에 네 명의 자식까지 태어났다. 그러니까 버그만은 전 남편의 자식 한 명과 도합 5명의 자식을 둔 셈이다.
1956년, 무일푼으로 할리우드에 되돌아온 버그만은 '아나스타샤'에서 혼신의 연기로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58년 두 사람의 이혼소송을 받은 법정은 그들의 결혼이 무효라고 선고했다. 이렇게 하여 잉그리드 버그만과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사랑은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스캔들 중 하나로 남았다. 8년 동안의 사랑이 깨어졌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연극평론가 라스 슈미트와 세 번째 결혼을 한 후 또 다른 영화에 불굴의 집념을 불태웠다.
1974년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한 뒤에도 '가을 소나타', '골다 라는 여인' 등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등 산전수전 다 겪은 버그만의 불굴의 용기에 미국 언론들도 비난의 화살을 거두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은 아내 잉그리드 버그만이 남편으로부터 받은 결혼선물인 맞춤형 페라리 스포츠카에 만족하자 즐거운 기분의 연장으로 때마침 스위스에서 열리고 있던 자동차 경주인 제7회 ‘스텔라 알프스 힐 클라이밍 레이스’에 잉그리드 버그만의 페라리를 몰고 출전하였으나 충돌 사고로 차체가 일부 망가져 다시 새 차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버그만의 결혼 기념 페라리는 로셀리니의 사고 때문에 잠깐 사이에 두 대가 탄생했다. 두 번째 차부터 이름을 ‘잉그리드 버그만 페라리’로 불렀다.
‘불륜’이라는 세상의 비난 속에서 두 사람은 합심하여 여섯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는 만든 것마다 흥행에 실패하자 평론가들의 줄 이은 비난으로 두 사람의 사랑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경제적인 파산이 두 사람의 결별을 재촉하였고, 둘 사이에 네 명의 자식까지 태어났다. 그러니까 버그만은 전 남편의 자식 한 명과 도합 5명의 자식을 둔 셈이다.
1956년, 무일푼으로 할리우드에 되돌아온 버그만은 '아나스타샤'에서 혼신의 연기로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58년 두 사람의 이혼소송을 받은 법정은 그들의 결혼이 무효라고 선고했다. 이렇게 하여 잉그리드 버그만과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사랑은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스캔들 중 하나로 남았다. 8년 동안의 사랑이 깨어졌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연극평론가 라스 슈미트와 세 번째 결혼을 한 후 또 다른 영화에 불굴의 집념을 불태웠다.
1974년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한 뒤에도 '가을 소나타', '골다 라는 여인' 등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등 산전수전 다 겪은 버그만의 불굴의 용기에 미국 언론들도 비난의 화살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