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동차야사- 최초의 서울시내버스와 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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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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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2-08 18: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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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동차야사- 최초의 서울시내버스와 여차장
1927년까지 서울, 부산, 평양 같은 대도시에 대형 시내버스가 없었다. 7,8명 정도 탈 수 있는 승합 자동차와 택시가 버스 역할을 했으나 이것도 전화나 인편으로 불러서 타는 지금의 콜택시 아니면 전세 택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1928년 초 경성부청(서울시청)에서 서울장안의 시민교통을 돕기 위해 20인승 대형버스 10대를 일본에서 들여와 서울시내 중요간선도로에 투입하여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처음 등장했다.
부영버스는 손님을 끌기 위해 차표를 끊어 주는 예쁘장한 아가씨 차장들을 버스에 태워 장안의 큰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진취적이고 신식교육을 받았다는 여차장들은 양장 유니폼을 입고 앞에는 차표가방을 맨 채 표를 끊어주며 살짝 웃는 미소 때문에 총각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 여차장들의 인기는 금세 하늘로 치솟았다.
할일없는 건달이나 부잣집 도련님들은 점찍은 여차장들을 유혹하느라고 그 아가씨가 탄 버스를 하루종일 타고 다니며 추근덕거리던 풍속도를 연출했었다.
1920년대 말 서울장안에서 여배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차장 H양은 결국 영화계에 스카우트되어 일류 여배우가 되었다.
1927년까지 서울, 부산, 평양 같은 대도시에 대형 시내버스가 없었다. 7,8명 정도 탈 수 있는 승합 자동차와 택시가 버스 역할을 했으나 이것도 전화나 인편으로 불러서 타는 지금의 콜택시 아니면 전세 택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1928년 초 경성부청(서울시청)에서 서울장안의 시민교통을 돕기 위해 20인승 대형버스 10대를 일본에서 들여와 서울시내 중요간선도로에 투입하여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처음 등장했다.
부영버스는 손님을 끌기 위해 차표를 끊어 주는 예쁘장한 아가씨 차장들을 버스에 태워 장안의 큰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진취적이고 신식교육을 받았다는 여차장들은 양장 유니폼을 입고 앞에는 차표가방을 맨 채 표를 끊어주며 살짝 웃는 미소 때문에 총각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 여차장들의 인기는 금세 하늘로 치솟았다.
할일없는 건달이나 부잣집 도련님들은 점찍은 여차장들을 유혹하느라고 그 아가씨가 탄 버스를 하루종일 타고 다니며 추근덕거리던 풍속도를 연출했었다.
1920년대 말 서울장안에서 여배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차장 H양은 결국 영화계에 스카우트되어 일류 여배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