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동차야사-처녀총각 바람낸 첫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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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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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2-11 16:4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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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총각 바람낸 첫 자동차
진주에 살았던 에가와라는 일본인이 자동차를 한 대 가지고 와 1911년 말 마산- 삼천포 간을 달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버스 영업을 시작했다.
이때 버스요금은 1인당 마산-진주 간이 3원 80전, 진주- 삼천포 간이 1원 30전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 지방에서는 쌀 한 가마에 3원 60전~4원 정도였다고 하니 매우 비싼 요금이었다.
이 시절 버스라고 해야 8~10인승 의 합승차로 천막지붕에다가 전기라이트가 없어 가스 등을 달고 다녔다. 이런 버스가 마을을 지나갈 때면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 넋을 잃은 채 쳐다보았고 운전사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같이 보였다.
어쩌다가 짖궂은 운전사가 운전대 옆에 달린 고무공나팔을 눌러 두꺼비울음소리를 내면 귀신이 나왔다고 질겁해 달아나곤 했다.
아주까리 동백기름을 머리에 윤나게 바르고 양복을 입은 운전사들은 처녀총각 바람나게 만들었던 당대 최고 멋쟁이라 시골 처녀 3트럭 반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 냈다. 이 첫 자동차 바람은 ‘낙동강 700리 공글(콘크리트)다리 놓고 신작로자동차 먼지바람에 우리집 큰애기 한숨지누나’라는 노래까지 유행시켰다.
진주에 살았던 에가와라는 일본인이 자동차를 한 대 가지고 와 1911년 말 마산- 삼천포 간을 달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버스 영업을 시작했다.
이때 버스요금은 1인당 마산-진주 간이 3원 80전, 진주- 삼천포 간이 1원 30전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 지방에서는 쌀 한 가마에 3원 60전~4원 정도였다고 하니 매우 비싼 요금이었다.
이 시절 버스라고 해야 8~10인승 의 합승차로 천막지붕에다가 전기라이트가 없어 가스 등을 달고 다녔다. 이런 버스가 마을을 지나갈 때면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 넋을 잃은 채 쳐다보았고 운전사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같이 보였다.
어쩌다가 짖궂은 운전사가 운전대 옆에 달린 고무공나팔을 눌러 두꺼비울음소리를 내면 귀신이 나왔다고 질겁해 달아나곤 했다.
아주까리 동백기름을 머리에 윤나게 바르고 양복을 입은 운전사들은 처녀총각 바람나게 만들었던 당대 최고 멋쟁이라 시골 처녀 3트럭 반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 냈다. 이 첫 자동차 바람은 ‘낙동강 700리 공글(콘크리트)다리 놓고 신작로자동차 먼지바람에 우리집 큰애기 한숨지누나’라는 노래까지 유행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