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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명사의 카 라이프-우남 이승만박사의 난폭운전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5-04-02 08:06:41

본문

명사의 카 라이프-우남 이승만박사의 난폭운전

1930년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우남 이승만박사는 드넓은 미국의 여러 도시를 다녔다.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강연회로 연일 눈코 뜰새없는 빠쁜 스케줄 때문에 무엇보다 자동차가 필요했다.
일직부터 운전을 배운 우남은 운전대를 잡았다하면 시속 140km를 넘나드는 과속운전에 난폭 드라이버로 돌변했으나 사고 한 번 안낸 모범운전자였다고 한다. 1934년 미국에서 프란체스카여사와 결혼한 얼마 후 워싱턴의 프레스클럽에서 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쁜일 대문에 뉴욕에서 좀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강연시간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없이 과속을 해야 했다. 대낮인데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신호도 무시한 채 논스톱으로 질주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나게 달리는데 길가에 도사리고 있던 경찰오토바이에 발각되고 말았다. 추격을 알아차린 우남은 더욱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무서운 속도로 달아났다.
옆에 타고 있던 프란체스카여사는 조바심을 넘어 나중에는 공포감에 떨며 속도를 늦출 것을 애원했으나 들은 체도 않고 태연자약 하더라는 것이다. 차를 탈 때마다 우남의 과속 난폭운전 때문에 어떤 대는 이혼까지 나더라는 것이다.
쫓고 쫓기는 백주의 대 질주에서 결국 경찰을 따돌린 우남이 가까스로 프레스클럽에 도착하여, 단상에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수십번의 박수갈채 속에서 강연이 무르익을 무렵 헐레벌떡 뒤따라 온 두 경찰관이 입구에서 험상궂은 얼굴로 버티고 서서 우남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체포하려고 벼르던 두 경찰관은 우남의 열변에 감동되어 그만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연설을 끝마치고 우남과 같이 나오는 프란체스카여사를 보고 기동경찰 20년에 교통위반 자를 따라잡지 못한 것은 당신 남편뿐이라며 우남을 향해 V자를 손가락으로 표시하고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우남의 바쁜 스케줄을 도와 운전사, 비서, 타이피스트. 주부의 1인 4역을 해야 했던 프란체스카여사의 운전은 남편과는 정반대로 너무나 부드러워 ‘실키 드라이버’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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