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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페라리를 능가하는 수퍼카 람보르기니 미우라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4-04-27 14:30:31

본문

페라리를 능가하는 수퍼카 람보르기니 미우라

2차대전이 끝난 뒤 공군에서 제대한 기계공학도 출신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불하받은 군용차를 농업용 트랙터로 개조, 판매한다. 이 사업이 크게 성공하여 람보르기니는 1948년 트랙터 제조 회사를 설립한다.

스피드광이었던 람보르기니는 1950년대에 3대의 페라리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잦은 고장을 일으키자 1959년 페라리를 만든 엔초 페라리를 직접 만나 문제점을 지적해준다. 그러자 화가 난 페라리로부터 "페라리를 운전할 줄 모르는 사람은 평생 트랙터나 몰아라"는 폭언을 듣고 페라리보다 더 우수한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1963년 람보르기니사를 창업하고 수공 방식으로 제작한 제1호 350GT(V12 3,500cc 360마력)를 내놓는다. 이어서 1966년에는 4,000cc V12기통 380마력에 최고시속 290km를 내는 GT40, 일명 미우라를 개발하여 페라리에 큰 타격을 준다. 이 차는 페라리보다 스피드, 성능, 스타일이 앞선 차라는 평가를 받았다. 수퍼카의 시초인 미우라는 엔진을 운전석 바로 뒤에 얹은 미드십 타입으로 가격은 피아트 중형 승용차 16대 값인 770만 리라였는데, 당시에는 파격적인 성능과 가격을 자랑했던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였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카운타크, 디아블로 등을 내놓아 페라리와 쌍벽을 이루며 세계 최고의 성능을 지닌 차, 가장 비싼 자동차, 첨단 스타일의 수퍼카로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러나 1970년부터 국내의 거센 노동쟁의와 석유파동으로 경영난에 빠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회사를 매각한 후 은퇴했다. 이후 87년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매수한 뒤 94년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아들이 소유하고 있는 세도코 그룹으로 넘어갔다가 98년 초 폴크스바겐 그룹이 인수했다.

이태리의 모데나에 본사 및 공장을 두고 있는 람보르기니는 1966년 데뷔시킨 [미우라]가 뜨기 시작하여 [페라리]의 기세 높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최고의 스포츠카로 뿌리를 내렸고, 이어 1974년에 세대 바꿈하여 내놓은 [카운타크]는 성능과 속도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환상적인 우주형 스타일로 자동차의 디자인을 혁신한 모델이었다. 카운타크의 후속모델로 90년에 데뷔한 디아블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간디니가 카운타크의 환상적인 디자인을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 람보르기니의 영원한 트레이드 마크로 뿌리를 내렸다.

빠르게 변하는 세월과 유행에 따라 12년간 만들어 오던 디아블로는 다시 그 환상적이 전통을 금년 초에 탄생한 [무르치에(Murcielago)]에게 넘겨주었다.

사진 설명

fch001e; 람보르기니의 초기 걸작 미우라

fch001g; 미우라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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