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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실패작시리즈2- 마약사건에 휘말려 사라진 드림카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6-08-18 13:48:27

본문

실패작시리즈2- 마약사건에 휘말려 사라진 드림카

자동차 세계의 현대판 돈키호테 존 드로리언(John Z De Lonean) 그는 미국 제1의 자동차회사인 GM의 부사장이라는 영광을 집어 던지고 단시일 내에 자기의 꿈인 스포츠카 회사를 세웠다가 운영자금 조달 과정에서 마약 밀매사건에 말려들어 회사를 공중에 날려 버린 야망의 인물로 한때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미국인들은 그에게 입지적인 야망을 성취한 전형적인 미국인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크라이슬러자동차의 공대에 들어가 자동차학 석사 학위를 딴 후 GM의 폰티악자동차 사업부로 들어가 GM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결과 1972년 마침내 GM의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진, 자동차회사의 말단사원에게 최고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다.

곧 그는 GM간부들의 최고 목표인 디트로이트 본사의 14층에 자리를 잡았고 이곳에서 그는 억만장자 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드로리언은 날이 갈수록 그 자리가 싫증이 났다.
강직한 성격의 드로리언은 14층 중역들의 탁상공론과 변덕, 정년까지의 화려한 자리를 지키기 위한 아부와 권모술수, 그리고 권력투쟁에 혐오를 느끼게 되었고, 드로리언의 정당성과 합리적인 반항은 GM경영층의 감정을 건드리게 되어 그를 모함하는 바람에 마침내 승진 1년 후인 1978년 회사를 박차고 나오게 된다.

당시 미국 최고스타 모델 크리스티나 페라로와 결혼 등으로 디트로이트 사교계에 심심찮은 가십을 만들었던 미남 플레이보이 드로리언은 GM을 사임한 직후 ‘청명한 날이라야 GM을 볼 수 있다’라는 자서전을 출판, GM 경영층 내부의 부패를 폭로하여 디트로이트를 또 한번 발칵 뒤집은 사건은 유명했다.

그는 재빠르게 평생의 꿈인 자기 자신의 자동차회사를 세우고 녹이 슬지 않고 안전하며 멋있고 값싼 스포츠카 만드는 꿈을 실현한다. 마침내 등장한 ‘드로리언카’는 V형 6기통에 130마력의 강한 힘으로 최고 시속 220km를 내는 슈퍼 스포츠카였다. 위로 치켜 올려 열리도록 된 갈매기 날개형 문과 썩지 않도록 만든 스테인리스 차체가 특이했다.

드로리언은 영국 정부로부터 1억 달러 융자를 받아 북아일랜드에 공장을 세워 생산에 들어갔으나 자금압박을 받게 됐다. 게다가 1982년 영국 정부로부터 융자에 대한 이자 80만 달러의 지급 독촉에 견디다 못한 드로리언은 회사를 영국 정부관리로 넘겨주게 된다. 드로리언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당장 급한 돈 1천500만 달러를 마약 밀매로 구하려 했다는 협의로 1982년 10월 미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었다. 드로리언은 10일 만에 전 재산을 팔아 보석금 1천200만 달러를 주고 풀려난 후 정부와 싸우는 재판에 들어갔다.

2년이나 끌던 드로리언의 재판은 84년 8월 무죄판결이 되어 정부의 패배로 끝났다. 최종 판결에서 드로리언의 행위가 회사를 살리기 위한 돈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수사진의 동기가 지나치게 계획적인 함정수사였고, 오히려 유명 인사를 미국의 가장 골치거리인 마약사건으 몰아넣어 단순히 수사상의 개가를 올려는 수사기관의 모순에서 진솔한 인간의 순수성을 보호하기 위해 무죄판결이 타당하다고 배심원들은 판결했다. 수사기관의 계획적인 함정수사는 GM의 입김이 깊이 스몄을 것이라는 후문도 나돌았다.
제2의 GM왕국을 꿈꾸며 자신이 자란 GM에 도전장을 던졌던 드로리언의 드림카는 5천대를 생산하고 영원히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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