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작시리즈3-최초의 유선형 `에어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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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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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8-21 16:1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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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작 시리즈3-최초의 유선형 `에어플로`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창업자인 월터 크라이슬러는 그의 기업철학인 기술 제일주의에 따라 미국의 빅 쓰리인 포드, GM 보다 늦게 설립됐지만 고품질의 자동차 만들기로 유명했다. 1930년대로 들어서면서 자동차 기술은 물론 모든 유행이 과학적으로 빠르게 변해 갔다. 월터 크라이슬러는 이런 변화에 맞는 첨단형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다. 그 결과 1934년 당시로서는 환상적인 스타일의 유선형 차인 `에어 플로(Air Flow)를 탄생 시켰다.
유선형 에어 플로는 당시 각이 진 네모난 상자형의 구식 디자인을 완전히 격파한 스타일이었다. 이 차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았을 때 `자동차 발명 이래 최초의 진짜 승용차`라는 찬사를 받았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듯 한 앞 그릴, 차체 안으로 들어간 해드램프, V형 앞 유리, 후렘이 없는 유니트식 차체구조, 진공 작동식 클러치, 공기저항 감소식의 유선형 디자인 등 모든 것이 구시대의 자동차를 바꾸어 놓은 놀랍도록 새로운 차였다.
미국의 자동차 월간지 `모터(Motor)`는 “이 차를 볼수록 재래식 자동차가 이상하게 보인다.”라 했고, 영국의 `오토카`지는 “보면 볼수록 친숙미가 넘치는 차”fk 했으며, 미국의 패션지인 `하퍼즈바자`는 “숨이 막힐 정도로 참신한 스타일”이라 극찬했다. 에어플로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견고성도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30n 높이의 절벽에서 굴러 떨어트려 밑바닥에서 거뜬히 선 후 제힘으로 생생하게 달려가는 시험을 과시해 더욱 인기를 높였다.
뉴욕에서 신차 발표회를 열었을 때 미국인들은 `꿈의 승용차`라며 황홀감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주문은 날개를 달지 못했다. 30년대 초의 세계적인 대 경제공황의 후유증과 보수적인 스타일에 젖어 있던 미국 수요자들이 선 듯 달려들기를 주저했다. 너무나 파격적인 자동차의 변화에 `괜찮을까?`하는 두려움도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크라이슬러는 인기를 대비하여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미쳐 갖추지 못해 그나마 들어온 주문을 제 날짜에 출고 시킬 수 없어 실망을 안겨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차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는 헛소문이 나 돌아 3년만에 사라지는 비운을 맞았다.
사진; 1934년 크라이슬러 애어플로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창업자인 월터 크라이슬러는 그의 기업철학인 기술 제일주의에 따라 미국의 빅 쓰리인 포드, GM 보다 늦게 설립됐지만 고품질의 자동차 만들기로 유명했다. 1930년대로 들어서면서 자동차 기술은 물론 모든 유행이 과학적으로 빠르게 변해 갔다. 월터 크라이슬러는 이런 변화에 맞는 첨단형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다. 그 결과 1934년 당시로서는 환상적인 스타일의 유선형 차인 `에어 플로(Air Flow)를 탄생 시켰다.
유선형 에어 플로는 당시 각이 진 네모난 상자형의 구식 디자인을 완전히 격파한 스타일이었다. 이 차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았을 때 `자동차 발명 이래 최초의 진짜 승용차`라는 찬사를 받았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듯 한 앞 그릴, 차체 안으로 들어간 해드램프, V형 앞 유리, 후렘이 없는 유니트식 차체구조, 진공 작동식 클러치, 공기저항 감소식의 유선형 디자인 등 모든 것이 구시대의 자동차를 바꾸어 놓은 놀랍도록 새로운 차였다.
미국의 자동차 월간지 `모터(Motor)`는 “이 차를 볼수록 재래식 자동차가 이상하게 보인다.”라 했고, 영국의 `오토카`지는 “보면 볼수록 친숙미가 넘치는 차”fk 했으며, 미국의 패션지인 `하퍼즈바자`는 “숨이 막힐 정도로 참신한 스타일”이라 극찬했다. 에어플로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견고성도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30n 높이의 절벽에서 굴러 떨어트려 밑바닥에서 거뜬히 선 후 제힘으로 생생하게 달려가는 시험을 과시해 더욱 인기를 높였다.
뉴욕에서 신차 발표회를 열었을 때 미국인들은 `꿈의 승용차`라며 황홀감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주문은 날개를 달지 못했다. 30년대 초의 세계적인 대 경제공황의 후유증과 보수적인 스타일에 젖어 있던 미국 수요자들이 선 듯 달려들기를 주저했다. 너무나 파격적인 자동차의 변화에 `괜찮을까?`하는 두려움도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크라이슬러는 인기를 대비하여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미쳐 갖추지 못해 그나마 들어온 주문을 제 날짜에 출고 시킬 수 없어 실망을 안겨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차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는 헛소문이 나 돌아 3년만에 사라지는 비운을 맞았다.
사진; 1934년 크라이슬러 애어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