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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사라예보의 총성과 롤스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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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6-12-04 17:41:09

본문

1914년 6월 28일 세기적인 비극이 발생했다.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난드 대공 부부는 육군사열식에 참석한 후 지금의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한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사라예보가 있는 보스니아주는 500년 동안 터키의 지배 아래 있다가 독립하자말자 이번에는 오스트리아의 지배아래 들어갔다. 그런데 보스니아의 남 슬라브인들은 세르비아주와 합병되기를 원했으나 오스트리아는 매우 싫어하던 체코인들과 통합시켜 버렸다. 보스아니아 사람들은 로마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세르비아왕국 재건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자 오스트리아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적대감정이 팽배해 있는 사라예보를 방문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보좌관들이 극구 말렸으나 이를 대공은 무시했다. 곧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될 페르디난드 대공으로서는 민족적 감정을 무마하는 것이 중요했다. 대공의 우호적인 방문은 보스니아의 민주주의 파격파들을 자극했다. 6월 28일 청명한 일요일 사라예보 시청을 방문하기 위해 대공 일행이 차를 타고 사라예보 시청으로 들어가던 중 첫 번쩨 암살저격을 당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폭탄이 대공의 승용차 안으로 투척됐으나 폭파되지 않자 대공은 재빨리 이를 주어 차 밖으로 던지는 바람에 수행원 8명이 큰 부상을 당해 대공부부는 무사했다.

경찰은 즉시 가브리노비치 라는 청년 범인을 체포했다. 범인은 식자공인 과격파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였고 후회나 양심적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시청을 방문한 대공은 연회석상에서 노기가 가득 찬 얼굴로 시장에게 강력히 항의를 했다. 시청에 모인 세르비아인들은 곧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오히려 기쁨에 찬 환호성을 질렀다.

방문을 마친 대공 일행은 6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귀로에 올랐다. 대공의 부관인 하렉흐백작이 이 여행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 바친 대공의 자동차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최고급차였던 그리프운트 스트프트라는 오픈카를 이날 처음 타고 나왔던 것이다. 수행 책임자였던 하렉흐 백작은 또 있을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대공부부 일행을 좁은 길을 택하여 귀성할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좁은 길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대공은 대로를 따라 갈 것을 명령하여 운전사가 차를 뒤로 돌리려는 순간 19살의 보스아니아 학생 가브릴로 프린시프가 튀어나와 쏜 총탄에 대공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책코 출신의 대공 부인은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하고 말았다. 저격범 가브릴로는 체포된 후 전혀 양심의 가책 없이 오르지 자신의 민족인 세르비아인들이 겪은 오스트리아의 압박에 대한 복수라고 소리쳤다.

이 사건 때문에 도화선이 되어 오스트리아는 곧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오스트리아, 독일, 이태리 삼국 동맹과 프랑스, 영국, 러시아 동맹 사이에 인류 최대의 비극 중의 하나였던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비운의 무대였던 그리프운트 스티프트차는 지금 비엔나박물관 사라예보홀에 그의 주인 페르난드 대공의 휜색 군복과 함께 말없이 서 있다.

이 차는 4기통 32마력의 벤츠엔진을 독일에서 사와 자동차기술자 그리프형제가 만든 오스트리아의 롤스로이스라던 고급자동차였다. 이렇게 자동차는 인류 역사를 바꾸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일설에는 그후 이 차를 물려받은 사람마다 횡액을 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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