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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승려가 들여온 첫 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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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8-07-18 16:54:44

본문

원유에서 정제한 휘발유가 있어야 자동차는 달릴 수 있다. 자동차가 그리 많지 않았던 광복 이전에는 원유와 등유를 구분할 줄 몰라 모두 석유라 했다. 그러면 석유는 우리나라에 언제쯤 어떻게 들어 왔는가. 휘발유는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1908년부터 수입되었고 이보다 먼저 상륙한 것이 등유인 석유이다.

석유는 1880년에 이 땅에 최초로 소개됐는데 처음에는 서양기름이라 불렸다. 고종 13년인 1876년 패쇄 됐던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조선 내 3개항구의 개방 등 12개 조약을 내용으로 한일간에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개화가 시작됐다.

그 후 고종 17년인 1880년 9월 조정에서는 병자수호조약에 따라 처음으로 사신들을 일본에 파견하여 우리보다 먼저 받아들인 일본의 서양문물을 배워 오도록 명했다. 이 때 수호사절단 중에는 이동인(李東仁)이라는 승려가 끼어 있었다.

그는 서울 봉원사 승려로 일찍이 일본어를 배운 후 일본으로 밀항하여 일본정객들과 친교를 맺는 한편 국내 개화파의 거두었던 김홍집, 김옥균 등과 손을 잡고 개화에 앞장섰던 소장 개화정객이자 승려였다.

수호사절의 한 사람으로 일본에 건너간 이동인은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서양문물을 견학하다가 석유와 석유램프 그리고 성냥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귀국할 때 이것들을 구입해 온 것이 이 땅에 석유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동기였다.

이후 개방과 더불어 들어오는 서양인들이 석유를 사용(私用)으로 조금씩 가져와 등불과 취사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석유의 편리함을 알았다. 그러나 초기에는 쉽게 구할 수 없어 중국이나 일본상인들이 조금씩 들여오는 석유를 겨우 구해 주로 상류가정에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한미수교 2년 뒤인 1884년부터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무역이 정식으로 이루어지면서 미국상인과 선교사들이 대량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송진이나 아주까리 또는 목화씨 기름 등잔이 석유등잔으로 바뀌어 갔고 초기의 교역물품 중에는 석유가 주요 거래 품목으로 꼽힐 만큼 국내소비가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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