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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탄생한 세계 최초의 승용차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9-01-22 17:00:45

본문

1801년, 영국의 광산기술자였던 리차드 트레비딕(Richard Trevithick: 1771-1833)이 비로써 눈비를 피할 수 있는 마차모양의 승용 증기자동차를 처음 만들어 사람들이 타고 다닐 수 있게 했다.

트레비딕 역시 제임스 와트의 증기엔진과 세계 최초로 발명된 퀴노의 증기차에서 자극을 받고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진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친구의 대장간에서 만들기 시작한 지 약1년만인 1801년 12월에 직경이 80cm인 한 개의 앞바퀴와 직경이 무려 2m나 되는 두개의 뒷바퀴에 증기엔진이 달린 미국 서부개척시대를 누비던 역마차 모양의 9인승 승용차를 완성하는데 성공한다.

트레비딕은 이해 12월 23일 완성해 놓은 차를 대장간에서 밖으로 끌어내어 뒤에 달린 보일러에 물을 넣고 석탄으로 불을 지펴 증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트레비딕이 운전대에 올라 앉아 증기압 밸브를 열자 증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위에 모여 구경하던 친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친구 8명을 태우고 평지 최고시속 16km의 속도로 동네 한바퀴 1.6km를 거뜬히 달려 최초의 주행시험은 성공이었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증기와 연기를 내뿜는 이 차를 친구들은 `딕의 칙칙폭폭`이라 불렀다. 첫 시험운전에서 발견된 단점을 고친 트레비딕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이번에는 장거리 주행시험을 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전날 딕은 26km 떨어진 이웃마을인 캠본비콘을 다녀오는 최후의 주행시험에 나섰다. 8명의 친구와 같이 타고 시운전을 하던 중 마차 한대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낮은 다리를 건너다가 잘못해 뒷바퀴 한쪽이 개울에 빠져버렸다. 친구들이 다 내려 겨우 끌어냈지만 온통 물투성이 옷이라 금방 얼어붙었다. 추워 더 이상 갈 수 없어 길가 선술집으로 들어가 위스키 몇 잔으로 추위를 녹인 다음 다시 여정을 계속했다.

목적지 거의 다 와서 만난 작은 시냇물을 건널 때 술 때문에 핸들을 잘 못 틀어 앞바퀴가 물속의 작은 바위를 들이받고 핸들이 부러지면서 차가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엔진은 부서지지 않아 인근 주민들의 도움으로 겨우 일으켜 세운다음 근처에 있는 선술집 처마 밑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 또 위스키 몇 잔으로 물에 젖어 얼어붙은 옷과 추위를 녹였다. 모두들 넘어질 때 물이 다 새어버린 보일러에서 불이 아직 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마음 놓고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 엔진이 빨갛게 달아 차가 다 타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최초의 음주운전 사고였다.

트레비딕은 다시 한 대를 더 만들어 1802년 ‘증기로 달리는 차’의 특허를 받았다. 그는 이 차를 많이 만들어 팔기 위해 스폰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자동차를 런던으로 가지고 간 다음 런던 시민들을 태우고 며칠을 돌아다니며 가두선전을 벌였으나 자본주가 나타나지 않아 실망한 체 다시 고향으로 몰고 왔다.

이용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하던 트레비딕은 얼마 후 동네 빈 공터에다가 둥그렇게 판자벽을 둘러 친 다음 그 안에 역시 둥그렇게 철로를 부설하고 바퀴가 철로에서 이탈하지 안 토록 오늘날 기차바퀴 모양으로 개조한 다음 차를 철로 위에다 올려놓고 동네 아이들을 태우고 빙빙 돌아 다녔다. 아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끈 트레비딕의 기차는 곧 이웃마을로 소문이 퍼져 이 기차를 타기 위해 몰려들어 꽤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트레비딕의 이 철로 자동차가 사실은 세계 최초의 기차였던 것이다. 1804년 자동차의 꿈을 포기하고 차를 제분공장의 수송용으로 팔아넘긴 트레비딕은 다시 광산 기술자로 세계를 전전하다가1833년 병마와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말년에 육상교통을 혁신시킨 공적을 인정하여 영국황실에서는 공로상을 주려 했으나 트레비딕은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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