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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발명된 자동차의 시조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9-05-14 17:03:52

본문

때는 1767년 오스트리아 육군에는 니콜라 조제프 퀴노(Nicolas Joseoh Cugnot)라는 기술자가 공병대 기사로 벨지움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퀴노는 뉴코맨이 발명한 증기엔진이 공장으로 많이 팔리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영국의 공장으로 찾아가 구경한 다음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엔진을 이용하여 그의 자동마차 만들기의 꿈을 실현하기위해 상세히 살핀 후 돌아와서 연구에 몰두한다. 2년간의 연구 끝에 드디어 설계도를 완성했다.

그러나 차를 만들 돈이 없어 고민하던 중 평소에 그의 재능을 믿고 후원하던 벨지움 귀족 삭스 백작에 게 보였다. 퀴노는 백작의 소개로 프랑스 육군대신 스와솔 공작에게 도면을 보이고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대포를 끌고 다니기에 고생 하는 병사나 말의 노고를 덜어 줄 자동마차를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육군대신의 후원을 받은 퀴노는 곧 파리에 연구소 겸 공작실을 차리고 9개월만인 1769년 가을 드디어 세 바퀴 증기엔진 자동차르 만들어 냈다.

비로써 인류의 대망이던 세계 최초의 자동차가 탄생한 것이다. 나무로 만든 세 바퀴 자동차는 트랙터였는데, 두 개의 뒷바퀴와 한 개의 앞바퀴 앞쪽에 증기엔진이 달려있었다. 완성된 자동차를 본 육군대신은 실용가치가 있는지 시험해볼 것을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퀴노는 곧 차를 끌어내어 첫 시험운전에 나섰다. 역사적인 순간을 맞은 퀴노의 차는 보일러에서 검은 연기와 흰 증기를 뿜어내면서 퀴노가 운전하는 데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최고속도래야 시속 3.2km를 넘지 못해 아이들의 걸음걸이 정도였지만 가축이나 사람이 끌지 않아도 제 스스로 굴러가는 이 괴물수레를 보는 사람마다. 기절초풍했다.

10분마다 물을 주입하면서 잘 굴러가던 자동차는 목적지인 방생 숲 근방 네거리에서 엔진이 달려있는 앞바퀴가 너무 무거운데다가 핸들이 뻑뻑해 커브를 제대로 틀지 못하는 바람에 그만 남의 집 담 벽을 들이받고는 옆으로 넘어져 버렸다. 이 뜻밖의 사고로 따라가던 군인들과 구경꾼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이것이 최초의 자동차 사고였다. 시험운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무서운 기계로 보고 받은 육군대신의 관심은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번의 기회를 간청했으나 거절당한 퀴노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련을 떨칠 수 없어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부서진 차를 다시 고쳐 파리 시내를 타고 돌아 다녔다. 그런데 이 자동차 때문에 공포를 느낀 파리시민들이 경찰에다가 괴물수레의 통행을 금지시키라는 거센 항의 때문에 자동차는 창고에, 퀴노는 감옥에1년 동안 감금되는 비운을 꺾었다. 풀러난 퀴노는 집념을 버릴 수 없어 한 대를 더 만들어 타고 다녔으나 역시 시민과 경찰의 방해로 차는 다시 압수당하고 퀴노는 국외로 추방되어 깊은 좌절감을 안고 방황하다가 1804년에 객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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