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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최초로 백두산을 탐사한 자동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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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9-07-10 17:19:17

본문

1921년의 우리 나라에는 전국에 840대, 서울에만 210여대의 자동차가 돌아다닐 때인데 이해 7월 초 신문에는 흥미진진한 기사가 보도됐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백두산을 탐험하겠다는 것이다. 목적은 민족의 발상지로 단군신화가 서려있는 백두산을 세밀히 취재하고 사진을 찍어 그 비경을 신문을 통해 전 국민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다. 함경남도 도청과 동아일보사 주최로 두명의 취재기자를 포함 용감한 젊은이 20명으로 조직된 탐사대를 4대의 자동차에 분승하여 함흥을 출발 북청-함관령-개마고원-갑산을 거처 해산진까지 고산험로 6백여리를 자동차로 달려 이곳서부터는 도보로 백두산을 탐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동아일보의 기자들과 합류한 탐사대는 4대의 자동차에 분승 두 대씩 두 팀으로 나누어 7월8일 아침 8시에 30분 간격으로 백두산을 향해 모험의 대 장정에 올랐다.

그러나 출발부터 고난이 앞을 가로 막았다. 홍원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지점에 도착했을 때 홍수가 세차게 도로를 뒤덮으며 흘러가고 있었다. 진수렁에 빠졌을 때처럼 전부 내려 빈차로 조심조심히 건너가는데 한 대가 그만 엔진고장을 일으켜 물 가운데서 서고 말았다. 계속 불어나는 물에 차체가 반 이상 물속에 잠겨 양쪽 발판에 실려있던 짐들이 몽땅 물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겨우 끌어냈으나 짐속에는 물이 그득했다.

이 사고는 대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안겨 주었다. 의류와 식품, 예비용 부품들은 빛에 말리면 그런데로 쓸 수 있지만 응급약품과 수십타의 사진필림은 전혀 쓸 수 없었다. 당시의 필림은 오늘날처럼 세를로이드 재질이 아닌 얇은 유리판에 감광액을 입힌 필림이라 조금이라도 물에 젖으면 전혀 쓸 수 없었다. 사진이 이번 탐사에 생명이나 다름없는데 큰 낭패를 당했다. 홍원에 도착 즉시 신문사로 연락 필림과 의약품을 다시 보충하는데 이틀이 걸렸다.

이렇게 고생을 하며 신포를 거처 북청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높고 드넓은 험준한 개마고원을 관통하는 역경이 앞을 막았다. 그 첫 관문이 바로 후치령고개였다. 이 고개는 오르기가 20리, 내려가기 20리길의 준령으로 이 산맥을 따라 만든 꼬블꼬블한 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날정도로 협소한데 그것도 가는 듯 하다가 다시 뒤돌아오고, 막다른길 같은데 다시 열리는 그야말로 구절양장같은 험로였다. 길의 굴곡이 가장 심한곳은 8m간격으로 U턴형 꼬불길이 있는가 하면 한쪽은 절경을 끼고 돌아가며 반대쪽은 깎아 지른듯한 깊은 절벽을 따라가는 고개길이라 자동차들은 모두 벌벌 기었다.

후치령 정상에 힘겹게 올라 개마고원 입구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했다. 개마고원을 관통하려면 넘어야할 또 하나의 고산준령인 함관령이 웅장한 자태로 탐사대를 가로막았다. 그런데 함관령 입구에 당도한 탐사대는 아무리 눈을 닦고 찾아보아도 자동차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근 한시간을 찾아 해맸지만 허사였다. 함관령으로 들어가는 길이란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오솔길밖에 없었다. 실망이 전 대원을 엄습했다. 생각 끝에 세명의 수색팀을 조직 자동차 길을 찾도록 파견했다. 근 다섯시간만에 돌아온 수색팀의 보고는 절망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함관령 정상까지 오르며 살폈으나 자동차가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함흥서 백두산까지 7백리길의 3분의1을 넘게 와서 자동차들을 함흥으로 돌려 보내야했다.

차를 돌려보내고 남은 탐사대원 나머지 14명은 짐을 지고 도보로 1백여리의 험준한 개마고원을 관통 풍산을 지나 해산진 80리 전에 있는 갑산까지 강행군을 했다. 갑산에 도착한 일행은 해산진에서 대절자동차를 불러 나머지 여정을 계획대로 진행하여 함흥을 출발한 지 8일만에 백두산 천지연에 도착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백두산 탐사대의 용감한 개척정신을 이어 받은 함흥부자인 김효택씨는 거금 7천여원을 투입 함관령 입구에서 갑산까지 자동차 길을 닦은 다음 정기 노선버스 허가를 받아 여풍산씨와 합자로 풍산에 공여자동차부를 설립하고 이해 10월20일부터 함흥-해산진간 자동차교통을 개통시켰다. 이때 김효택씨는 좁은 길에 맞추기 위해 8인승 포드차를 일본서 들여올 때 아예 자동차폭을 25Cm가량 줄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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