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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농민의 발로 기회된 시트로앵 2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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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09-12-11 18:35:06

본문

시트로앵자동차의 사장 삐에르 블랑제는 1938년 여름 어느 날 프랑스 중부 구르몽 훼란으로 휴가차 와 있었다. 그 마을은 마침 시장이 열린 날이어서 손수레와 마차로 복잡했었다.그때 그는 문득 ‘이런 작은 짐차를 자동차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블링제가 생각한 것은 농민을 위한 차였다. 당시 농민에게 말(馬)은 교통 및 운송수단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지만 말은 사육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적은 비용의 고장없는 탈 것을 생각한 것이다.

파리에 돌아온 블랑제는 즉시 설계담당직원들에게 실행토록 한 계획은 달걀테스트와 모자테스트였다. 즉, 바구니에 들어있는 달걀을 싣고 시골 비포장도로를 시속 65km로 달리게 했을 때 달걀이 다쳐서는 안된다는 것과 키가 큰 남자가 모자를 쓴 채로 편하게 승하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 두 가지가 CV 설계의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다. 차체의 크기에 비해 넓은 실내공간과 혁신적인 서스펜션 시스템으로 부드러운 승차감을 요구한 것이다. 가난한 농민의 생활을 배려하면서도 말의 사육비보다 비싼 운영비가 들지 않게 소형엔진을 탑재토록 했다. 그 당시로서는 불가능할 정도의 어려운 조건이었다. 엔진은 수평대형 2기통 배기량은 375cc 출력은8마력이었다.

1939년 5월에 300대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해드램프는 모두가 왼쪽에 하나씩만 달았다. 당시 프랑스의 도로교통법에는 그것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끈을 당겨 거는 시동은 여성운전자를 고려해 전기시동 장치로 바꾸었다. 이들 프로토타입은 그해 가을 파리모터쇼에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보류되었다가 종전후 피폐된 유럽의 경제사정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크게 히트했다.

전후의 2CV보디라인은 1939년형 프로토타입과 거의 동일했으나 헤드램프가 하나 더 추가됐고 윈도도 종래보다 커졌다. 서스펜션도 한층 개량됐고 엔진배기량은 같지만 공랭식으로 변경됐다. 꾸밈없고 기능적이며 미운 오리새끼라고 불리는 어딘가 해학적인 매력이 풍부한 보디스타일은 프랑스인의 높은 기지와 재치를 보여주었다. 시트는 얼핏보면 섬세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강한 밴드위에 쿠션을 얹은 것으로 촉감과 승차감이 좋고 구조가 간단해 쉽게 탈착가능 했었다. 대시보드의 계기판은 속도계뿐이었지만 와이퍼와 연결돼있어 스피드에 따라 와이퍼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섀시의 구조는 아주 독특했다. 플랫폼 프레임의 좌우 양끝에 코일스프링을 넣은 홈이 있고, 양끝에서 뻗은 로드가 앞뒤의 바퀴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사상 최초의 독립현가식 서스펜션은 간단하면서도 호율이 높아 달걀레스트에 훌륭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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