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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방대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자동차문화 전반에 관한 조사/연구/분석/저술/방송/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소장의 자동차 이야기 코너입니다.

미국 고급차 시장의 선두주자 피어스 에로우 -2-

페이지 정보

글 : 채영석(webmaster@global-autonews.com)
승인 2011-06-28 17:47:47

본문

제1차 대전 직후 미국 자동차시장의 불경기로 고급차의 수요가 떨어졌지만 대신 기술과 유행은 발 빠르게 변해갔다. 피어스 에로우도 1920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47마력의 6기통차를 발표하였다. 1기통 당 4밸브, 모노블럭 엔진이 달린 진보적인 모델이었으나 매출이 변변치 못했다.

피어스・아로우는 이전까지 우측 핸들이었으나 이 시리즈부터 다른 미국차 처럼 모두 좌측 핸들로 바꾸었다. 우측핸들을 고집했던 것은 상류사회 사람들 때문이었다. 우측 핸들쪽이 차에서 내려 뒤 객석의 도어를 여는데 빠르고 편리했기 때문이나 좌측핸들화한 이유는 인간의 신체구조상 변속기어의 경우 오른손 조작이 편할 뿐만 아니라 우측통행에서 운전하기도 쉽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상류사회 상대만으로는 자동차장사를 할 수 없는 시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고객층은 여전히 피어스・애로우를 단골로 삼았다. 대통령은 물론 아라비아의 왕과 귀족들이 사주었다.

1924년 피어스 저가의 대중형 시리즈 80을 발표하였다. 동경하던 피어스 에로우를 싸기 손에 넣을 수 있어 처음에는 잘 팔렸다. 계속해서 28년에는 뉴 모델 81을 내놓았지만 기술이나 스타일에서 오히려 실패하여 원래 고객뿐만 아니라 예비고객들도 일제히 외면했다. 시리즈 81은 전혀 팔리지 않아 적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1929년 피어스 에로우는 적자수렁에서 해어날 수 없어 ‘싼차’ 메이커인 스튜데 베어커자동차로 넘어가고 말았지만 피어스 에로우 브랜드는 계속 생산됐다.

스튜데 베이커는 1930년 신 모델로서 직력8기통 6ℓ엔진이 달린 피어스 에로우8이 등장하여 처음은 대공황의 초기인 31년 7,000대가 팔리는 호황이 계속되었다. 32년에는 V12 모델을 데뷔시켰으나 잘 팔리지 않았다. 결국 33년 스튜데 베이커는 피어스 에로우가 사업전망이 없어 내놓고 말았다. 쫓겨난 피어스 에로는 살기위해 실버에로우(33년)를 데뷔시켰으나 고작 10대밖에 팔리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1935년 피어스 에로는 진공배력식 브레이크, X형플레임, 펜더헤드라이트가 달린 뉴 모델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판하였으나 결과는 처참하였고 ‘안전한 고급차는 팔리지 않는다’는 시대적 배반 때문에1938년 명품 피어스 에로는 도산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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